의료보험증

by 이옥임

일이 틀어진다 싶더니 정말 대책없이 꼬이는데 결코 남 일이 아닌 나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 기회였다.


중간발령으로 집 가까이 학교를 옮기고 나니 사전에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의료보험증을 다음날까지 내라는 교감 선생님의 말에 친정 동생에게 빠른 등기로 부쳐달라고 급하게 전화를 했다.

다음날 오후, 현장학습 사전답사 건으로 출장을 가는 바람에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동생의 전화를 교감 선생님께서 대신 받으신 후 교육청에 사정을 말씀드리자 하루 늦게 보내주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단다.


행정실에서는 내라는 날짜까지 안 내면 개인이 직접 의료보험증을 가지고 의료보험 공단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니 초조하게 의료보험증이 도착하기를 기다렸으나 이틀이 지나고 사흘, 나흘이 훨씬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도중에 분실된 것은 아닌가 다른 곳으로 잘못 배달이 된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드는데도 하루만 더 참고 기다려 보자며 다독였다.

일주일째 되는 날, 더 이상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동생한테 등기번호를 물어 우체국에 문의를 해보았으나 소포나 등기물은 인근 수원에서 취급을 한다며 친절하게 취급소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하니 점잖은 남자 분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유를 말씀드리자 등기번호와 송부한 우체국을 물어보더니 한참 만에야 접수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송부한 우체국에 전화를 해서 알아보겠노라는 말에 접수번호를 다시 알려주고 송부한 날짜도 함께 말씀드리자 거리가 멀어서 이틀이 걸린다던 등기물이 다음날 도착한 것으로 접수가 되었단다.

그렇다면 진즉에 왔어야 할 등기물이 왜 아직도 배달이 되지 않느냐고 묻자 그럴리가 없다며 어디로 배달이 되었는지를 찾아보겠으니 잠시 기다리란다. 한참 찾는 듯 싶더니 이름이 비슷한 인근의 학교로 배달이 되었다고 적혀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석연찮은 느낌이 들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학교 이름을 무엇으로 적었느냐고 묻고나서야 우체국 측의 실수가 아닌 동생의 실수였음을 알고 너무나 죄송했다. 그래서 직접 찾으러 가기 전에 인근 학교에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행정실장이 대뜸

"아니, 주소를 잘못 쓰셔놓고도 배달부한테 뭐라고 하셨나 봐요. 금방 배달부가 오셔서 찾아갔어요."하는데 분위기가 심상찮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니요. 제가 뭐라고 한 건 없는데... 아마도 우체국 측에서 배달을 잘못하신 줄 알고 뭐라고 하신 것 같아요"

"배달부가 많이 화가 나셨더라구요."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우체국에서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달려가보니 자신이 배달을 잘못한 것이 아니고 주소가 잘못 적혀 있음을 발견하고 화를 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우체국 담당자에게도 이미 주소가 잘못 적혀진 사실이 전해지면서 배달부가 잘못 배달했다고 판단하고 질책한 것에 대한 갈등으로 속상해할 모습이 눈에 선했다. 염려가 되어서 서둘러 우체국 담당자에게 전화를 드리자 낯선 여자 분의 목소리가 들린다.

"조금 전에 전화 받으셨던 분이 남자 분이셨는데 자리에 안 계신가 보네요."하고 묻자 사태를 알고 있는 듯 안타까운 목소리로

"예, 잠시 밖에 나가셨거든요."하는데 순간 할말을 잊었다. 가까스로 어렵게

"조금 전에 등기물이 도착되지 않아 전화를 드렸던 사람이예요. 알고 보니 송부한 쪽에서 주소를 잘못 적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전화를 드렸거든요."하자

"예, 제가 전해드릴게요."하고 공손히 대답하는데 정말 미안해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감사합니다. 죄송하고 감사했다고 꼭 전해주세요."


침착하고 예쁜 목소리로 분명히 전해주겠다고 했는데도 편치 않은 것이 본인에게 직접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가뜩이나 문의 전화니 기타 업무로 정신 없을 분에게 많은 시간을 빼앗고 감정까지 격하게 만들었으니 크게 잘못을 했다.


의료보험증을 가지고 오는 배달부에게라도 정중하게 사죄를 하고 뙤약볕에서 동분서주 애쓰는 분의 목을 축여드리고자 방문 시각에 맞추어서 음료수를 들고 기다렸지만 만나지 못했다.


다음날 수업시간 중에 행정실장이 의료보험증을 손수 교실로 가지고 올라왔다. 깜짝 놀라며 배달부는 갔느냐고 묻자 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겠다는 듯 웃으며 매일 배달부가 바뀌어서 누구인지 모른단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제자리에서 말없이 소임을 다 하는 분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급하게 보내달라는 친정어머니를 위해 주소를 재차 확인하고 의료보험증을 빠른 등기로 부쳐드렸는데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도착이 안되었다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 또 다시 되살아났다.


'이번에는 무엇이 문제일까? 혹시 또 주소를 잘못 적지는 않았을까? 여러 번 확인을 하고 보냈었는데..... '


행정실 실무사가 웃으며

"선생님, 의료보험증 분실 신고하면 금세 나와요."하는데 허탈감이 들고 어이가 없었다.


먼저 동생한테 주소를 어떻게 썼는지 확인을 하고 차분하게 대처를 했더라면 이처럼 여러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동생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 그나마도 다행이다. 홀시아버님을 모시고 살면서 가까이 사는 친정 부모님에게까지 아들 노릇을 하느라 정신 없는 동생이 알게 되면

"언니 어떻게 해? 나 하나 때문에 여러 사람 힘들게 해서......."라며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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