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키워서 결혼을 시키고 나면 그것으로 소임이 끝나는 줄 알았지만 절대 아니었다. 자식이 아프면 아픈 대로 속상해하면 속상해하는 대로 덩달아 아프고 속상한 게 부모 마음이라는 것을 절감하며 산다. 차라리 내가 아프고 그 속상한 일이 내 일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어미인 내가 아프고 속상한 게 훨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옆에서 자식이 속상해하고 아파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란 고통 그 자체다.
이제 막 서른의 한창 나이에 대상포진에 걸려 2개월 된 젖먹이 아들의 수유를 중단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 어린 아들을 힘들게 하나 싶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젊은 사람은 예외라는 대상포진에 걸려서 저리 힘들어하나 싶어 몹시 안쓰럽기도 하다. 물론 요즘에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대상포진에 걸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니 딸과 함께 병원에 가서 실감을 했다.
해외 근무 중인 남편이 곁에 없으니 오롯이 기댈 사람이라고는 친정어미인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듯 퇴근 시각이 가까워오면 여지없이
“엄마, 언제 와?”하고 문자가 온다. 엄마가 퇴근해서 언제쯤 올 지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애타는 심정에 문자라도 보내면 위안이 되는 모양이다. 하니 꼼짝없이 딸에게 묶여서 퇴근하고 나면 딸집으로 향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나를 기다리는 것은 딸만이 아니다. 4살 난 외손녀 지우와 10개월 된 외손자 현우다. 하루 종일 엄마와만 있다가 외할머니라도 나타날 양이면 우리 현우는 소리부터 지르고 외할머니를 반기는 모습이 얼마나 적극적인지 딸 친구가 놀러 와서 현우가 할머니를 반기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며 아기가 할머니를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고 했단다.
매일 비슷한 시각에 들리는 번호 키 소리에 벌써 외할머니인 줄 알고 방에 있다가도 소리를 지르며 냅다 거실로 기어 나온단다. 그리고 할머니 품에 덥석 안기는 모습에 외면 못하고 피곤함에도 늘 찾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우리 지우 역시 제 외할머니라면 단연코 최고였다. 외할아버지인 그이의 표현을 빌자면
“아이들이 더 잘 알거든. 외할머니가 진심으로 자기를 좋아하는 것을 아니까 외할머니를 좋아하는 거야. ”
그이의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말로는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아이들이 가슴 가득 예쁘고 사랑스럽다. 나에게는 우리 지우가 아기 천사였으니까..... 첫 손녀로 우리에게 안겨준 기쁨과 감동은 가히 표현할 수 없다.
제 동생이 태어나고 올 3월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 뒤부터 잦은 아픈 치레로 성격이 까칠해지고 엄마에게 집착해서 제 어미 곁을 일체 떠나려 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주말이면 할아버지 집에 와서 함께 자고 즐겁게 놀다 가곤 했던 지우였다.
뒤도 안 돌아보고 외할머니를 따라가는 지우를 보면서 제 엄마가 몹시 서운해 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꿈처럼 지나가버린 아득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제 어미 곁에서 지우를 떼어놓기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지우가 제 어미에게 유독 집착하는 이유가 동생이 태어나고 2주 동안 제 엄마가 조리원에 들어가 있느라 헤어져 있었던 탓이 아닐까 싶다. 어린 것이 친가와 외가를 오가며 엄마 없이도 용케도 잘 지낸다 싶었는데 말도 못하고 나름 상처가 되었던 게 틀림없다.
내 몸둥이가 만신창이가 되어 가누기 힘들어도 자식이기에 외면 못하고 늘 내 몸 보다는 자식과 손주를 먼저 챙기는 것이 본능이고 본성인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 앞에서는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초인간적인 힘이 생성되는 모양이다.
자식 앞에서는 아파서도 안 되는 것이 엄마라는 사실을 깨달은 딸이 나도 모르게 어느새 훌쩍 자란 중년의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이 안타깝지만 대견스럽게도 자식을 소중히 여기고 성심을 다하는 모습이니 감사할 일이다. 딸의 글에서 제 자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우를 살짝 혼내고 우는 척 반 진짜 우는 거 반으로 울고 있는 거 방에 놔두고 나왔더니 울면서 뭐라 궁시렁 거린다.
흑흑흑.. 난 엄마 딸이야.. 흑흑......
텅 빈 집안에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참 애처롭게도 들린다. 기분 좋으면 무한애교와 갖은 앙증맞은 웃음을 날려주는데 괜히 나 힘들다고 혼내고 나니 미안하다. 어서 아빠 곁으로 가서 지금 엄마가 주는 사랑보다 좀 더 여유 있는 사랑을 나누어 줄게“
“어느새 어린이가 되어버린 지우 모습에 또 한 번 짠하다. 우리 엄마처럼 죽을 때까지 내 자식 모습 보면서 짠하겠지? 내 자식이어서 참 좋다.”
“우리 현우!
내가 힘들다고 지우 때만큼 안아주지 못해서 넘넘 미안하다. 지우에게는 사랑한다 매일 매일 속삭여주었는데 현우는 사랑스러운데 지우랑 느낌이 달라서 그런가. 지우처럼 잘 안 된다. 정신 차리고 엄마가 지금보다 더 사랑해 줄게.”
미얀마 발령을 받아 먼저 나가 있는 신랑과 잠시 떨어져 사는 딸이 혼자 애들을 건사하면서 지칠 만도 하다. 지우는 아빠가 보고싶다며 자주 칭얼거리고 남자애라 더욱 힘든 현우까지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가녀린 딸의 몸으로는 분명 무리다. 그러니 대상포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제 몸이 힘들다보니 모든 상황이 짜증나고 짜증내고 나면 마음 아픈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을 어미인 내가 모를 리 없다. 힘든 몸으로 모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절박할지 잘 알기에 내 몸 힘들다고 딸과 외손주들을 결코 외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