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임언니

by 이옥임


결코 나만 좋아하는 언니가 아니다. 아니 감히 나만 좋아할 수 없는 언니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나는 이런 언니를 일컬어 “뭇사람들의 연인”이라 칭하고 있다. 그것도 남녀 공히 좋아한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언니가 없는 나는 2남 4녀 중 맏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언니나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언니나 오빠가 있는 친구들을 몹시 부러워 했었다. 테니스 클럽에서 함께 운동을 하면서 가까워진 종임언니는 다른 사람들과는 사뭇 달랐다.


언니의 경제적인 여유는 물론 언니의 마음씀이는 어릴 때 한의원이라는 여유 있는 가정에서 늦둥이 막내로 온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서인지 주변 사람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었고 누구에게나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었다.

남달리 예의가 바르고 상냥하며 온화한 언니는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주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가 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모두 끌어안는 넓은 가슴의 여장부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부러 의식하고 가식적으로나 형식적으로 베푸는 사랑이 결코 아니다. 언니의 베푸는 사랑이 이렇듯 크다보니 남녀노소 언니를 따르지 않을 수 없고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언니의 애인이 되기를 자청하는 짓궂은 남자 회원들도 있었으나 언니의 지혜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나름 언니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나는 잠시 언니와 공백기를 두고 있다. 언니는 나와 가까이서 함께 그림도 그리고 미술계에서 활동하기를 원했지만 직장이 우선인 나로서는 언니처럼 그림을 그리는 시간도 넉넉하지 못했으며 미술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경제적 형편도 여의치 않아 언니와 함께 가까이서 어울린다는 게 심적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니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민폐만 끼치는 것 같아서 심히 미안한 마음으로 언니와 연락을 일체 하지 않았고 언니도 이러한 내 마음을 감지한 듯 나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연락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이런 언니에게 고맙다고 생각할 즈음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옥임아, 지금 우리 둘이 중국 여행 갔을 때 호텔에서 모기 때문에 배꼽잡고 잠 못 잤던 이야기하면서 웃고 있다가 옥임이가 생각나서 전화했어. 잘 지내고 있지?”

“그럼요. 언니도 잘 지내시지요? 누구하고 계시는데?”


테니스 여성연합회 회장이었던 형님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도 잘 알고 있는 분으로 언젠가 함께 게임을 했었고 자그마한 체구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고우신 분으로 연세가 이순이 훌쩍 넘으셨음에도 공을 잘 치셔서 기억에 남아 있었다. 종임언니 전시회 때 만나 인사를 드리자 반가와 하시며

“종임씨한테 옥임씨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하셨던 분이다.

그러고 보니 언니가 친지들에게 언니와 함께 여행 갔던 추억에 대해서 종종 이야기를 하시는 모양이다. 나와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여행도 함께 다니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었는데...


미술대학으로 유명한 모 대학의 현대미술과정을 언니와 함께 공부하자며 종용했고 나중에 돈 있을 때 갚으라며 자진해서 거금의 돈을 빌려주었었다. 그리고 언니가 손수 운전을 하며 나를 태우고 다녔고 한 학기를 즐겁게 마칠 즈음 교육과정 속의 중국탐방을 하게 되었다.


언니와 함께 방 배정을 받고 2박 3일을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한여름 모기의 극성은 중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불을 끄고 잠을 청하는데 귓전에서 윙윙거리는 모기 소리에 예민해져서 언니와 나는 불을 켜고 모기를 잡겠다고 벼르다가 안 되겠다 싶어 급한 마음에 언니가 데스크에 인터폰을 했다.

데스크 안내원에게 말은 해야 하는데 중국어를 모르니 불쑥 튀어나온 말이 “모기..모기..”하다가 그만 언니와 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웃음을 멈추지 못한 언니는 급기야 인터폰을 내려놓았고 영어 단어로라도 말을 하면 알아듣지 않을까 싶어 내가 인터폰을 들고 “모스퀴토...모스퀴토.. ”라고 했지만 나 역시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말한 목소리여서 데스크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다는 듯 ‘헬로우“만 연발하는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인터폰을 내려놓아야 했다.


할 수 없이 모기 잡는 일은 포기하고 언니와 나는 밤 깊은 시각에 혹여 옆방에 피해를 줄까 이불을 뒤집어쓰고 얼마나 웃어댔는지 그 날 생각만 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데스크에서도 분명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여겼을 것 같다. 어디 그 뿐인가. 그 일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는 것을 보고 옆 사람들이 말은 하지 않지만 의아해 할 게 분명하다.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모기 여러 마리가 높은 천장에 붙어 있었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니 언니와 내가 모기에 전혀 물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그 한 여름에 홑이불을 몸 전체에 휘감고 자긴 했으나 아침에 눈을 떠보니 홑이불이 모두 벗겨진 상태였었다.


가끔 한 번씩 언니가 생각날 때마다 언니가 유난히 좋아하는 빵을 사들고 화실에 찾아가서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지만 공연히 언니에게 방해가 될까봐 자중하고 있다. 찾아가기만 하면 매우 반기며 좋아할 언니인데... 전화만 해도 몹시 반가워할 언니다. 만나고 헤어질 때면 무엇이라도 주고 싶어서 화실의 예제 찾아 빠뜨리지 않고 챙겨주는 친언니 같은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는데... 조만간 부러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언니를 찾아가 식사라도 함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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