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도시락

by 이옥임

“늘그막에 아들 때문에 시집살이 하네.”

“도시락 싸기 힘들지 않아?”


아침 잠이 많아서 30년 넘게 직장에 다니는 동안 가장 힘들어했던 일이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러한 내 모습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그이가 새벽에 일어나 눈곱도 떼지 못하고 주방에서 분주한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건네는 말이다.


“아니...이렇게 울 아들을 위해서 엄마로서 해줄 수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이지. 이제 함께 살 기회는 마지막일 텐데 함께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고 싶어.”


석사과정을 수료하면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숙사에서 나와야 한단다. 학교 주변의 원룸들을 수소문해서 알아봤지만 모두 턱없이 비좁은 공간들이었다. 대학 때 학교 앞 고시촌에서 지내면서 생겼던 폐쇄공포증으로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하고 결국 학교에서 자차로 30분 거리인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집에 들어온 지 3개월이 지날 즈음 아들은

“엄마, 기숙사에 있을 때에는 자주 아팠었는데 집에서 다니니까 많이 건강해진 것 같아.”했다. 집에서 다닌 이후로 살도 찌고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니 어미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아들의 도시락을 싸기 위해서 새벽에 일어나는데도 전혀 주저함이 없다. 알람소리에 벌떡 일어나게 된다. 사실 그이의 도시락을 싸야 했다면 일어나기 힘들 때 한 번씩

“여보, 오늘 나 힘들어서 도시락 준비하지 못할 것 같아.”라며 그대로 다시 깊은 잠에 빠져서 그이가 출근하는 것도 보지 못했을 게 뻔하다. 그런데 아들은 다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자식에 대한 어미의 모성애가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 직장에 다니면서 힘들다는 이유로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간식은 물론 먹을 것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것이 목에 걸린 가시마냥 가슴 한 켠에 늘 미안함으로 남아있었다.

특히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맛있는 것에 갈증이 나 있는 아이로 원하는 음식들을 충족시켜주지 못한 탓에

“엄마, 오늘 맛있는 것 해 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군대에 가 있을 때에도

“엄마, 나 휴가 나가면 맛있는 것 해 줘!!”라며 맛있는 것을 찾는 아들이었다.


그 맛있는 것이 상황에 따라 변하긴 하지만 군대에 가 있을 때에는 삽겹살이 그토록 먹고 싶었단다. 겨우 삽겹살이라니 겁을 내고 있는 음식 솜씨와는 전혀 무관한 음식인데 그렇다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면회를 갔을 때 많은 양의 삼겹살과 아들이 좋아하는 구이용 생오리고기를 넉넉하게 준비해서 갔다. 아들은 자신의 심정과 똑같은 동기들과 후임들을 돌아가며 불러서 먹이고 모처럼의 정담을 즐겁게 나누는 모습을 보고 흐뭇한 심정으로 돌아와서 잠시 쉬고 있는데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잘 도착했어? 오늘 맛있게 먹었다고 다들 감사하다고 꼭 전해 달래. 나도 오늘 고마웠어요.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아들의 행복함이 그대로 전해져서 나도 고마웠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 신체검사가 7급이 나와 재검을 받고 결과를 듣기 위해 갔는데 입대 여부를 아들에게 묻더란다. 그래서 일말의 지체없이 입대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입대 가능 등급으로 통지서가 나왔다. 이 어미를 닮아 타고난 체력이 약했던 아들이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는 동안 몹시 힘들어 할 모습을 생각하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쓰기 시작했다. 아들과 옆에서 대화하듯이 써내려 간 편지글이다.

아들이 휴가를 나오기 전에 그동안 써 두었던 편지들을 출력해서 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복귀하면서 챙겨갔는데 제대할 때에는 구겨지고 해어진 모양새가 셀 수 없이 반복해서 읽었음을 짐작케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녀석을 내 가슴 속에서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다. 한창 기발한 표현들로 세태를 풍자하는 표현들이 많았었는데 그 가운데 나를 엉엉 울게 만든 표현이

“며느리의 남편을 내 아들이라고 착각하는 시어머니는 00여자”였다. 다른 표현들은 공감하면서 웃고 넘길 내용들이었으나 이것만큼은 가볍게 웃고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아들을 생각하며 엉엉 울고 나서야 아들에 대한 생각과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으니 한창 젊어 행복했던 우리 부부처럼 아들도 며느리와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내 아들이 아니라 당연히 며느리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아들은 생후 8개월 때 라이증후군으로 살 가망이 없다는 아이였다. 젊은 여자 주치의가 반드시 살리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었고 온 정성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근 보름만에 가까스로 살아난 아들이 퇴원하는 날 원장님께서 직접 올라오셔서 축하한다며

"하나님께서 살리셨으니 잘 키워요."라고 하셨다. 이후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감사였고 건강하기만을 바랬다. 그런데 지금은 제 몫을 다하며 살고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랴.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 어미를 필요로 하는 일에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고 싶다. 이런 내 심정을 그이도 잘 알기에 위로 겸 격려의 말로 한 번씩 넌지시 내던지는 말인 줄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녀석이 어미 곁을 떠날 때가 언제일지는 몰라도 돌이켜 후회가 없도록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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