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by 이옥임

“엄마, 앞으로 일주일 후면 핸드폰 사줄 돈 준비해 놔.”

한참 학기말 시험중인 딸애가 제 아빠와의 약속한 시험 결과가 목표에 도달할 자신이 있는지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야, 벌써 결과를 안다는 거야?” 하고 묻자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듯한 묘한 웃음을 지으며

“계속 이렇게만 보면.....” 하는 소리가 아무래도 자신이 있다는 투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니까 작년부터 그렇게도 갖고 싶어했던 핸드폰을 오래도 참아온 셈이다. 다른 요구들은 아빠가 한번 안 된다는 말이 떨어지기만 하면 더 이상은 조를 생각도 하지 않던 아이가 핸드폰만은 끊임없이 가지고 싶어했다.

이제는 자기 반에서 핸드폰 없는 아이가 손꼽을 정도라나. 개중에 자기도 포함이 된다며 핸드폰이 현대를 살아가는 문화인의 필수품인데다 겸해서 장난감이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라는 딸아이의 제법 타당한 이유를 들어 주장하는 목소리에 처음에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와 엄마가 핸드폰이 없는데다 아빠의 의식이 남달라서 굳이 필요 없는 물건들은 사지 말자는 주의였다. 너 나 할 것 없이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니 이게 바로 나라 망할 조란다.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야 당연히 있어야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 무에 필요해서 어쩌다 한 두 번 필요하다고 쓸데없는 돈을 낭비하느냐며 언성을 높여 말하는 그이 앞에서 아무도 항변을 하지 못했었다. 아니 대항해서 맞설 항변 따위가 필요없었다.

이렇듯 지금까지 자신의 주관을 올곧게 지켜온 그이 덕분(?)에 나도 그이도 직장에서 유일하게 무 핸드폰자로 남아 있다. 나나 그이인들 어찌 남들 다 가지고 다니는 편리한 핸드폰을 갖고 싶지 않겠는가. 그이와 함께 출퇴근을 하다보니 정말 절박하게 필요할 때가 가끔 있기는 했지만 여지껏 없이도 잘 살아왔는데 우리 형편상 조금만 더 참자는 그이 말에 힘없이 무너지는 나 아닌가, 그이의 뜻을 잘 알기에. 그런 그이가 오히려 고마울 때가 있으니 가재는 게편인 격이다.

그런데 자식 앞에서는 부모가 져야 한다는 말을 그이는 이미 실천하고 있었다. 아빠의 표정과 눈만 보아도 애들이 모든 일을 알아서 할 만큼 매우 완고한 그이였는데 아이들이 커가면서 자신의 고집(?)을 조금씩 꺾어가고 있으니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고 싶다. 그래서였을까? 그이 생각으로는 얼토당토않은 핸드폰을 애가 노래하고 있으니 한번 불호령이 떨어질 법도 하건만 의외로 순순하게 약속을 정한다. 그것도 고지를 눈앞에 둔 목표로. 하니 딸은 식은 죽 먹기라는 표정이다. 그리고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고맙다.

그런데 난데없이 내일 모레면 끝날 시험인데 딸은 고민이란다. 이유인 즉슨

“엄마, 어떻게 해? 아빠 엄마는 핸드폰이 없는데 나만 가지고 다니면?”

내심 속이 깊은 딸애다운 고민이다. 진작부터 아빠 엄마가 먼저 핸드폰을 사야 자기도 가질 기회가 오지 않겠느냐며 종용하던 아이였다. 그래서 안심을 시켜주기 위해

“아빠가 약속을 하신 거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아빠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 아빠 엄마가 핸드폰이 없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 물론 있으면 편리하겠지. 엄마는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항상 감사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그게 아빠의 뜻이고 보답하는 길이야.”

누가 선생님이 아니라고 교과서적인 어투로 훈교하지만 내 딸애는 고맙게도 늘 흔쾌히 수용하는 자세다.

“알았어. 엄마, 아빠 엄마가 특별히 필요할 때는 내가 빌려줄 게 말해. 알았지?”


웬 만한 물건이라면 괜찮다며 안 사겠다고 거절할 아이가 갖고 싶긴 무척 갖고 싶었던 듯 그렇게라도 배려하지 않으면 결코 편치 않을 심정이라는 것을 에미인 내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제 아빠보다 한술을 더 떠서

“딸, 핸드폰 사면 사용료는 어떻게 하지?”하고 슬쩍 묻자

“사용료는 내가 내야지.”한다.


얼마 안 되는 용돈에서 사용료까지 내게 한다는 것이 무리인 줄 아나 필히 용돈에서 내게 할 참이다. 어차피 핸드폰도 목표 달성한 결과이고 용돈의 금액도 목표 달성에 따라서 달라지는 일이고 보면 스스로 목표를 세워서 매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뚜렷한 목표하에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한다면 얼마든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자신은 많은 것을 억제하고 살면서 자식들에게 하나씩 허용해주고 있는 아빠의 뜻을 이해하고 좀 더 깊이 사랑하길 바라며 부디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돌아볼 줄 아는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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