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

by 이옥임


“엄마, 내가 누구야?”

“언니”

“어떤 언니야?”

“몰라”

“엄마, 나 엄마 큰 딸 옥임이야.”

“그려~?”


올 연세 82세. 비교적 이른 연세에 치매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해서 올에는 아예 자식들도 몰라보신다. 방학이 다가올 때면

“옥임아, 언제 방학하냐?”하고 전화를 하셔서 언제 올 건지 애처럼 보채시던 엄마였다. 그런데 당신의 장남이 교통사고로 앞서가고 난 뒤부터는 방학이 다가와도 엄마의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너그 어매가 바보가 되어버렸다. 네 전화번호도 방학을 언제 하는지도 모두 잊어버렸어. 저렇게 죽은 사람마냥 하루 종일 잠만 잔다.”


무리가 아니다. 딸 셋에 이어 낳은 그리도 끔찍이 여기시던 당신의 장남을 교통사고로 보내고 나신 뒤 아예 숨이 멎은 사람마냥 근 2년을 하루같이 깊은 잠에 빠져 계셨으니까.

이런 엄마를 두고 지인들은 지병으로 누워계시는 아버지보다도 먼저 돌아가시겠다고들 염려하셨지만 용케도 잘 이겨내시고 훌훌 털고 일어나셨다. 그리고 아버지를 당신 손으로 건사해서 보내드리고 난 뒤부터는 지인들을 하나 둘 못 알아보기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그저 연세가 드셔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만 여겼지 그 증상이 치매 초기라는 것은 아무도 전혀 짐작하지 못했었다.


해마다 조금씩 기억력이 쇠약해지시면서 급기야는 당신의 자식들까지 못 알아보시고 모두 언니, 오빠라고 부르신다. 평소 온순하시던 엄마의 모습을 아기 같은 모습으로 귀엽게(?)만 여기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눈이 붓도록 펑펑 울고 나서야 순리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하면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기가 턱 막힐 일이지만.....


‘울 엄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어느 세계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계실까?'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서 길을 잃고 호올로 헤매고 계실 엄마의 생각을 도통 알 수가 없고 전혀 가늠할 수 없으니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엄마의 말수가 현저히 줄어들었음에도 내가 한번씩 내려가서 엄마와 함께 잘 때면 당신의 오빠 이야기를 쉬지 않고 하시는 것으로 좋아하는 큰딸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셨었다. 이야기의 내용을 귀 기울여 들어보면 당신의 큰 아들 이야기가 분명한데 엄마의 생각을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후회막심이다. 직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멀리 떨어져서 동생들에게만 엄마를 맡기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버지가 말씀을 못하실 때에야 비로소 아버지와 직접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깨달았었다. 아버지 목소리가 듣고 싶다며 엄마에게 아버지를 바꾸어 달라고 했을 때에는 이미 당신의 말은 잊어버리시고 소리만 내실 때였다. 내 말에

“어 어 어...”로만 답하시는 아버지 목소리에 통화를 끝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버지께 죄송한 심정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리.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도 사랑하는 아버지와 살갑게 소통하는 딸이 되어드리지 못하고 아버지를 많이 외롭게 해드렸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엄마와만 소통하면 아버지는 자연스레 엄마를 통해서 아시겠지라고만 여겼었다.


의사 전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내 목소리도 들려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소통인지 미처 깨닫지 못한 셈이다. 이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실천하려 할 때는 이미 아버지는 말씀을 못하실 때였으니 땅을 치고 후회한 들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도 나는 지금 우리 엄마에게 많은 잘못을 하고 있다.

keyword
이전 03화아들의 도시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