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고집을 찾아 기억 속의 '작' 더듬어보기
적당한 술은 모든 이에게 용기를 불어넣는다.
잠시나마 몸을 덥히고, 긴장된 근육들을 풀어주며 심장의 엔진은 힘차게 돌아간다.
용기가 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나고 입에 오르내리곤 한다.
옆자리 아리따운 혹은 멋진 이의 전화번호, 머릿속에만 있었던 아이디어, 싸웠던 이와의 화해, 부자지간 털어놓지 못했던 한마디에 이르기까지 술 한잔의 힘으로 수많은 삶이 바뀌거나 나아지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술을 마실 용기, 아니 객기가 없었다.
좋지 않은 의미로 선구자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나를 바라보고 의지하는 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다는 의무감 때문에 밖에서 마시는 술 한 잔은 용기가 아닌 객기에 가까웠던 한 해였으니까.
아쉬운 대로 집에서 종종 한 잔을 기울여봤지만, 집에서는 술 한잔의 용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집은 내게 휴식을 취하는 곳인가 보다.
마지막으로 용기를 가져보았던 적이 언제일까.
작년 4월 경, 서울의 숨겨진 술 명소들을 찾아다니면서 고집쟁이 몇 분을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오랫동안 놓았던 펜대를 다시 잡은 첫 프로젝트였다. 고집스럽게 본인들의 기개를 술 안에 펼쳐놓는 주인장들을 인터뷰할 때 술 한두 잔은 빠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술 한두 잔 속에 들어간 용기라는 녀석이 지금까지 글 속에 생각을 녹여낼 수 있는 훌륭한 촉매제가 되고 있다.
많았던 장소들 중 논현동의 고집쟁이가 특히 생각난다.
근거 없는 자신감. 명확한 근거 없이 단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같은 무모함에 가까운 자신감이 간혹 필요한 순간이 가끔은 있다. 그런데 올해는 그런 자신감을 부리기에 너무 무서운 세상이었을까. 많은 이들이 그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 같다.
어느덧 가을 옷들도 옷장 안에 들어가고 있고, 코트와 패딩이 슬슬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자연마저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는 계절, 술 한잔과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불꽃이 조금은 더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논현동의 작은 공간, '작'에서 받았던 용기 한 잔이 매우 그리운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