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아듀 블랙베리, 안녕 갤럭시
한 달 전, 블랙베리의 빈자리를 채울 새 스마트폰이 도착했다.
큰 마음먹고 장만한 최신형 갤럭시 울트라. 모든 이들에게 택배 도착 알람은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설레기 마련인데, 즐거움에 앞서 섭섭함이 잠시 자리 잡았다. 아, 이제는 정말 헤어지는구나.
유심칩을 빼서 새로운 동반자에게 넣어보았다. 한 때 내 작은 손 안에서 놀던 스마트폰이 이제는 한 손으로 잡기 힘들 만큼 커졌다. 추억들의 크기는 그만큼 커졌으리라.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올라왔다. 2년 동안 쌓아왔던 우상과의 추억을 이제는 다른 곳에서만 열어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기만 하다. 헤어짐에 익숙해지려면 조금은 시간이 걸리겠구나.
새로운 만남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터치에만 의존해야 하는 자판은 툭하면 카톡 메시지를 다시 치게 만들고 있고, 커진 화면에 비례해 늘어난 무게감과 크기는 한 손으로 잡기에는 크고 무겁다. 비밀번호 설정에 앱 정리에, 옮기는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없어진 정보들의 복구와 재설정까지. 동반자가 바뀔수록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다. 시대가 또 한 번 변했다.
'상실의 시대'는 1년에 가까운 시간 서서히 잃어왔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기억 속 동면기에 들어갔던 수많은 맛들, 정갈한 휴식과 그 속에서 얻었던 삶의 원동력까지 점점 잊혀 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썼던 이야기 열차가 기나긴 여정을 거쳐 어느덧 종점에 도착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일상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변화한 사회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고, 그 과정을 함께할 동반자도 새로 왔으니까. 이제는 밖에 한 발자국 정도는 디뎌도 괜찮을 것이다.
출근길에 자리하고 있던 가로수들처럼 우리의 삶도 다시 새로 꽃 피울 것이다.
잃어버려왔던 것들도, 시간의 차이는 조금씩 있어도 영원히 상실하진 않을 것이다.
그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올 수 있도록, 다음에는 조금 더 즐겁고 희망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싶다.
'상실의 시대'가 잠시 지나갔던 시대로만, 한때의 추억으로만 기억될 수 있도록.
새로 맞이한 동반자님, 제 곁을 떠나기 전까지 맛있고 예쁘고 멋있는 것들만 함께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