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런 영화
라이킷 13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어 디퍼런트 맨>

진짜 '나'를 연기하며 살아가야 하는 삶은 그 얼마나 절망스러운 비극인가

by FREESIA Mar 12. 2025

본 리뷰는 1ROW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솔직하게 자기 자신에게 다가가는 게 어떨까, 내 오랜 친구여.
영화 <어 디퍼런트 맨>영화 <어 디퍼런트 맨>

누군가는 사람들에게 겁주지 말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그렇게 겁먹은 듯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이는 신경섬유종증으로 기형의 얼굴을 가진 남자, 에드워드가 주변 사람들에게 듣는 극과 극의 반응들이다.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연민의 대상이 되거나. 애초에 그는 일방적인 감정을 받는 존재로 살길 바랐던 게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어찌할 수 없는 유전적 질환으로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살아온 에드워드는 매사에 소심했고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다. 그랬던 그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극작가지망생인 잉그리드는 시원시원한 성격에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배우지망생이었던 에드워드와 잘 통하는 면이 있었다.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에드워드는 비참한 현실을 더욱 실감했다. 그리하여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임상시험 치료를 받게 된다. 어느 날 더 이상 기형의 얼굴이 아닌 잘생긴 외모를 갖게 된 그는 자신의 이름과 과거를 숨긴 채 자신이 짝사랑했던 여자, 잉그리드를 다시 찾아간다.

영화 <어 디퍼런트 맨>영화 <어 디퍼런트 맨>

남들과 다른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 한 남자가 자신의 운명을 헤쳐나가는 여정을 그려낸 A24 신작 영화 <어 디퍼런트 맨>은 일종의 잔혹드라마로서 다소 자극적인 소재와 연출을 보여주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듯 에드워드가 임상시험으로 치료받는 동안 피부의 살점이 그대로 벗겨지거나 몸에서 이상반응들을 보이며 (변신에 가까운) 변화하는 장면들은 어쩐지 기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잉그리드를 향한 마음과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 선택한 '스스로를 깎아내는' 방식은 그만큼 주인공이 마주한 가혹한 현실을 대변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건 그만한 대가가 필요함을 암시한다. 즉, 새로운 삶은 피를 토하고 살이 찢겨 나가는 고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고통을 감수한 그의 선택이 어쩐지 잘 못 된 것만 같은 불길함이 드는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가 숨어있다시피 머무르고 있는 방 천장의 구멍에서 물이 새기 시작하고 이를 방치하다 보니 그 구멍은 점점 썩어가며 커지기 시작한다. 과연 그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영화 <어 디퍼런트 맨>영화 <어 디퍼런트 맨>

영화는 에드워드의 외모가 바뀐 이후부터는 '가이'라는 이름으로 부동산 공인중개업을 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극작가로서 오프브로드웨이의 꿈에 한 걸음 가까이 가고 있는 잉그리드를 찾아가 자신의 비밀은 숨긴 채 한 명의 남자로서 그녀의 사랑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기대한 바와 달리 조금씩 어긋나는 상황에서 그 복잡한 내면과 감정선은 '오즈월드'라는 남자의 등장으로 더욱 증폭한다. 자신의 과거처럼 똑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 당당하고 긍정적인 데다 외모에 상관없이 특유의 친화력으로 주변 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그를 에드워드는 질투한다. 아니, 어쩌면 그 질투심은 큰 틀에서 보자면 타인에 대한 질투라기보다는 자기가 놓쳐버린 선택지에 대한 미련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로 보이기도 한다. 똑같은 운명을 가지고서도 보다 멋지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갔을 수도 있었을 자기 자신을 오즈월드를 통해 겹쳐보며 그에게 가장 필요했던 변화는 운명이 아니라 그런 운명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영화 <어 디퍼런트 맨>영화 <어 디퍼런트 맨>

어떤 면에서는 이 영화를 보며 지난해 말부터 큰 인기를 얻었던 영화 <서브스턴스>를 떠올리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외모'와 '변신'이라는 지점에서 결이 비슷한 영화이기는 하지만 <서브스턴스>가 젊음과 인간의 욕망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면 <어 디퍼런트 맨>은 그보다 본질적인 면에서 자아와 정체성의 문제, 아름다움이란 가치보다는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방향성의 문제를 논한다. 어 디퍼런트 맨. 에드워드는 기형의 외모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처럼 사회 안에서 쉽게 연결되지 못하고 '디퍼런트 맨'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가이라는 삶을 살게 된 이후에도 그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디퍼런트 맨'으로서 자신의 고통스러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잉그리드가 에드워드와 있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만들고 있었던 연극이 엇갈리는 관계들 속에서 점점 이야기가 변질되어 가는 상황이 이러한 에드워드의 비극을 잘 설명한다. 즉, 타인을 의식해 '디퍼런트 맨'이 되지 않으려 선택한 길이 결국에는 자신의 소중했던 이야기(추억)마저 잃게 되는 형국에 다다르게 된 셈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 '디퍼런트 맨'이다. 살을 벗겨내 드러난 얼굴이 마치 이 주인공의 진짜 얼굴인 것만 같은 환상을 주지만 사실 그마저도 겉모습에 불과하다. 조금은 뻔한 결론일지는 몰라도 가장 중요한 건 그 살가죽 안에 있는 내면에 있는 것이다. 어쩌면 비극이란 주어진 운명이 아니라 그 운명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게 아닐까.


#외면과내면 #심리스릴러 #잔혹한 #삶의정체성 #A24 #세바스찬스탠 #영화리뷰 #원로우 #1ROW



매거진의 이전글 <콘클라베>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