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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Jan 04. 2019

<킬링 디어>

지극히 더럽혀지지 않은 나의 손을 들여다보게 하는 영화

이게 그나마 정의에 가장 가까워요.
출처: 영화 <킬링디어>

스티븐은 성공한 외과의사다. 그런 그가 진료하던 한 남자가 사고로 죽게 되고, 죽은 그의 아들인 마틴과 잦은 만남을 갖게 된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긴장감과 처절한 복수극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실로 느끼게 한다. 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신화에서 가지고 온 이 영화는 가족과 인간의 가장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며 현대판 비극으로 재탄생했다. 하나의 실험 같기도 하다. 불필요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단순화하며 서늘하리 만큼 구조화된 배경들로 이루어진 이 영화가 우리에게 선사하고자 하는 깨달음은 과연 무엇일까. 


아름답지 않아서 더 인상적인


출처: 영화 <킬링디어>

영화는 첫 시퀀스부터 남다르다. 실제 사람의 뛰는 심장을 촬영하여 이루어진 첫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적잖이 큰 충격을 안겨준다. 뿐만 아니다. 겨드랑이 털을 보여달라고 하거나, 치실을 쓰는 안나의 모습, 전신마취 상황을 설정하여 나누는 섹스, 파스타를 게걸스럽게 먹는 마틴의 모습, 어딘가 차가운 분위기의 스티븐 가족의 식사시간과 그들 옆에 힘 없이 늘어져 있는 반려견의 모습 등 기괴한 음악과 함께 평소에 잘 볼 수 없는 장면들을 영화를 통해 보는 것은 생각보다 부담스럽고 불편한 일이다.


사실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모든 장면들이 현실에서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누군가는 얼핏 생각해봤던 것이지만 이성적으로 눌러 왔던 일일 수도 있고, 어쩌면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나고도 남지만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일 수도 있다. 실은, 우리 또한, 스티븐의 그 감추고 있는 아름다운 손처럼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 하고, 정작 현실이라 회피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는 쉽게 외면해버리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마틴의 저주 같은 예언을 듣고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던 스티븐이 아이에게 억지로 빵을 먹이려 하는 모습이나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늘 더럽고, 끔찍하게 피로 얼룩진 장갑은 벗어 버리고 그 깨끗하고 아름다운 손을 내보이며 진짜 자신의 손으로 저지른 잔혹한 일들에 대해서는 무책임하게 잊어버리려 한다. 


<킬링 디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친절하고, 난해하다. 그러나 때론 아름답지 않은 것이 더욱 강렬하게 우리에게 각인되기도 한다.


신은 존재하는가


출처: 영화 <킬링디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한 대사가 있었다. 신은 존재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이 영화는 신의 존재를 하염없이 보여주고자 하는 듯하다. 복도를 걸어가는 스티븐을 약간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는 듯한 화면 구도나, 다리에 감각이 없다는 밥이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쓰러졌을 때 정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장면은 마치 신이 있다면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킴이 다리가 마비가 되어 쓰러지기 직전 유리창에 비친 예수의 모습이 킴과 한 화면에 잡힌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신은 존재하는가. 마틴이 과연 신이었을까. 어떻게 마틴이 말한 대로 저주가 실행되었는지는 영화에서 전혀 가르쳐주지 않는다. 신의 존재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 사람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응하는 알 수 없는 징조들을 보여주며 '보이지 않는 힘'을 실감하는 게 이 영화가 의도한 바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 사람의 오만한 실수로 한 생명을 잃었다. 마땅한 이유 없이 사람이 죽었다. 그 죄에 대해서는 마땅히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복수가 내려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가족의 단면


출처: 영화 <킬링디어>

죄를 씻기 위해서는 이 가족들 중 한 명이 죽어야만 한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안나, 킴, 밥은 권력자인 스티븐에게 아부하기 시작한다. 밥은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그토록 싫어하던 화초를 관리하는 일도 도맡아 하겠다고 한다. 킴은 희생을 자처하는 척하면서 감정적인 호소를 한다. 안나는 남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가 좋아하던 드레스를 입고, 아이는 또 낳을 수 있다면서 결정타를 날린다.


마틴은 말한다. 스파게티를 먹는 방식이 아버지와 닮았다는 사실에 우리의 관계는 남들보다 특별할 줄 알았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란 걸 알았을 때 실망감은 더욱 컸다고 말이다. 더불어 엔딩크레딧에 흘러가는 대문자로 표기된 이름, 소문자로 표기된 성이 왠지 모르게 눈길을 끈다. 결국 가족 구성원도 한낱 개인이 아니었던가. 일반화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무시할 수 없는 가족의 단면을 보여준다.


망각의 끝


출처: 영화 <킬링디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게 신일지 아닐지 확신은 못해도 누군가를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바랐을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한편에는 생명의 고귀함과 신성함을 깨닫지 못하고 아름다운 미지의 영역을 비단 나태함과 자만으로 침범하는 이들도 있다. 스티븐은 본래 눈에 보이는 것에 철저히 의지하던 사람이다. 가죽 시계보다 메탈 시계가 훨씬 비싸고 오래간다고 하는 그의 생각이나 가족과의 관계에서 은근히 보이는 권력적인 힘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손에 주어진 영향력의 무게를 망각하고 방심하고 만 것이다. 


그 아름답다던 손으로 권력을 쥐고, 머리카락 색이며 드레스 색까지 선택을 내리던 숱한 순간들이 스티븐에겐 있었다. 하지만 누구를 죽여야 할지 자기 손으로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는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의 손에 가장 최고의 권력이 주어졌는데도 말이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학교에 찾아가서 어느 학생이 더 우수한지 객관적인 판단에 의지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스티븐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힘만을 찾아 의지하려 했다. 그러나 그가 바라는 해답은 결코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결국 선택한 방법은 바로 러시안룰렛. 스티븐은 자신이 그토록 회피하던 '보이지 않는 힘'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자 한다.


신과 같은 삶을 살고자 했던 한 남자.

사람의 심장을 손에 쥐던 한 남자. 


그의 능력을 시험하는 악몽이었다.

그리고 그가 믿지 않았던 진짜 세상의 힘은 바로 그 한 남자의 손으로 증명되었다. 


평점: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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