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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Jun 20. 2018

<홈>

혼자 짊어지기엔 너무 무거웠을 그 여린 어깨가 지워지지 않는 영화

우리 이렇게 계속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출처: 영화 <홈>

준호는 귀여운 이복동생 성호와, 바쁘지만 늘 사랑이 넘치는 엄마와 정답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엄마는 의식불명 상태에 놓이게 되고, 성호는 친아빠에게 보내진다. 엄마, 동생과 함께 살 때는 좁디좁던 방이 이토록 공허하게 느껴지다니. 어느 날, 빈 집에 혼자 남겨진 준호가 신경 쓰였던 성호의 친아빠 원재의 배려로 준호도 함께 그들과 살기 시작하는데... 준호는 과연 새로운 가족을 만나 행복해질 수 있을까?


보는 내내 어둡고 자신감 없이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준호의 처지가 안쓰럽게 느껴졌고, 또 그래서 외로운 준호

아빠를 붙잡고 싶어 힘겹게 내뱉는 핑곗거리들, 도둑맞은 돈을 찾기 위해 발악하던 순간,

그리고 울먹이며 원재에게 함께 살고 싶다고 고백하던 때에 준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더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출처: 영화 <홈>

한창 세상을 알아갈 나이인 준호를 보면서 걱정이 되었던 건 바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준호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고, 그럼에도 친구들과 함께 놀기 위해서 그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갖다 바쳐야만 했다. 피시방에서 반강제로 친구들의 돈을 대신 내주는 식으로 그가 배운 '관계의 대가성'은 가족이라는 곳에서도 통하리라 생각하는 듯하다. 원재의 가족이 되기 위해 시키기 않아도 어질러진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대신하거나 심지어는 원재의 편의점 알바까지 도맡아서 한다. 그런 준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것에 만족하고 기뻐한다. 준호는 끊임없이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한다. 친구들 무리에 속하고 싶고, 가정에 속하고 싶다. 당연한 거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가장 먼저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이 두 가지 공간에서 준호는 순수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옆에 있어주리라 바라며 끊임 없이 자신이 해야할 일을 찾아야만 했던 서글픈 오해만이 남을 뿐. 사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선, 더 나아가 사랑이란 건 대가가 필요하지 않다. 원재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에게 순순히 손을 내밀고, 과일주스를 만들어서 주며, 어린 동생들이 거리낌 없이 준호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다. 준호는 아직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다. 마음을 주는 일엔 이유가 필요하지 않음을.


욱 우려되는 점은 먹고 싶은 것도 많고, 새 운동화도 사고 싶은 이 아이는 한 번도 온전한 가족을 가져보지 못해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여느 아이들이 여러 번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내뱉듯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고 늘 속으로 꾹 참아야만 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준호는 세상으로부터 관계의 어려움만을 부자연스럽게 깨달았고, 늘 남들에게 자신을 맞추느라 진정한 '장준호'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출처: 영화 <홈>

이 영화에서 다소 아쉬운 점은 막장의 소재가 곳곳에 보인다는 것이다. 준호를 둘러싼 어른들의 복잡한 불륜관계, 준호가 가방을 찾으러 간 사이 실종된 동생들, 편의점의 돈을 훔쳐가며 준호를 괴롭히는 아이들,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살아갈 곳을 잃을까 두려워 의식불명 상태인 지영 엄마의 호흡기를 떼려고 한 시도 등이 설마 설마 하던 일들이 곧이어 나타나게 되는 조금 의아한 전개들이 불편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전개 속에서 생각해야 할 한 가지는 우리들 눈에서는 쉬이 보이는 것들을 열네 살 어린 소년은 한 치 앞을 보지 못해서 쉽게 헤맨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위태로운 위치에 있는 이 순수함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 어른들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하지만 영화에서 비춰지듯 준호 엄마가 저지른 일들, 자기 힘든 사정에 한 번 더 뒤돌아보지 못하는 준호 아빠, 준호를 석연찮게 생각하는 지영이 이모, 그리고 선량한 사람이었지만 결국엔 준호의 손을 놓아버렸던 원재. 어른들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들의 무책임함 속에서 상처받은 이들은 바로 아이들이었다.

같이 살고 싶어요.
출처: 영화 <홈>

마지막에는 준호가 복지 시설에서 좋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좋아하던 축구팀에도 활동하면서 이제 이 아이도 행복해지는구나 마음이 놓였지만, 이는 섣부른 생각이었다. 이내 혼자 남겨져서, 남몰래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한 소년의 긴 그림자를 보여주며 준호가 찾아 헤매었던 건 살아야 할 '집'이 아닌, 함께 살아갈 '가족'이 필요했음을 보여준다. 아이가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집은 바로 함께할 가족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쓸쓸함만 느껴지진 않았다. 동생들과 함께 바라봤던 분홍빛 노을. 함께 하고 싶다는 염원을 담아 바라봤던 노을이 더욱 붉게 물들어 혼자 남겨진 이 어린 소년에게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너는 이렇게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위로하는 것만 같다.


홀로 서 있는 소년의 뒤로 빛이 되어준 노을처럼 이 세상엔 그들의 집이 되어줄 어른이 간절히 필요하다.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라기엔 너무 높은 곳에 있었던 집에 가기 위해 준호와 성호가 한없이 언덕과 계단을 올라야 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한동안은 오르막길을 보면 이 아이들이 생각날 것 같다.


평점: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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