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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Jan 20. 2019

<퍼스트맨>

이토록 불확실한 삶을 견디게 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

우리가 뭘 놓치고 있는지 생각하고 있어.
출처: 영화 <퍼스트맨>

사람이 세상에 위대한 발전 혹은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업적을 남기게 되는 건 때론 엄청난 대의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아닌, 의외로 작고 거창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우주경쟁이 치열하던 그때, 소련과 미국은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 앞다투어 우주 연구와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소련에 뒤지고 있던 당시 미국은 한 발 앞서기 위해 인류 최초의 달 착륙 프로젝트에 도전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와 함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했음을 잘 알고 있다. 이에 영화는 달에 발을 내딛는 하이라이트 시퀀스를 마지막에 남겨두고, 긴 시간을 두어 '닐 암스트롱'이라는 사람이 느꼈던 희열과 그 뒤의 슬픔, 그리고 분노와 혼란의 감정을 낯낯이 보여준다. 그리하여 <퍼스트맨>은 다르다. '처음'이었던 점을 강조하기보다는 그 처음을 이루기까지의 한 '사람'의 삶에 주목한다.


<퍼스트맨>은 닐 암스트롱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체험적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의 시선을 따라 그가 느꼈을 불안함을 감지하고, 아무 배경음악도 없는 고요함 속에서 숨을 죽이고 우주를 유영한다. 개인적으로는 제미니 8호에 탑승하기 위해 준비하는 신을 가장 맘을 졸이며 보았다. 우주로 나가야 하는 이 거대한 임무를 맡고 있는 와중에 그가 믿어야 할 안전장치 및 장비들은 온전치 않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입구가 닫히는 순간에는 밀실이 아니라 폐가에 갇히는 것만 같은, 두려움을 넘어서 공포감을 주었다. 심지어 우주선끼리 도킹한 후, 오작동으로 위험할 정도로 스핀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본부는 현장에 어떠한 대책도 내주지 못하고 버벅댈 정도로 준비가 미비했다. 그렇게 매번 우여곡절 끝에 살아 돌아오거나 사고가 난 그 우주선을 타지 않았다는 이유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닐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당시의 열악한 환경이 참 기가 막히고, 답답하기도 하다.


닐 암스트롱은 너무나 많은 이들의 희생을 안고 가야 했던 사람이었다. 제미니 8호에서 기절 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우주선을 컨트롤한 닐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한다.


'우리가 뭘 놓치고 있는지 생각하고 있어.'


영화 중반부에 다다르면 소중한 희생과 더불어 국민들의 세금을 가망 없는 우주 연구에 낭비하고 있는 게 옳느냐는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닐은 초청받은 백악관에서 관련 인사들에게 우주비행사라는 자신의 임무를 생각하며 마땅한 대답을 찾는다. 하지만 역사적인 발견, 나라의 발전이라는 광활한 꿈보다는 당장 눈 앞에 있는 우리 가족, 나의 삶 하나 챙기기도 어려운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혀 무시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닐은 '평범한 가정을 둔 개인의 삶'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임무를 수행할 역할'이라는 경계에 놓여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예전에 한 다큐멘터리에서 본 내용이 기억난다. 인간이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 데는 약 7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기술력이 받쳐준다고 하더라도 화성에 인간이 갈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도착하기도 전에 인간이 미쳐버리기 때문이란다. 그 긴 시간을 좁은 우주선에서 멀쩡히 버텨낼 자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이내 이해가 갔다. 우주탐사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신력이다. 모든 게 제어 가능한 로봇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강하게 이겨낼 심연의 의지가 필요하다.


모든 게 불확실하다. 비단 이런 우주 개발 연구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묵묵히 그런 불확실한 삶을 견디게 하는 건, '확신'이 아닐까. 어쩌면 <퍼스트맨>에서 비춰진 닐 암스트롱이라는 사람은 무구한 이들의 희생을 뒤로한 채 우주 개발에 안간힘을 쓰는 당시의 시대 상황이 맞이하고 있는 어찌할 수 없는 도리와 딸의 죽음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맘 속에서 '확신'이란 걸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면접에서 닐 암스트롱은 말한다.


높이 올라가 시야가 달라지면 그만큼 다른 게 보이기 마련이라고.


달은 지구에서 건너온 모든 소원과 간절한 바람이 닿는 곳이다. 닐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달로 떠났다. 가족에게 제대로 된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지구에서 반달을 올려다보며 죽은 동료와 자신의 소중한 딸을 잃은 슬픔을 떠올렸을 닐 암스트롱. 그러던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달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고, 딸을 보내지 못했던 맘을 직접 달에 내려놓고 왔다.


그리고


저 광활한 우주 너머에 반달처럼 반이 가려진 지구의 모습이 보인다. 돌아와 창에 손을 맞대고 있는 닐과 자넷의 모습이 달과 지구의 모습처럼 보인다. 보고 싶었다는 그 어떠한 말도 없었다. 아무 말 없이 정적 속에서 오가는 눈빛의 대화. 닐이 걸어온 여정이, 그리고 그의 옆에 있었던 소중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우리는 함께 지켜봐 왔기에 우주 속의 고요함만큼 이들의 맘 속에 맺혀있는 말들이 생생하게 들린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일들을 하게 만드는 건 작고 거창하지 않은 것에서 비롯하기도 한다. 불확실한 삶 속에서 우리는 확신을 찾아, 그 실마리를 찾아 끊임없이 유영한다.


평점: ★★★★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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