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향

언제쯤 뻔히 아는 향에 흔들리지 않을까


늘 이른 새벽에 아파트 단지 앞 큰길을 청소하는 청소차가 있다. 그렇게 큰 소음은 아니지만 잠귀가 밝은 탓에 자주 그 시간에 깬다. 정신이 들면 바로 일어나지는 않고, 새벽 공기에 차가워진 코끝을 이불속에 묻는다. 일찍 잠이 깨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하루가 피곤할 것 같지만, 시간의 여유가 있어 조금 더 따듯한 이불속에서 꿈지럭댈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좋다. 건조한 면 냄새. 뽀송뽀송한 특유의 이불 냄새는 늘 안정감을 준다.


기지개를 한번 쭉 편 후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향한다. 쌀랑한 거실을 가로질러 향하는 그 짧은 걸음에 아직 내리지도 않은 커피의 향이 코끝에 스치는 것 같은 것은 매일 느끼는 신기한 순간.


냉동고 향이 배어있을 것 같은 지퍼백 속 커피 원두가루는 의외로 향이 살아있다. 진한 향을 풍기는 원두가루를 종이향이 가득한 갈색 필터 안에 세 스푼을 넣고 커피포트에 붓는다. 주전자에 보글보글 물을 끓여 프렌치 프레스기에 추출한 커피를 마시는 날은 일찍 정신이 깬 날이다. 조금 더 손이 가는 커피 내리기와 진한 카페인이 필요한 날. 하지만 몸과 마음이 조금 느리게 깨어나는 날은, 드립 커피메이커 앞에 작은 의자를 끌어다 앉아 커피가 내려지는 소리를 들으며 꾸벅꾸벅 조는 순간이 너무 좋다.


새벽 공기만큼 찬 흰 머그잔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까만 커피를 붓는다. 커피를 한 모금 넘기면 밤새 굳은 몸과 마음이 조금 더 깨어난다. 따듯한 커피 한잔과 함께 창가에 앉아 창을 열고 새벽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면 몸과 마음이 환기가 되고, 커피 몇 모금을 더 넘기면서 가만히 앉아있으면 금세 새벽이 지나가고 아침의 냄새가 몰려온다. 아침의 향이 방바닥을 채워가는 햇살만큼 번져가면 일어나 이불을 개키고 한밤중을 털어낸다.



brunch.png Reminiscence © TUW 튜



오감 중 나를 가장 까다로운 이로 만드는 것은 후각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모르는 냄새가 있을까.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과는 달리, 생천 처음 맡아보는 향이라도 우리는 대부분의 향의 근원을 유추할 수 있다. 위험한 것인지, 사랑스러운 것인지.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가까이해야 할 것인지, 멀리해야 할 것인지. 새로운 멜로디를 들어도 이 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지 어렴풋이 의미부여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모르는 근원을 가진 향은 흔치 않다.


냄새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프루스트 현상은,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 등의 다른 감각처럼 의식적인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감각으로는 불가능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한다. 여름의 끝자락에 길을 걷다 나뭇잎 타는 냄새를 맡으면 벌써 가을의 한 자락을 밟았고, 가을의 서늘해지는 바람이 스멀스멀 소매 끝, 바짓단 아래로 느껴질 때 군고구마의 향을 맡는다면 이미 겨울 한가운데 서있는 자신을 본다. 물론 몇 걸음 더 걸어가면 다시 여름이고, 다시 가을이지만서도. 코끝을 스치는 향, 냄새, 바람 한 자락이 끊임없이 그리움을 불러오는 날들이 있다.


여름과 가을의 향을 구분해내는 것처럼, 한 사람의 향을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것은 그와 비슷한 모든 다른 이의 향과 그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비슷한 것 같아도 나의 엄마의 냄새는 다른 이의 엄마의 냄새와 다르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 브랜드의 향은 다른 커피 브랜드의 향과는 다르듯이.


나의 삶을 빚는 향의 모음을 선별할 때, 한 사람을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그 과정은 꽤나 주관적이다. 그리고 한번 받아들였던 향조차 다시 골라낼 때가 있다. 익숙한 나의 향기가 변할 때쯤에는 나는 성장한 것이지만, 익숙한 이에게서 다른 향이 나기 시작하면 그는 다른 이가 되어버린다. 당신에게서 다른 향이 피어오르기 시작할 때에는 당신이 변한 시점이 되어버리는 자기중심적인 생각. 너는 언제나 나에게 같아야 할 존재였기에, 그렇게 변한 너와는 이별을 하고 마는, 나의 것이라 할 것들을 고르는 일은 이렇게나 까다롭다. 이렇게 까다롭게 우매할 때도 있다.


그 많은 노래들 중 나의 마음에 맞는 노래를 선곡하여 듣고, 그 많은 음식들 중 단 몇 가지를 선택해 하루 세끼를 먹는다. 새벽 공기를 좋아하고 저녁 공기는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창문을 열고 닫을 때를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다 알고 있을 법한 향의 향연에,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는 그 모든 것들에서, 의도하였든 의도치 않았든 굳이 나를 서운하게 하는 조합이 만연하는 하루가 있다. 언제쯤이면 뻔히 아는 향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도대체 언제쯤 나의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지는 걸까.




나는 특히 아침의 향을 사랑한다. 이른 아침, 출근길 횡단보도의 불빛이 바뀌길 기다리며 올려다보는 하늘은 늘 아침의 냄새로 가득하다. 햇살의 냄새가 도로에 번지기 전의 그 공기는 늘 너무도 맑아, 매 숨마다 나 자신이 또렷해진다.


아침의 기억들.


포대기 시절 어린 아기가 맡던 그 아침의 냄새는, 이른 아침 따듯한 엄마 등에 업혀 맡던 그 눈물 콧물 겨운 냄새. 그 아기의 세상이 종일 나를 돌아보지 않던 엄마의 등과, 연푸른 하늘이 전부였을 때의 냄새. 차가운 공기 속 더운 몸과, 까치소리, 감나무 보이던 담벼락을 꿈뻑꿈벅 올려다보던 때의 냄새.


아직 초등학생이 국민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의 아이에게 아침의 냄새는, 오후반에 등교할 때도 늦잠을 자 헐레벌떡 뛰던 인도에 비추던 정오의 햇살 냄새. 그 전날 비에 젖었던 책가방이 아직 마르지 않아, 뛰는 작은 등의 책가방이 흔들릴 때마다 퍼지던 퀴퀴하지만 정감 가득했던 교과서 냄새. 500원짜리 병아리를 같이 구경하던 친구들. 하굣길, 떡꼬치와 붕어빵이 가장 먹고 싶던 시절.


중고등학생 시절 맡았던 낯선 땅의 아침. 축축한 가을의 향. 그 외로웠던 시절. 유독 차고 길던 겨울을 가졌던 나라의 아침 냄새는, 정강이 시리게 찬 기억으로.


아침엔 늘 하늘을 올려다본다. 천천히 숨을 몇 번 쉬어내며 나의 기억들을 보듬어본다.


한숨만큼 깊고, 한숨만큼 짧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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