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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밀도 Oct 27. 2024

3장. 다섯 개의 문(2)

의사가 처방해 주었던 수면 유도제는 받아왔던 그대로 가방 구석에 있었다. 잠을 편히 자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문을 전부 열기도 전에 악몽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생겼다. 그 누구도 그때 내가 당한 일을 설명해주지 않았다. 기억이 없어서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지금 나에게는 자명이 설계해 준 악몽의 메타버스밖에는 믿을 구석이 없다. 그것이 내 기억을 돌려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실마리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의 무의식을 믿어 보기로 했다.


첫 번째 탐험 후 자명의 실력에 감탄했다. 처음 진입할 때 먹는 흰 알약의 도움인지 악몽의 메타버스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다. 분명히 VR기기를 머리에 쓰고 누워있는 상태에서 접속했는데도 나의 모든 감각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고 덕분에 실제라고 착각했다. 손끝의 감각, 시각, 청각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작은 감정마저도 증폭되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VR기기로 탐험한 악몽의 세계와 실제로 자면서 꾸었던 악몽의 경계가 느껴지지 않아서 한참을 앉아서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캐비닛은 실제로 존재했던 기억이었다. 나는 캐비닛에 갇힌 적이 있었다. 내가 당했던 그들의 장난질 중에 하나였다. 그들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캐비닛 속에 여러 번 갇혀 있던 것은 기억이 났다. 그 기억은 진실이었다. 진실이 나를 치욕스럽게 만들었다. 가해자들의 얼굴만 기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등신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쨌든 심연에 있던 기억 하나를 건져 올렸다. 아직 기억이 완전하지 않지만, 심연에 있던 기억 하나가 살아나가 아무렇지 않았던 캐비닛이라는 물건에 대해 거부감이 바로 느껴졌다. 내 악몽과 악몽의 메타버스는 서로 영향을 주고 내가 실제로 살아가는 현실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몸은 몹시 피곤했지만 나는 습관적으로 진성학원으로 향했다.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만지고 사용했던 내 이름이 적힌 캐비닛을 여는데 표면에 닿는 차가운 느낌에 소름이 끼쳐왔다.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던 루틴 중의 하나였는데 갑자기 캐비닛이 거북하고 불편해졌다. 나는 가방 구석에 있던 약봉지를 꺼내어 캐비닛 안으로 던져두었다. 오늘 오후는 병원에 가는 날이었고 저 약들은 나와 함께 갈 수 없었다. 최대한 손과 접촉이 없도록 팔꿈치로 캐비닛 문을 꽝하고 닫았다. 오전 수업을 끝내자 권 비서님의 문자가 와있었다. 나는 약속장소로 향했다. 교실을 나서기 전에 모자를 최대한 눌러쓰고 옷을 여몄다. 면도하다 났던 얼굴의 상처는 없어진 지 오래였지만 나는 여전히 반창고를 붙이고 다녔다. 일종의 변장술이었다. 반창고 하나로 나다움이 조금은 사라졌다. 내가 기억을 완전히 되찾기 전까지는 아무도 나를 알아봐서는 안 되니까 나다움은 덜어내야 했다. 


쉬는 시간에 커피나 간식을 사러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학원 입구에 가득했다. 나는 홀로 빠져나와 큰 보폭으로 걸었다. 동제도 홀로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 뒷모습을 보고 있을까? 자명을 소개해주고 나서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은 걸까? 그런 도움이나 정보를 줬다고 해서 진행 상황을 궁금해하거나 오지랖을 부리는 타입은 아닌 것 같긴 했다. 그런 점이 동제에게 호감을 갖게 했다. 그의 존재는 왠지 불편하지 않았다.

진성학원에서 쭉 걸어 나와 6차선의 대도로 옆 인도를 걷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걸으면서 보도블록의 이 빠진 부분들, 육교가 시작되는 손잡이 등으로 권 비서님의 픽업 위치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육교를 지나면 절반 정도를 걸어왔다는 뜻이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빨리 입김이 나는 겨울이 오면 좋겠다. 나를 더 안 보이게 가릴 수 있을 테니까.


“야. 박정민! 너 박정민 아니냐?”


내가 아직 악몽의 메타버스에 접속 중이었던가? 나도 모르게 밴드가 있는지 손목을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은 현실이었다. 우려하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나는 뒤를 돌아볼지 망설였다. 나는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걸어가기로 했다. 누군가를 만나봐야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판단했다. 


“박정민 너 맞지?”


남자는 앞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과 반대 방향으로 내 어깨를 잡아 뒤로 젖혔다. 예상치 못한 터치에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벙거지를 푹 눌러쓴 탓에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이 남자는 강자였다. 내 어깨를 잡는 손의 힘과 시선을 떨어뜨렸을 때 보이는 단단한 허벅지만 봐도 알았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타인의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 큰 목소리에서 강자임을 감지했다. 이 새끼가 나를 캐비닛에 가둔 새끼인가?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확신이 없었다. 목소리는 익숙했다. 처음 들어본 목소리는 아니었다.


“사람 잘못 봤어요.”

“와… 너 맞는데. 나 서대용 기억 안 나냐.”

“그런 사람 모릅니다.”


있는 힘을 다해 어깨의 방향을 틀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남자가 나를 뒤 따라와서 패대기 칠 것만 같았다. 남자의 어이없어하는 시선이 나의 등에 꽂혔지만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 거리도 이제 안심하기는 틀렸다. 하루빨리 기억을 해내고 나를 이렇게 만든 자식들의 얼굴을 알아봐야 한다. 재빨리 픽업 장소로 달려가서 차에 탔다. 타이밍만 맞는다면 아직 걷고 있는 남자의 옆을 지나치면서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손잡이를 꽉 쥐었다. 심장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선팅이 진하게 되어 있는 차라 밖에서는 나를 볼 수 없겠지만 그와 눈이 마주칠까 봐 겁이 났다. 눈을 마주치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까 두려웠다. 남자는 아직도 걷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있지 않았고 가방도 없이 슬리퍼만 끌면서 걸어갔다. 어딘가로 전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나를 발견했다고 다른 가해자에게 전화하는 것일까? 박정민, 이 자식, 여기 숨어있다고. 다시 가지고 놀자고 전화를 하는 걸지도 모른다. 남자는 진성학원에서 멀지 않은 곳 앞에 있는 건물 앞에서 멈췄다. 도로변에 주차된 오토바이 앞에 서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덕분에 그 남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지나갈 수 있었다.


서대용. 내가 기억하는 얼굴이었다. 5년 전이라 바로 기억이 나지 않았던 거였다.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가해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게 처음으로 치욕을 맞보게 해 준 새끼. 시발새끼는 맞다. 강자에게는 겁이 많은 하이에나. 약자들에게 군림하고 싶어 안달 난 비겁한 부류였다. 2차 성징이 남들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자신의 육체적인 발달을 아이들에게 과시하고 싶어 했다. 그때 마침 학기 중간에 전학 온 내가 목표물이 된 것이었다. 그는 일종의 가해자가 될 성싶은 떡잎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다양한 괴롭힘을 모방해서 나에게 실험을 하고 짓밟으려 했다. 덕분에 1년 반 동안, 새로운 중학교에 대한 기억이 유쾌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이미 명백히 약자 중의 약자, 피해자 중의 피해자로 분류되어 버렸다. 하지만 저 새끼는 정신을 잃도록 머리를 가격할 수 있는 부류는 아니었다.


담배를 물고 있는 그의 얼굴을 차 안에서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지나쳤다. 5년 전의 이목구비는 그대로 남아있었고 배가 나오고 어깨는 훨씬 벌어졌다. 살집으로 인해서 그가 더 커 보이기도 했다. 그는 갑자기 전화를 받고 난 뒤, 담배를 발로 비벼 끄고는 바로 앞에 있는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졌다. 그가 탄 오토바이 뒷좌석 상자에는 신속배달이라는 광고문구가 적혀있었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익숙하게 병원에 들어가서 내 이름을 부를 때까지 생각을 멈추고 멍하니 기다렸다. 잠시 후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정민 군, 처방해 준 약은 괜찮았어요? 밤에 잠은 잘 잤어요?”

“네. 선생님. 약을 먹으니까 꿈도 꾸지 않고 잘 잤어요.”

“그래서 그런지 안색이 좀 나아진 것 같네요.”


거짓말. 나는 아직도 못 자고 있는데 내 얼굴이 좋아졌다고 말하다니. 사람은 착각의 동물이다. 때로는 문장 하나에 판단이 흐려지고 잘못된 판단을 옳다고 믿는다. 내 몰골을 보고 좋아졌다니 자신이 내린 처방이 잘 들어맞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저 착각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지켜야 할 악몽이 있었다. 나 또한 악몽을 탐험하다 보면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피차 다르지 않았다.  


수면 유도제 2주 치를 더 받아왔다. 장기간 복용하면 의존성이 생길 수 있어서 용량을 줄였다고 했다. 상태가 괜찮다면 이틀에 한 번씩 복용하면서 수면과 악몽을 지켜보라고 했다. 의사들은 이렇게 지켜보자고 할 뿐이었다. 나의 악몽도 지켜보고, 나의 잃어버린 기억도 지켜보자고. 하지만 나는 방관자처럼 지켜볼 수가 없었다. 악몽도 잃어버린 기억도 지켜보지만 않을 테다. 내가 반드시 해결해 낼 것이다.


나는 중요한 의식을 치르듯 VR 탐험을 준비했다. 집 안의 다른 구역에 불이 꺼지기를 기다리고 기기들을 나란히 내 앞에 내려놓는다. 알약과 물 한 컵도 손이 닿기 편한 위치에 놓았다. 그리고 자명이 알려준 규칙들을 상기했다. 이틀 연속은 접속하지 않을 것. 30분 이상 접속하지 않을 것. 진짜 꿈과 VR 탐험을 헷갈리지 않게 하려고 옆에는 메모장을 준비했다. 그럴 정신이 있을지 모르지만, 접속을 빠져나온 직후에 어떤 단서라도 적어두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 접속을 시작했다. 나는 거침없이 다섯 개의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나무에 매달린 나를 보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첫 번째 문은 내가 어제 부숴놓은 그대로 있었다. 쪼개진 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면서 쉬이, 쉬이 소리를 냈다. 바로 두 번째 문으로 직진하려는데 안개가 많이 끼어있었다. 안개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누군가 두 번째 문 앞에 서 있었다. 뒤를 돌아 있어서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나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등이 두툼한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낮에 봤던 서대용이었다. 한 손에는 담배를 쥐고 있었다. 내가 그날그날 하는 경험에 따라서 변수 개체가 등장할 수 있다고 했는데 오늘은 서대용이 변수 개체로 등장했다. 


“아까는 나를 모른다고 구라 치더니. 섭섭하다?”


서대용의 입에서 역겨운 담배 냄새가 나의 모든 구멍을 타고 온몸에 퍼졌다. 반사적으로 기침이 나왔다. 


“이 새끼. 아직도 이런 거에 기침하네.”


내 앞에 서 있는 서대용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데도 서대용의 한 마디에 내 몸은 경직되었다. 5년 전이야 내가 저 자식의 개처럼 살았지만, 지금은 아닌데 내 몸은 반사적으로 굳어 있었다. 서대용은 주머니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어 나에게 건넸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라이터를 켜는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나는 충격으로 뒤로 넘어졌다. 라이터를 발화점으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두툼한 서대용의 몸이 순식간에 불덩이처럼 변했다.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하고 몸부림치다 어느새 재가 되어 사라졌다. 내 앞에는 검게 그을린 문틀만 남아 있는 두 번째 문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문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 불난리 덕분인지 연기가 자욱하고 목이 매캐했다. 문 안쪽의 안개 너머에서 타는 냄새가 넘어왔다. 담배 냄새보다 더 역한 정체불명의 냄새였다. 증강된 내 후각이 냄새를 쫓아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냄새가 더 역했다. 냄새에 집중해서 가고 있는데 벌에 쏘인 것처럼 등이 따가워졌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니 아픔을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이번엔 배 안쪽이 따갑고 쓰렸다. 웃옷을 들어 따가움이 느껴지는 곳을 살펴봤다. 십 원짜리 동전 크기로 불을 지지는 것처럼 몸 곳곳에 상처가 생기고 있었다. 따갑고 쓰리고 고통스러웠다. 오감이 증폭되어 고통이 훨씬 심하게 느껴졌다. 투명 인간이 내 몸에 불을 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한번 더 이 고통을 무시하며 한 발씩 나아갔다. 앞에 커다란 등받이 회전의자가 보였다. 의자 머리 위로 짧은 머리카락의 머리통이 살짝 보였다. 낯선 남자가 편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남자의 측면으로 걸어서 남자를 좀 더 자세히 보려고 했다. 남자는 다리를 꼬고 앉아서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다. 옆에는 이미 다 타버린 담배꽁초들이 재떨이에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나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측면을 따라 계속 걷는데 계속 제자리였다. 남자의 회전의자가 나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인지 내가 밟고 있는 땅이 움직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남자는 물고 있던 담배를 손으로 빼서는 앞으로 몸을 숙였다. 그리고 담배를 어딘가에 비비면서 끈다. 테이블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이미 군데군데 담배로 지진 상처가 가득 찬 허연 사람의 등이 보였다.


등을 내보이고 엎드린 사람은 신음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리를 마음껏 내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의 등에는 더 이상 담배를 지질 빈 공간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는 일어나서 상처가 가득한 등을 발로 차버렸다. 남자의 등이 뒤집혔다. 눈물범벅이 되어 있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어두워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첫 번째 문을 열어봤던 경험으로 저 사람이 나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내 등에도 고통이 느껴졌다.


나는 그 새끼를 향해서 달려갔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았다. 내가 갈 수 없다면 그 새끼가 오게 해야 했다. 이 개자식. 인간말종 새끼야. 내가 여기 있다. 있는 힘껏 욕을 퍼부었다. 그 새끼는 내가 소리치는 곳으로 고개를 까닥하더니 담배 하나에 다시 불을 붙이고 뒤를 돌아봤다. 그래, 나 여기 있어. 네 면상이나 보자. 하지만 고개를 돌렸을 때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더러운 입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흐릿하게 뭉개져 있었다. 지난번처럼 고통의 기억만 되살아나고 가해자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걸까? 억울한 마음에 뭐라도 저 새끼에게 고통을 가하고 싶었다. 회전하던 공간이 멈춰지고 우리는 서로 마주 보게 되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봤다. 무기가 될 만한 변수 개체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주머니에 차가운 금속이 만져졌다. 금속재질의 라이터였다. 나는 라이터를 있는 힘껏 그 새끼 얼굴을 향해 던졌다. 얼굴을 스친 것 같은데 미동도 하지 않고 담배를 피워대고 있다. 주머니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을 던졌다. 하지만 그 새끼한테 상처하나 줄 수 없었다. 나는 울부짖었다. 이 시발 새끼야.


갑자기 그가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한다. 그를 노려보고 싶었지만 얼굴이 없다. 그는 발을 들어서 내 배를 가격했다. 그의 커다란 발이 배를 가격하러 오는 것을 내 눈으로 똑바로 봤지만, 손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가격 당한 나는 뒤로 나뒹굴었다. 고통에 신음하며 바닥에 뒹굴었다. 몸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입에서 담배 연기만 내뿜는 그 자식이 쪼그려 앉아서 내 목에 담배를 비벼 끈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내가 참을수록 그는 내 상처 부위에 더 깊이 담배를 비벼댔다.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손으로 나는 주머니에서 다시 라이터를 꺼냈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 불을 켰다. 그 자식의 바지 끝단에 라이터 불을 옮겨 붙게 했다. 조금씩 바지에 불이 붙었다. 그는 뒤늦게 알아차리고 일어났지만,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순식간에 온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그때 알림이 울렸다. 벌써 30분이 다 되었다. 저 멀리 의자 앞에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의 정민이 보였다. 이제 끝났어. 정민. 나는 안간힘을 다해 밴드의 EXIT 버튼을 눌렀다.


노란 알약을 삼키고 침대에 누웠다.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 시발 너무 고통스럽다. 내가 본 것은 내가 잃어버린 기억인가? 내가 만들어낸 공상인가? 분명히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이 악몽의 메타버스는 나로부터 만들어진 가상세계라는 것이다. 나의 기억 속, 감정 속, 뇌의 신호 속의 무언가가 만들어준 세계였다. 2년 동안 나는 얼마나 끔찍한 새끼들을 만난 것인가? 나의 기억과 감각이 증폭되었다고는 하지만 분명히 잊힌 기억은 맥락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악마 같은 새끼들. 인간의 탈을 쓰고 잔인한 짓을 한 짐승들. 문을 여는 것이 생각보다 고통스러워서 이쯤에서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눈물이 나를 연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몸을 일으켜 메모장에 잔상들을 휘갈겨 쓴다.


[메모] 두 번째 문 – 인간 재떨이. 시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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