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이름이 끼치는 회사의 문화 영향
"션, 이거 어떻게 생각해요?"
회사에서 이렇게 불리는 게 이제 너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하지만 가끔 생각해봐요. 왜 스타트업에서는 '승훈'이 아닌 '션'으로 부를까요?
스타트업에 다니시는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텐데요. 회사에서 Alex, Emma, Jay 등을 쉽게 들을 수 있어요.
"서준님은 이걸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이렇게 말하는 순간 뭔가 격식을 차리게 되잖아요. '님'을 붙이는 순간 자연스럽게 거리감이 생기고요.
하지만 "제이, 이거 어떻게 생각해?"라고 말하면 어떤가요? 훨씬 편하게 느껴지지 않으세요?
영어 닉네임의 가장 큰 장점은 선입견을 지워준다는 것이에요. 한국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어느 정도 정보가 보이거든요:
"이름이 되게 특이하시다"
"오 나랑 성이 같네. 어디 출신일까?"
"요즘 이름 같이 느껴지네"
이런 추측들은 선입견을 만들고, 회사 안팎의 나의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 같아요. 영어 이름을 쓰면 이런 정보들이 사라지니까 순수하게 그 사람의 아이디어와 능력에만 집중할 수 있어요.
왓챠에서 문화가 참 좋았는데, 여러 가지 실험과 시도로 찾은 지점이 결국 영어 이름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수평적으로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편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이걸 위한 실험이었는데요:
언니/오빠/형: 너무 가까웠음
영어 이름 + 님: 결국 적정 거리보다 좀 더 멀어지는 거리감
영어 닉네임 (님 없이): 딱 적절한 거리!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찾은 '골디락스 존*'이었던 거죠.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딱 좋은 거리감이요.
*골디락스 존: 천문학에서 유래된 용어로, 생명체가 살기에 적절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항성으로부터의 거리. 현재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최적의 지점'을 의미하는 용어로 확장 사용됨.
쿠팡에서는 창업자 김범석 대표도 '범(Bom)'이라고 불러요.
쿠팡이 영어 이름을 도입한 이유가 명확해요. "3년차 직원이 타 부서 10년차 직원에게 부담 없이 자료를 요청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게 쿠팡의 설명이에요.
실제로 부서 간 원활한 소통에 크게 기여했고, 연차나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든 거죠.
*출처: 한국경제, "수평적 문화 만들자" 영어 닉네임 도입했지만
영어 이름을 사용하면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효과가 있어요. 회사 자아와 일상의 자아를 분리할 수 있는 거죠.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부분인데요:
"회사에서 저스틴이라는 캐릭터가 존재하는 거죠."
"퇴근하면 민준으로 돌아가는데, 저스틴이랑 전혀 다른 즉흥적이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회사 사람들은 민준이라는 사람을 잘 볼 수 없죠. 이게 사생활을 분리하는 방법이라서 좋더라고요."
영어 이름을 쓰는 회사를 다니면서 점점 저에게 흥미로운 변화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회사에서만 '션'이었는데, 어느 순간 밖에서도 션으로 불리기 시작했거든요. 프로덕트 디자이너 친구들을 만날 때도, 블로그를 쓸 때도 자연스럽게 '션'이 되었어요.
왜냐하면 회사에서의 제 모습이 실제 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인데요. 실제로도 직장 동료를 밖에서 만나면서 자연스레 일상에서도 션이 된 것 같아요.
직무적으로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일상에서도 고민을 하고 현상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어서, 회사 밖에서도 고민과 생각이 영어 이름처럼 유지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영어 닉네임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회사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측면이라고 생각해요.
'부장님', '과장님'에서 'Kevin', 'Sarah'로. 이 작은 변화가 아이디어를 더 자유롭게 나누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그래서 회사를 알아볼 때 영어 이름을 쓰는지 체크해보는 편이에요.
여러분들의 영어 이름은 어떻게 되나요? 회사 밖에서도 쓰는지 궁금합니다 :)
오늘의 월사단은 여기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40도까지 올라가는 폭염 속에서 다들 더위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