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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Oct 12. 2021

인터뷰 #2 : 성견과 성묘의 합사 질적 연구 2

고양이에게 물었다.

인터뷰 #2 : 성견과 성묘의 합사 질적 연구 2

고양이 두부가 어느 정도 집에 적응한 듯 집 안을 헤집고 다닌다. 

낯선 이들과의 동거는 괜찮은지, 푸코에 이어 두부에게 물었다.


누워서 재택근무 중인 두부 박사

Q.  안녕하세요, 잠시 시간 괜찮으세요?

A. 네~


Q. 많이 바쁘신가 봐요?

A. 아, 아직 여길 좀 탐구 중이라서요. 창문이 좀 많아서 어디가 누워있기 최적인지 따져보고 있어요.


Q. 창문을 좋아하시나 봐요?

A. 아, 네 제가 밖에 보는 걸 좋아합니다. 움직이는 건 다 좋아하는 편인데 여기는 저를 자극하는 게 많네요. 안 보려고 해도 자꾸 시선이 가서 저도 모르게 그만.. 그리고 빛 들어오는 데 눕는 걸 좀 선호해서요.


Q. 이전에 높은 집에서 생활하시다가 저층으로 오셨는데 생활은 어떠세요?

A. 제가 원래 높은 걸 좋아하는데 생활 자체는 크게 바뀐 건 없어요. 그보다 식구가 많아진 게 차이일 수 있겠네요.


Q. 아 원래 혼자 생활하셨었나요?

A.  전엔 늦게 퇴근하는 인간 하나랑 살았어서 낮에 정말 조용했어요. 혼자 창밖 보거나 굴러다니거나 뭐 자거나 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죠.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많이 자둘 걸 그랬네요. (웃음)

 

이사 전 두부의 나날들


Q. 이사하고 식구가 많아져서 변화들이 있을 것 같아요.  

A. 인간은 좀 조용한 편이에요. 말이 별로 없고 저처럼 누워있는 거 좋아하고 집 밖에 잘 안 나가더라고요. 화장실 잘 치워주고 밥 챙겨주고, 잘 쓰다듬어 주니까 크게 불만은 없어요. 그런데 저희 집에 푸코 님이 있어요. 개죠. 개랑 살아보는 건 처음이에요.


Q. 얼핏 보니까 푸코 님이 두부 님을 꽤 좋아하는 것처럼 보여요.

A.  너무 귀찮아요. 치대고, 들이대요. 보니까 개 자체가 나쁜 개 같진 않은데, 제 간식을 계속 훔쳐 먹더라고요? 심지어 제 화장실도 가끔 훔쳐먹어요. 그게 좀 짜증 나서 저도 몇 번 때렸어요. 그러면 안 되는 거 저도 아는데, 너무 갑작스레 들이대고 막 푸다닥 오니까 저도 모르게 그만....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엉덩이 들이밀고 이러는데 저는 내향형이거든요. 처음에 그 선을 정하는 게 좀 힘들었어요.


치대는 푸코와 발톱을 뻗은 두부


Q. 그렇지 않아도 아까 두 분 인터뷰에 실을 사진 찍다가 깜짝 놀랐어요. (사진에 나온 두부의 시선은 강렬하게 푸코를 향하고 있었다.)

A. 나름 방긋 웃은 거였는데, 푸코 님은 저보고 포커페이스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사진 찍으면 좀 어색해져요. 푸코 님은 보니까 옛날부터 많이 찍으신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렇게 자연스럽지. 저는 아직도 어색해요. 나름 신경 써서 찍은 거예요. 귀찮아요. 근데 이거 얼마나 더 해야 하나요? 자야 할 시간이에요.


좀 모자란 해맑은 친구와 거울 보는 두부


Q. 아직 오전인데요? 얼른 끝낼게요. 원래 성격이 되게 예민하셨다고 들었어요. 지금도 사실 꽤 조심스러워하시는 게 느껴지고요.
A. 원래 성향도 좀 얌전하고 차분한 편이에요. 움직이는 거보단 누워있는 게 좋고. 또 막 시끄럽고 붐비는 거 보단 조용한 게 좋아요. 그런데 잠깐 길 위 생활한 적이 있어요. 집 밖은 정말 흠. 그때 생각하고 싶지도 않네요. 대재앙이 펼쳐졌습니다. 어릴 적부터 인간들하고만 지내다가 맞닥뜨린 야생이란… 내가 온전히 스스로 나를 지켜야 하니까 아직도 그때 습관이 남아서 예민해지고 작은 소리나 움직임에도 흠칫 놀라곤 해요. 낯선 냄새, 소리 다 경계하게 되고요. 그래서 푸코 님이 갑자기 확 나타나면 저도 모르게 무조건 반사적으로 손이 먼저 나가요.


Q. 보기엔 되게 도도하고 우아한 느낌도 있으셔서 고생 같은 건 안 겪어 보신 줄 알았어요. 혹시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얘기 있으세요?

A. 자러 갑니다. 저는 자고 일어나야 우아하고 이쁘다는 걸 제가 압니다. 그리고 자고 일어나야 배가 고프니까 또 뭔가 먹을 생각에 설레어 얼른 먹고 다시 자야 합니다. 사실 저도 동물 생태계에서 뭘 해야 한다던가 저의 역할이나 소명 같은 거 생각해본 적 있는데, 막상 하고 싶은 게 없어요. 뭐라도 안 하면 지구 무너질 듯 아등바등거리던 인간들에게 저의 게으름을 나눠주고 싶습니다. 

주인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삶은 누구에게나 고단하다는데, 솔직히 전 안 고단해요. 길 위에서 방황하던 시절만 고단했어요. 근데 인간들 모두가 그 당시 저처럼 방황하고 있는 거라면 다들 피곤하긴 하겠네요. 우리 주인들 만이라도 그러지 말길 바라요. 아, 그리고 푸코 님도 저처럼 길 위 시절이 있어서 그런지 제가 좀 예민하게 굴어도 많이 이해해주시더라고요. 확실히 고생해본 티가 나요. 감사하다는 말씀 대신 전해주세요.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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