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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Sep 05. 2021

인터뷰 #1 : 성견과 성묘의 합사 질적 연구 1

개에게 물었다.

푸코와 두부가 함께 한지 두세 달이 지났다. 푸코가 진공상태의 두부에게 적응하는 만큼 두부는 공간과 관계들에 적응했다. 자기 영역에서 꼼짝 않던 두부는 어느덧 거실과 안방을 드나들고 햇살 좋은 곳들을 구경하고, 꽃내음을 탐방한다. 둘 다 미스터리한 과거를 안고 성견, 성묘인 상황에서 합사를 해서 나름 걱정이 있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으나 둘에게 물어본다.


샤워를 마친 푸코씨


Q. 자기소개 간단히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김푸코 이고 나주 김 씨입니다. 나이는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보호소 두 곳 정도 생활하다가 지금 서울에 정착했습니다.


Q. 꽤 여러 곳 전전하시다가 정착하신 걸로 아는 데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어릴 때 기억은 정확히 안나지만 부산 쪽이었어요. 그런데 뭐 보신탕집도 가고 산에 버려지기도 하고 나주 보호소 독방에서 지내다 안락사 하루 전 지금 주인을 만났습니다. 제가 그때 워낙 예민하고 성질이 고약해서 아무도 안 데려가려고 했어요.

참 그때 돌이켜 보면 왜 그랬나 싶어요. 지금은 사람들이랑도 잘 지내고, 다른 개님들하고도 잘 지내는 편이에요. 어릴 때 없이 자라서 그런지 여전히 식탐이 좀 강하긴 합니다. ㅎ

 

Q. 최근에 집에 새로운 구성원이 생겼는데 어떠세요? 힘든 점은 없으세요?

아, 두부님이요? 당연히 있죠. 자꾸 저랑 눈이 마주치면 손톱을 세워서 때립니다. 저는 그냥 지나가고 있었거든요? 너무 억울해요. 아니 자기가 딴 데로 지나가든가!
아, 그리고 하나 더 있는데 아시다시피 제가 후각이 진짜 예민해요. 또 좀 깔끔한 편이라 집에서는 절대 볼 일을 안 보거든요. 아니 근데 그 새로 온 분은 자꾸 집에다 똥 싸고 오줌 싸고 합니다. 뭐 덮으려고 하는 거 같긴 하던데 하.. 그래도 소용없어요. 제가 진짜 개코거든요. 뭐 주인이 바로 치워주면 상관없는데, 없을 때 똥이나 오줌 싸면 좀 힘들어요, 솔직히. 주인이 가끔 장난친다고 그분 똥을 저한테 들이미는데 진짜 정색하게 된다니까요. 가끔 뭔가 맘에 안 들거나 심기 불편할 때에는 은밀한 곳에다 볼 일 보고 시치미 뚝 떼고 있더라고요. 참나!


Q. 힘든 점도 있지만 나름 재미도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주인 나가고 나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있는데, 저한텐 혼자 있는 시간도 꽤나 중요하거든요. 처음엔 다른 누가 있으니까 짜증 나더라고요. 그런데 뭐 둘이 아주 친하지도 않고, 그분도 잠자기 바빠서 그런지 그냥 서로 자는 거 보고만 있다가 또 잠이 듭니다. 아, 또 적적한 게 좀 줄어든 거 같아요. 두부 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나만 그런가?

그리고 진짜 좋은 점이 하나 있어요. 얼마 전에 주인 친구가 맛있는 간식을 사다 줬거든요? 그런데 주인이 그걸 높은 데다 항상 올려두고 나가요. 그럼 저는 뭐 어차피 못 먹으니까 주인 올 때까지 기다리는데 두부 님은 생각보다 행동파더라고요. 슥슥 올라가서 간식 떨어뜨려줘서 그날 주인 오기 전까지 포식했어요. 와, 뭔가 쓰레기통 뒤엎어 먹을 때보다 스릴도 있고 맛도 있고 좋았어요. 근데 요샌 좀 뜸하네요.

음… 또 주인이 두부 님이 야옹거리면 간식을 줘요. 그때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저도 하나 정돈 주더라고요. 그래서 좀 간식을 자주 먹는 게 좋다? 뭐 이 정도 일거 같네요. 얘기하고 보니까 좋은 점도 많네 ㅎㅎ


두부의 간식과 어부지리

Q. 두 분이 집에 있으면 주로 뭐하세요?

아무래도 좀 조용한 시간을 즐기고 싶어서 잡니다. 둘 다 잠이 좀 많은 편인데, 사람 있으면 숙면하긴 어렵죠. 다행히 두부 님도 잠이 많더라고요. 주인 나가면 둘이 시원한 바닥에 배 깔고 푹 잡니다. 그래야 좀 피로가 풀려요.

뭐 안 잘 때는 가끔 이런저런 얘기하긴 해요. 뭐 '니 밥은 어떠냐.' 주로 이런 얘기합니다. 의외로 둘이 관심사가 좀 비슷해요. 굳이 꼽자면 '반려인간, 밥, 잠' 이게 저희 주로 대화 키워드예요. 아 대화하다 가끔 벽이 느껴질 때도 있긴 해요. 가끔 꼬리 쳐들고 오면 진짜 무서워요. 또 때리고 혼자 위로 올라갈 거 같아요. 그리고 자거나 쉬고 있으면 자꾸 누가 쳐다보는 기분도 들어요. 기분 탓이겠죠?


Q. 인간(주인)이 두 분의 상황을 고려해서 뭐 조율하거나 그런 건 없나요?

주인이 뭐 저희 고충을 알겠어요? 아마 자기도 힘들 걸요. 사실 두부 님이랑 저랑 라이프스타일이 좀 달라요. 저는 하루에 그래도 두 번은 외출해줘야 좀 기운도 나고 사회생활도 하거든요. 주인이 하루에 두 번은 데리고 나가는데, 두부 님은 또 자기 전에 계속 여기저기 만져줘야 자요.
그런데 또 아침에 엄청 일찍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해도 안 떴는데 새벽에 막 밥 달라고 야옹거리더라고요. 와, 제가 진짜 조용한 편이거든요. 짖는 일이 없는데 두부 님은 정말 엄청 야옹거려요. 주인이 반응할 때까지 야옹하니까 주인이 게으른데 어쩔 수 없이 일어나더라고요. 저도 좀 따라 해볼까 봐요. 무튼 주인도 저희랑 적응하느라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거에요.


Q. 앞으로 어떻게 지내시고 싶은지 혹은 뭐 계획이라든지 그런 게 있으신가요?

어차피 계획 세워봤자 다 부질없다는 걸 알아요. 저는 여러 사건을 통해 온몸으로 경험했어요. 지금처럼 즐겁게 잘 먹고 잘 자면서 지냈으면 좋겠어요. 두부 님한테 가끔 놀자고 하는데 거절당하는 게 부지기수라... 그래도 뭐 각자 차이를 인정해야 즐겁게 지내겠죠? 그리고 저는 두부 님 간식도 너무 맛있어서 좋아요! 또 제가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편인데 두부 님은 진짜 포커페이스라 무슨 생각하는지 잘 살펴봐야 해요. 그래도 두부 님이 저희와 건강하게 잘 지내실 거 같아요! 근데 두부 님 간식 먹어도 되나요? ㅋㅋ


노린다. 너의 급소를.

<인터뷰 2 두부에게: 새로운 식구와 거처를 묻다>가 다음 달에 연재됩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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