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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Oct 07. 2022

회색 인간에게 온 회색 고양이

조건부 사랑의 유한성

 살고 싶은 동네를 사전 탐방할 때 길고양이 급식소를 유심히 보곤 한다. 이전에 살았던 동네도, 새로 이사 온 동네도 모두 길 위의 생명들에게 친절하다. 지금 사는 동네엔 각각의 구역마다 고양이들을 챙겨서 돌봐주시는 분들이 있어서인지 고양이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고 대부분 한쪽 귀에 TNR(중성화 수술) 표식을 갖고 있다.


동네에서 만난 친구들. 두부와 닮은 좌측 고양이는 차라리 유기가 아닌 유실이길 바란다.


 푸코와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던 중 흰 고양이를 만났다. 유기가 아닌 차라리 유실이길 바라는 두부와 닮은 흰 고양이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길고양이’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하얗고 마른 길고양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꾀죄죄한 고양이의 회색 털 사이로 한 때는 집고양이였던 흔적들이 남아있다. 우리 두부의 첫인상도 저랬을까.

 두부는 화실 상가 계단에서 발견됐다. 대학가 원룸이 많은 지역에서는 학기가 끝날 때쯤이면 예쁜 품종묘들이 떠돌아다니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파랗고 노란 눈을 가진 두부도 그중 하나였다. 거의 회색 털을 가진 고양이는 제야에게 구조되었다. (사실 구조라기보단 두부의 마지막 선택에 가깝다.) 꽤 늦은 시간이었고 고양이는 난생 처음이었던 그도 선뜻 회색 고양이를 들일 수가 없었다. 그는 두부에게 밥을 사러 오는 동안 그대로 있으면 책임지겠다는 조건부 공략을 내세웠고, 두부는 그 계단에 한참을 앉아있었던 덕분에 결국 식구가 되었다. 사람 손을 탔던 고양이는 한동안 겁에 질려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길 위에서 어떤 생활을 한 건지 의문투성이인 녀석은 화실 창고 구석에 들어가서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처음 한 달은 캣타워에서 생활하려고 하지 않는 바람에 제야와 서로를 난로 삼아 두부를 패딩 속에 매일같이 안고 잤다. 그래서인지 두부는 여전히 심장 박동에 등을 대는 것을 좋아하고 겨드랑이와 가슴팍에 파묻혀 있는 걸 사랑한다. 숙면의 시간이 찾아오면 여전히 두부는 힘껏 침대 위로 뛰어올라 겨드랑이를 파고든다.


 그와 주고받은 온기 덕에 회색털의 마른 고양이는 새하얀 털을 가진 뚱뚱냥이가 되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이들은 새하얀 뚱뚱고양이를 예뻐해 주었다. 간식을 한 아름 사들고 와 불러도 대답 없는 두부 이름을 열심히 부른다. 아마 두부도 처음 주인을 만났을 때는 작고 새하얀 조그만 오드아이의 예쁜 고양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주인과 주인 친구들 모두 그 고양이의 사진을 찍겠다고 온갖 간식과 사랑과 애정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더 이상 작고 예쁜 고양이를 키울 수 없는 '피치 못할' 상황이 되었고, 버려졌다. (수소문 끝에 주인을 찾았으나, 주인은 더 이상 키울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ㅎ)

 조건부 사랑과 애정의 결말은 유기였다. 길 위에서 두부는 점차 못생겨졌고 아팠다. 그때 생활 때문에 두부는 작은 소리와 움직임에도 유독 예민하다. 양쪽 눈 색이 다른 오드아이는 태생적으로 청력이 안 좋다고 하는데도 녀석은 푸코만큼이나 자극에 크게 반응한다. 처음 두부를 우리 집으로 데려올 때 침대 밑에서 나오지 않아 반나절이 걸렸었다. 어쩌면 또다시 버려지는 것 같다는 서글픈 예감이 들었던 걸까. 침대 밑 두부를 한참 설득한 끝에 두부는 볕이 따사로운 집으로 이사했다. 거실을 소리 없이 거닐며 마당의 새들을 구경할 수 있는 고양이가 되었다.


마당도 즐기게 된 냐옹이


 SNS에서 유기동물 센터의 소식들을 받고 있는데,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는 구조 소식과 입양, 임보 이야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들이 유기 혹은 파양 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다. 털이 빠져서, 나이가 들어서, 이사를 가야 해서, 아기가 생겨서, 가족이 싫어해서 등등. 여태껏 본 가장 최악은 ‘애교가 없어서…’ 이유는 수천가지이고 결말은 ‘버리기’로 종결된다. 조건부 사랑의 결말은 예견된 슬픔이다. 하긴 사람 식구도 버리는 세상에 말 못 하는 동물 하나 버리는 게 대수랴. 그렇게 H대 학생이 조건부 사랑을 끝내버린 덕에 두부는 나의 우주로 들어왔다. 내 인생에 고양이라니! 푸코가 예견된 사건이었다면, 두부가 내 삶에 나타난 건 정말 사고였다.


 삶은 사건, 사고의 뒤범벅 속에서 고유한 파동이 생긴다. 어느 여름 초등학생 아이들이 어미가 버린 고양이 한 마리를 구조한 일이 있었다. 이미 아픈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던 나는 이를 외면했다. 고작 할 수 있었던 일은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병원을 가서 비용을 지불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보통 동물병원에서는 길 위 동물들을 잘 받아주지 않는데 딱한 사정을 들으신 마음 좋은 수의사 선생님께서 죽어가던 생명을 받아주셨다. 응급치료를 마치고 아이들은 신발 상자에 탈수 증세로 인해 300g밖에 나가지 않는 고양이를 안고 한참을 돌아다녔다. 워낙 길 위의 동물들이 많을뿐더러 한 생명을 거둔다는 것의 무게감을 알기에 대부분의 어른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아이들의 요청을 거절했다. 해가 기울고 자정이 다 돼가던 무렵 아이들은 정말 운이 좋게 따뜻한 아가씨를 만났고, 운이 좋은 죽다 살아난 고양이는 멍멍이 친구와 새로운 가족을 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건부 사랑이 어린이들에게는 무색해진다. 어린이들도 아는 그 무조건, 무모한 사랑을 왜 어른이 되면 외면하게 되는 건지. 어린이들 손에 또 하나의 우주가 생을 연장하고, 식구를 만났다. 그날 아이들의 하루는 학원에 앉아있던 여느 때 보다 붉게 물들었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했다. 

여름 날의 사고.

나에게도 사고처럼 회색 인간에게 회색 고양이가 왔고, 두부가 점점 하얀 때깔을 뽐내는 걸 볼 때마다 흐뭇한 건 나도 내 본연의 색을 찾아가는 중이라는 증거 같아서일까.


아이들이 구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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