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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Aug 29. 2021

D - 1

안락사를 앞둔 누렁이

 많은 이들이 감사하게도 우리 집 녀석들을 애정어린 마음으로 아껴준다. 특히 '시바' 종이 어느샌가 미디어를 통해 인기를 얻으면서 푸코와 산책을 다닐 때마다 질문을 받는다.


'시바견인가요?'


우리의 산책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혹은 대화의 빠른 끝맺음을 위해 '네.'라고 하거나 '아니요. 누렁이랑 뭐 그쯤 여러 사이에 있어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때론 '이런 강아지는 얼마인가요?'라는 불쾌한 질문에 속상하기도 하면서 속으로 언짢음을 삼키고 지나간다. ㅅㅂㅅㅂ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왔는데, 이런저런 수술을 좀 해서 돈이 많이 들었어요. 요새 누가 개를 사나요. 하하'라고 둥그렇고 뾰족한 대답을 던지고 가던 길을 간다.

 푸코는 약 7~8년 전 구출되었다. 유기견은 공고 시점이 끝나면 안락(?)사를 하는데 그런 녀석을 나주에서 데려 왔다. 그래서 정확히 나이도, 출신도 알 수 없다. 그저 푸코의 몸에 새겨진 흔적을 보며 어떻게 아팠을지, 대충 몇 살일지, 어떤 시간을 걸어왔을지 그의 사연을 추측할 뿐. 지금은 꽤 뽀얗고 정돈된 모양새를 갖고 있지만 사실 과거의 푸코는 우리가 흔히 아는 들개 누렁이였다. 아쉬운 마음에 푸코의 지나간 처음을 아는 제야에게 시시때때로 푸코의 처음을 물어보곤 한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누렁누렁 푸코(왼쪽이 안락사 공고 사진)



푸코의 시간을 되짚어가며

To.  제야 

나와 당신이 비록 생의 출발점을 본 적은 없지만, 처음 녀석을 마주한 장면이 궁금해. 여러모로 악조건인 푸코를 데려오게 된 이유 같은 게 있을까? 얼핏 나는 기억으로는 질병도 있고 파양도 여러 번 당했다고 들었거든. 물론 과거의 푸코로만 현재의 푸코가 이루어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녀석의 조각들이 궁금해.

From. 윤끼
 To. 윤끼 

원래는 실험실 비글을 구하려고 했었지. 비글들이 땅을 밟아본 적 없이 인간을 위한 실험에만 쓰이다가 생을 마감한다길래. 마침 인간의 욕망과 지구의 멸망에 관한 관심으로 채식주의자가 되길 도전하며 여러 사례들을 살피던 중이었거든. 그냥 실천해보고 싶었어. 지구를 구할 순 없지만, 작은 생명 하나 정도는 구할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 안 먹던 채소를 몸속에 집어넣으며 중얼거렸지. 이 한 몸뚱이 사는 동안 건강하고 싶은 사적 욕망에 육류 소비로 인해 멍든 지구에 덜 부끄럽겠다는 윤리적 욕망을 더한 거지.
한 큐에 해치워버리려는 안일한 생각이었나 싶어서 갸우뚱거리던 차에 비글 소식을 알아보다가 푸코를 만난 거야. 천진난만한 표정의 이미지 한 장으로. 개농장에서 구조되었으나, 입질이 심하고 사회성도 없는 것으로 보아 유랑생활이 길었던 듯하고, 다른 개들과 어울리지를 못해 독방 뜬장에서 하루 종일 물어뜯고 있다는 점. 내일 안락사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처리 대상 1순위. 
생전 처음 가보는 나주로 내려가 녀석을 마주했지. 이미지와 실제의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푸코는 예상과는 달랐어. 보호소 관계자들도 잘 못 건드리던 멍멍이가 나를 보더니 알고 있었다는 듯 달려와 안기더라고. 뜬장에 오랫동안 갇혀있던 이유로 사족보행이 안되고 가만히 서있기도 안 되는 엉망인 상태였지만 밝은 표정과 날쭉거리던 혀와 젖은 코에서 얼굴로 뿜어진 숨을 아직도 잊지 못해. 매번 푸코를 볼 때마다 일종의 의식을 치르며 그 살아있음 자체가 여전한지 서로 확인하지. 두 번의 파양이 있었고 어쨌고 저쨌다는 정보는 많았는데 기록해두지 않았어. 무튼 푸코를 잘 돌봐주어 고마워.

From. 제야
 To.  제야
 
푸코 머리에 있는 검은 자국이랑 갈려있는 이빨들을 보며 매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겠다 싶었는데 엄청난 일들을 겪었구나. 푸코의 어설픈 행동들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래도 당신과 어떤 인연의 끈 같은 게 있었나 봐. 모두에게 적대적이던 녀석이 와서 와락 안겼다는 게. 아마 푸코도 하루 남은 생의 마감을 예측하고 있었던 걸까? 동물에게는 인간에게 없는 여섯 번째 감각이 있다잖아. 서울에서 홀로 사는 입장에서 새로운 식구를 맞이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녔을 것 같아.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시간과 경제적인 부분을 배제할 수 없었을 텐데.

From. 윤끼
To.  윤끼
 
혼자 상경해서 사는데 반려동물이라니 누군가 보면 미쳤다고 할 거야. 그리고 또 한편으론 인간 관점에서야 안락사가 나쁘지, 아프거나 삶이 고통스러운 개 입장에서는 그게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 인간도 어떤 경우는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하잖아. 그래서일까 푸코를 처음 만났을 때 삶에 대한 총체를 생각해본 것 같아. 내 많은 이야기들도 이 ‘안락사’에서 시작되기도 하고. 
하지만 현실적인 부분 혹은 인간의 입장 모두 차치하고 마음에 의한 어떤 끌림 같은 게 있었어. 그런데 걱정과 달리 도리어 푸코가 생기면서 나도 안정화되기도 했어. 이 녀석을 책임지기 위해 경제적인 안정성을 고민하고 불규칙한 1인 가구에게 루틴 같은 걸 주기도 했지. 그래서 만약 새 식구를 데려오길 주저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 녀석을 잘 돌보고 관리할 수 있는 애정과 책임감만 있다면 누구든 주저하지 말고 한 걸음 시도했으면 좋겠어. 일직선으로 걷다가 어느 날 1도만 살짝 돌려도 세상엔 만날 수 있는 수많은 관계들이 있잖아.

From. 제야

운 좋게도 내가 너를 만나게 됐구나!!!


 그렇게 운이 좋게 푸코는 제야를 거쳐 우리 집으로 왔고 고양이와 게으른 사람과 안녕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안락사를 기다리는 수많은 생명들 중 녀석은 단지 운이 좋아서. 여전히 어릴 적 사회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다른 강아지들을 보면 사납게 굴고 하네스를 풀면 저 멀리 도망가지만, 그래도 사람 곁에 또아리 틀어앉아 '나 여기에 있어요.'라고 얘기하고 있다. 

 삶을 유지하고 온건히 살아가는 것이 순전히 운에만 맡겨져야 한다니 비통하다. 가끔 유기견센터 공고에 해맑게 웃고 있는 동물들 한켠에 국화꽃이 그려져 있다. 오늘도 불운한 어떤 생명들은 이름 한번 가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상처를 안고 입양되는 개도, 펫숍에서 새끼 때부터 분양되는 개도 모두 어떤 반려견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이의 말처럼 '주인'하기 나름. 다만 운 좋게 시작한 동행이 허무하게 멈춰버리지 않게 입양하는 가정들을 위한 제도가 좀 더 뒷받침되기를 바랄 뿐이다. 운 좋은 나는 푸코를 만나 도리어 조금 더 나은 생을 살아내고 있다.



문득 부친 편지

To. 제야 

때로는 ‘앎’과 ‘지식’이 행동을 가로막기도 하잖아. 나도 그렇게 개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개를 키웠을 때 생길 예상되는 문제들 때문에 선뜻 행동할 수 없었거든. 막연히 모르던 그때와 지금은 다른데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또다시 데려올 건지 궁금한 걸. 

From. 윤끼
To. 윤끼 

그 ‘안다는 것’은 정말로 알아도 아는 게 아닌 것 같아. 알아도 소용없이 바뀌는 게 있는 것이 있고, 모두가 부정적일 거라고 해도 결국엔 긍정의 결로 변하는 기적 같은 찰나가 있지. 만났을 때부터 쓰여지는 새로운 우주. 서로 합의해서 가능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되는 것 같아. 그 힘든 과정 안에도 우주가 있거든. 어떤 연인, 친구, 생명체를 만나도 마찬가지야. 당연히 힘들지. 우리는 모두 다르니까. 그저 서로 관심을 갖고 사랑하느냐가 중요해. 아끼고 사랑하자. 힘껏.

From. 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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