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온 개와 고양이, 그리고 인간
여느 여름처럼 뜨거운 햇볕이 세상을 선홍빛으로 감쌌겠지만 처음 마주한 Y의 눈빛은 부유하는 회색이었다. 만남은 늘 그렇듯 계획에 없었으나 예견되어있던 것처럼 맞닥뜨려졌다. 삶의 항로가 수없이 변경되었고, 지나온 시간들이 쌓여 지금에 도달했을 뿐 그다음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여정 속에서 수많은 마주침이 있었다. 마음이 닿아 잠시 정박하기도 했고, 어떤 상대는 나를 좌초시키기도 했고, 그렇게 희망을 잃어갈 때쯤 다시 단단히 돛을 세워주는 이를 만나기도 했다. 그 불가항력적인 우연 중 만난 Y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매몰되어 있었다. 하필이면 특유의 여섯 번째 감각은 이성적이고 아둔한 인간을 건져내야 한다고 외쳤다. 과거 나도 구조되었던 기억에 Y의 회색 눈빛을 외면하기란 불가능했다. 무지와 자아로 점철된 그녀에게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기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삶이란 희망 없는 발길질이란 걸 알고 있기에 시도한다.
무작정 구조해야 한다는 본능적 판단을 실천했지만, 막상 별다를 건 없었다. 하루라는 것을 온 힘을 다해 ‘나’로서 살아가는 걸 그녀에게 보이는 게 전부였다. 반복되는 일상에 염증을 느끼는 그녀에게 매일 같은 일을 하는 건 뜨는 해와 지는 달 뿐이라는 걸 알렸고, 이마저도 조금씩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으니 ‘같은 하루’는 인간의 오만함에서 기인했다는 걸 보였다. 그 미묘한 차이를 읽어내며 Y가 점차 자연의 감각에 익숙해지기를 바랐다. 어째서인가 그녀는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있었으나 그저 잘린 나무 밑동처럼 서 있을 뿐 세상을 만져내는 더듬이는 모두 자기 자신으로만 향하고 있었다. 보일 듯 말 듯한 더듬이가 밖으로 간혹 향할 때는 저 멀리 떨어져 신호조차 닿지 않을 허황된 지점이거나 그녀 자신과 무관한 것들이었다. 나는 어제와 오늘 다른 숲의 찬란함을 네 발로 땅을 밀어내며 깨우쳤다. 그녀의 기준에서 무용해 보이는 것들이 결국 다시 그녀를 감응케 하리라는 믿음으로 매일 Y와 산책을 나섰다.
그리고 그녀 곁에서 구조된 이후 내가 사람들과 주고받았던 온기를 온몸을 기대어 Y에게 나누었다. 밖으로부터 받은 차가운 멸시와 냉소였으나 역설적이게도 나를 녹여낸 것 역시 밖으로부터 존재했다. 목숨을 위협하는 질병 속에서도 타인들이 건넨 애정과 관심은 생사의 경계에 서 있는 생명을 힘껏 생으로 당겨냈다. 그 온기로 나는 몸과 마음의 항상성을 회복하고, 데일까 두려워 타자와의 뒤엉킴을 주저하는 그녀에게 따뜻함을 전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다. 서로가 서로를 당겨내는 펭귄의 허들링처럼 우리의 온기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함께 거센 바람을 맞고 싶었다.
Y의 공허한 눈빛으로 바라본 세상은 그저 통과되어 상이 또렷이 맺히지 못한 채 중추에 닿기도 전에 아스러지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공허함은 언제든 채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라 안도하며 그녀가 나를 매개로 세상을 바라보길 바랐다. 그렇게 시작된 구조 일지였다. 거창하게 구조라고 할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녀가 나의 여정에 존재했을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은 없었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서로의 무능함과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관계 속에서 어떻게 순간을 잡아챌 것인지를 그저 함께 유영하며 알아가야 했다.
흔들리는 바람에 꺼질 것 같은 하루도 안전할 것만 같은 무풍지대에선 망망대해에 꼼짝없이 갇혀 길을 잃곤 했다. Y가 실패와 가능성으로 이미 가득 찬 삶을 사랑하길 바라며 한 글자 한 글자 어떤 인간을 향한 구조 일지를 썼다.
그리고 나는 원래 세상을 거의 회색빛으로 본다.
- 김 푸코(11kg, 11살 추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