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 가장 날 것의 모습
XXXX 똥 얘기가 나옵니다. 식사 중이시거나 비위가 약하시면 뒤로!
과거 임금의 똥을 '매화'라고 했다. 임금님똥을 차마 ‘똥’이라고 할 수 없으니 매화 꽃같은 모양에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는 데서 비롯되어 ‘매화’ 라고 부른다. 훗. 뿐만아니라 임금은 화장실에 몰래 갈 수 없고 내시, 궁녀들 옆에서 가림막 너머로 용변을 봐야했다. 생각만해도 아찔하지만, 그 시절 임금의 몸은 임금 혼자의 몸이 아니였기에 매화를 누면 어의와 내시들이 이를 살펴 임금의 건강을 체크했다고 한다. 어의의 업무 중에 매화를 맛보는(?) 일까지 있었다 하니 억만금을 준다해도 임금이 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제 아무리 한 나라의 최고 권위자라 할 지라도 ‘똥' 앞에서는 어느 것 하나 감출 수 없다. 그이의 주식이 무엇인지, 혹은 어떤 기관이 좋은지 안 좋은지와 같은 생활습관이 고스란히 똥에 솔직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실외 배변을 하는 푸코 덕에 하루에 두 번씩, 많게는 서너 번씩 똥을 줍는다. 우리가 산책하는 모양새를 보면 똥을 줍기 위해 산책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한 손엔 배변봉투를 들고 푸코의 똥을 의도치 않게 면밀히 관찰한다. 똥의 색깔, 점도, 양 등 녀석의 건강 상태를 어의처럼 확인한다. 아기 엄마들이 아기가 황금똥을 싸면 그렇게 기뻐하던데, 그 마음을 조금은 헤아려본다. 보통 무얼 먹었느냐가 똥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치기에 주로 사료를 먹어서 짙은 갈색의 '그것'이 나온다. 하지만 간혹 나오는 형형색색의 것들로 인해 당혹감을 느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 번은 진한 분홍색의 예쁜 똥이 나왔길래 이게 도대체 뭘지 산책 내내 고민을 했다. 그리고 어느날 청소를 하다 분홍 똥의 원산지를 알아냈다. 바로 두부의 화장실 모래.. 향긋한 냄새가 나서 그런지, 두부가 화장실 밖으로 떨어뜨린 모래를 푸코가 꽤 많이 주워 먹었고, 이를 알턱없는 반려인은 두부가 참 화장실을 깨끗하게 쓴다고만 여겼다. 다행히 화장실모래는 압축 두부(진짜 그 네모난 두부)로 만든 것이라 건강에 유해하진 않지만, 덕분에 원치 않게 예쁜 똥을 보았다. 또 어느 날은 샛노란 변이 나왔다. 너무 밝고 부드러웠기에 혹시 탈이 난 건가 걱정했으나 문득 두부 사료가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두부가 훔쳐먹다 떨어뜨린 고양이용 사료들을 푸코가 실컷 주워 먹었던 것이다. 고양이 사료는 개 사료보다 많이 기름져서인지 유독 녀석의 똥은 물컹물컹했다. 두부가 왜 푸코를 그렇게 때리고 싶어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사료도 훔쳐먹고, 화장실도 훔쳐먹으니 두부가 보기엔 곳간털이범.
하지만 가슴을 철컹 내려앉게 하는 순간들도 있다. 새빨간 변을 본 것이다. 사람도 혈변을 누면 오만 생각이 다 떠오른다. 변에서 혈이 나온다는 건 이미 내장 어딘가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푸코의 나이를 가늠해보며, 이제 녀석이 슬슬 아프기 시작하는 건가 하며 애잔한 눈빛으로 녀석을 보았지만 녀석은 바람좋은 공기에 쾌변 후 그저 웃고 있다. 속상한 마음을 뒤로하고 허겁지겁 배변봉투를 꺼냈다. 수의사 선생님께 보여드리기 위해 빨간 똥을 사진 찍고 집어들었다. 하지만 변에 묻은 빨간색이 지나치게 새빨갛다. 다시한번 어의의 마음으로 샅샅이 살펴본다.
토마토. 그릇에 담아놓은 새빨간 토마토가 어디갔나 했는데, 저기 있었네..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정직한 소화기관 덕에 이렇게 인풋이 무엇이느냐에 따라 그대로 아웃풋이 나온다. 소화기관 마저 솔직한 녀석.
인간도 ‘모닝똥’과 ‘쾌변’의 과업을 끝내면 하루의 시작이 가볍고 유쾌하다. 잘 먹는 행위만큼이나 ‘잘 싸는 행위’도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긴장하거나 초조해지면 배가 아팠다.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스트레스성’ 위염 덕에 한 스푼의 스트레스만 받아도 곧장 화장실로 뛰어가야 했다. 학창시절 중요한 시험 도중 위장의 신호를 무시할 수 없어 포기한채 뛰쳐나갔고 집에 돌아와 펑펑 울었던 장면이 선명하다. 나에겐 이처럼 쓰렸던 ‘똥’이지만 아이들의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마법의 단어는 단연코 ‘똥’이다. 아이들은 ‘똥’이라는 말에 ‘우웩 더러워~’ 하면서 꺄르르 웃는다. ‘똥’이라는 거친 듯 귀여운 어감때문인지, 비밀스러운 행위인 똥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서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이처럼 배설이라는 행위는 재밌다. 날 것의, 숨기지 않는 가장 솔직한 행위다.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아이들은 진짜 친구라 여기는 이에게 '화장실 같이 가자.'고 한다. 그 친구에게 자신의 가장 가리지 않는 솔직한 모습을 보인다. 같이 화장실을 가자는 말은 '너를 내 찐친으로 인정하겠어.' 같은 의미를 내포한다. 어른들에게도 화장실 작은 한 칸의 공간은 솔직한 많은 행위들을 허락한다. 참았던 방귀를 뀌는 사람도 있고 타인들 앞에서 받을 수 없는 통화를 하기도 하고 직장 상사를 욕하기도 한다. 적어도 그 행위를 하는 동안만큼은 사회와 사람들 속에 있다가도 아주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순식간에 자신에게 집중한다. 그의 결과물. 똥.
멍멍이도 똥 앞에서만큼은 솔직해진다. 산책하는 동안 주인은 뒷전인 푸코도 똥 눌 때만큼은 나를 기다리고 쳐다본다. 개들도 용변을 볼 때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에 뒤를 봐줄 이가 필요하다. 푸코는 '나 똥 싸는 동안 지켜줘.' 하고 슬쩍 올려다본 뒤 자기 똥을 치울 때까지 기다린다. 자기주도적 산책을 하는 강아지가 잠시 멈춰 기다려주는 걸 보면 적어도 이 순간은 나를 완전히 반려인으로 인정한다는 것 같다. 똥을 주으며 괜한 뿌듯함을 느끼는 건 이럴 때라도 나를 서열우위에 넣어준 것 같은 기분 탓인 걸까.. 간혹 조심성 많고 예민한 강아지들은 낯선 곳에 가면 배변을 하지 않고 꾹 참는다. 푸코가 매일 산책길에 쾌변을 누는 걸 보며 내향적이지만 자기 주장은 하는 편이란 생각이 든다.
고양이는 그런 면에서 배변을 통해 자기 의사 표시를 한다. 여기저기 마킹하면서 사회생활을 하고 다니는 개와는 달리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자기 용변을 숨긴다. 두부는 줄줄이 엮어 만든 고구마를 분홍 모래로 고이 덮어놓는다. 포식자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습성이 DNA에 새겨져 있어 그렇다고 하지만, 나는 그 냄새가 어마 무시해서 숨기는 거라고 추측한다. 물론 모래로 열심히 덮어본다고 숨길 수 있는 냄새가 절대 아니다. 가끔 장난친다고 푸코한테 두부 똥을 들이밀면 푸코는 정색하고 도망을 간다. 하지만 가끔 두부는 화가 나거나 뭔가 맘에 들지 않을 때 화장실 옆 러그에 예쁘게 똥과 오줌을 뿌려놓는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건가 싶어 괜스레 미안하다가도 고약한 냄새에 질겁한다.
사람들이 보통 개를 키운다하면 배변을 걱정하는데, 누구보다 깔끔한 성격을 가진 푸코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실내배변을 할 때도 화장실을 간다. 복병은 두부였다. 두부의 분노의 똥오줌 갈기기. 가끔 두부는 화가 나거나 뭔가 맘에 들지 않을 때 화장실 옆 러그에 예쁘게 똥과 오줌을 뿌려놓는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건가 싶어 괜스레 미안하다가도 고약한 냄새에 질겁한다. 냄새가 잘 빠지지 않는 바람에 도저히 회생시킬 수 없어 버린 에코백도 있다. 간혹 매트리스에 휘갈기는 녀석도 있다고 하니 이정도의 심술에 감사해야할 따름이다. 자신이 가진 가장 드라마틱한 전달 수단이라 생각하고 녀석은 이 방법을 택한 걸까.
배설은 유아기의 사람과 동물들이 보내는 가장 솔직하고 투명한 신호이기도 하다. 녀석들은 자신의 건강 상태와 기분을 하루에 두번 구체화된 물체로 전달한다. 매일 두 녀석의 ‘똥’을 체크하는 반려의는 둘이 왠지 제대로 배변을 못하면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옆에서 평생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길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