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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Oct 05. 2021

엉덩이 무게에 비례하는 사랑

냐옹아, 나를 믿어줘서 고마워.

푸코는 상식의 범주 안에 있는 강아지와 확연히 다르다.


녀석은 애교도 별로 없고 간식 먹을 때를 제외하곤 와서, 치대는 것도 없으며 적당히 주변인들을 지켜본다. 소위 말하는 ‘댕댕이’라는 표현과 푸코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지나치게 과한 애정표현보다 살짝살짝 건조하게 다가오는 녀석의 거리감을 좋아한다. 불러도 오지 않고 멀뚱멀뚱 쳐다볼 때도 있지만 이제는 녀석의 성격이겠거니 하며 녀석을 부르기 위해 허공에 비닐봉지로 부스럭 소리를 낸다. 때론 반려인의 부름을 못 들은 척하면서도 '간식 먹을까?, 산책 갈까?'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다가온다.
왠지 선택적 반려인 환영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랑해요, 열빙어


 푸코가 어릴 때 사람과 살지 않았어서 (보통 개는 생후 1년 안에 사회화가 끝나서 이때 여러 사람, 개들과 잘 어울리는 개는 사회화가 잘 된 편이다.) 그런 건지, 아니면 누렁시바 비스무리라는 종의 특성 때문인 건지 알 수 없지만 푸코는 꽤 독립적이다. 산책할 때도, 잘 때도, 낯선 사람이 집에 왔을 때도 자신만의 루틴을 유지한다. 때로는 고양이처럼 자기 영역을 확연히 드러내고 그 영역이 침범당하면 슬그머니 자리를 옮기거나 으르렁 거린다.

 혹자는 이런 녀석을 보며 '개가 앵기는 맛이 없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으나 앞서 말했듯 나는 그 적당한 거리감이 좋다. 모든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감이 있어야 바람 드나들 자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바람이 드나드는 자리의 이면에는 바람에 흔들려도 날아가지 않는 단단한 연결고리가 있다는 서로를 향한 믿음이 내재되어있다. 그리고 사실, 푸코는 엄청나게 살을 맞대고 싶어 한다는 걸 안다.


 어느 뭉그적거리는 아침에 크고 묵직한 것이 얼굴을 누르고 있어서 당황했다. 눈을 살짝 떠보니 부드럽고 질펀한 뒤태가 무게중심을 엉덩이에 쏟은 채 나의 얼굴에게 기대 있었다. 가위에 눌려본 적이 없었던 터라 처음엔 가위에 눌린 줄 알고, '아 이게 가위눌리는 느낌이구나. 견딜 만 한데?' 라며 비몽사몽 한 채 눈을 떴으나 이내 시야에 푸코의 뒤편이 들어왔다. 그 묵직한 무게감과 뜨뜻한 온도가 푸코가 표현하는 신뢰 같아서 눈을 뜨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기념비적 사진을 남기기 위해 최대한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섬주섬 휴대전화를 찾았다. 가끔은 등이 아니라 엉덩이로 얼굴을 누를 때도 있었다. 좁은 베개는 내 머리와 강아지의 엉덩이로 가득 찼고, 묘한 감동과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녀석이 나를 의지하고 있구나.'


 사람에게 '등을 돌린다.'는 표현은 누군가와 관계를 끊는 반목의 의미로 쓰이는데, 집단생활을 하는 개에게는 등을 보인다는 게 당신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야생에서 잘 때 외부의 습격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등을 맞대고 자는 습성이 있다. 출근하는 날이면 허겁지겁 푸코의 애정을 한 편으로 치워놓고 아침 준비를 해야 했다. 그래서 출근하지 않는 아침에는 푸코의 애정을 핑계 삼아 함께 뭉그적 거리곤 했다. 이 공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푸코가 깔고 뭉갤 때마다 힘들게 기념으로 찍은 사진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고양이가 오기 전에 가능했다.

두부는 조용하고 적극적이다.


애정을 갈구한다기보다 강요한다. 개와 역할이 전도된 것 마냥 두부는 치대는, 애교 많은 고양이다.

'나를 만져. 만질 때까지 울 거야. 냐오오옹'

그리하여 매일 밤과 아침은 우리 집 뚱냥이가 머문 따뜻하게 눌린 자리가 존재한다. 두부는 귀신같이 겨드랑이를 찾아 파고든다. 자기가 위치하기 가장 좋은 곳에 암모나이트처럼 동글동글하게 몸을 말고 자리를 잡는다.

처음 두부가 잠자리를 차지했을 때 푸코가 적지 않게 당황한 걸 알 수 있었다. 여느 때처럼 멋지게 점프해서 침대 위로 올라온 푸코가 당황한 채 내려가기도 하고, 때론 두부가 화들짝 놀라 사라지곤 했다. 둘은 물과 기름 마냥 한 침대에 절대 함께 할 수 없을 것처럼 서로를 조심스레 피한다. (이제 어느 정도 적응해서 서로 방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지낼 법도 한데 여전히 꽤 내외를 한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다들 좁은 퀸 사이즈 침대에 잔뜩 올라와 적당히 위치해 있다. 다만 주인이 좀 찌그러져 있을 뿐.

두 녀석 모두 엉덩이로 그리고 눈빛으로 주인에 대한 사랑을 보낸다. 이렇게 조건 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애정 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서 받은 상처에 다시는 사람을 믿지 못할 법도 한 데, 어느새 소리 없이 다가와 사랑을 온몸으로 비비곤 그 정수인 엉덩이로 표현하고 소리 없이 사라진다.

둘이 살포시 머리를 기대면, 세상에 나한테 의지하는 생명체가 둘이나 있구나 싶어 고맙고 감사하다. 애정표현이 서툰 나는 녀석들에게 온몸으로 애정 표현하기를 살짝 배워본다.


환대란 타인의 존재에 대한 인정이며, 이러한 인정은 그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몸짓과 말을 통해 표현된다. <사람, 장소, 환대>


여러분도 애정 하는 이에게 엉덩이를 묵직이 들여 밀어 보세요...


푹신한 자리 선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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