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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Dec 08. 2022

누런 개의 식스센스

눈치 따위 보지 않겠다.

식스센스. 생물의 오감 외에 여섯 번째 감각.


미각, 촉각, 시각, 후각, 청각 - 오감과 달리 여섯 번째 감각은 특정한 감각기관이 없기에, 식스센스는 정말 있는 것인지 그 존재의 유무를 확정 짓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 그 '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걸 우리는 느낀다. 그리고 나는 비교적 감이 좋은 편이었으며 덕분에 '눈치가 빠른 축'에 속했다. 나이가 들면서 눈치가 빠른 건 인생에 꽤 괜찮은 능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직장에선 조직 내의 관계를 빠르게 파악하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보다 도움이 됐다. 상대가 좋아할 만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살 수 있었고, 무엇보다 샘솟는 연인들의 사랑의 시작을 느낄 수 있었다. 99도에서 1도만 오르면 끓어오를 연인들의 99도. 일명 '썸 타는' 사이를 관찰하는 건, 미디어 속 쇼비즈니스 연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과 흐뭇함을 건네곤 했다. 때로는 곤란한 상황이 빚어질 것을 예감하고 되려 눈치가 없는 척을 해서 상황을 모면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감이 좋다는 것은 생활을 넘어 생존에도 아주 유용했다.

밀착 관찰

 그러나 반대급부로 좋은 감은 가끔 나를 옥죄이기도 했다. 눈치가 빠르다는 것은 남의 눈치를 많이 본다는 뜻이기도 했고, 불편한 공기들 사이를 애써 외면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혹은 외면하고 싶은 정보나 파편들이 원치않는 것들까지 흡수되어 산다는 것 자체가 피로감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기에 타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을 스스로 검열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처럼 관계지향적 사회에서는 이 '눈치'라는 것이 자연스레 발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생존전략처럼. 그래서 이는 동아시아권 문화, 특히 한국인이라면 정도의 차이일뿐 태생적으로 탑재하고 있는 능력이라 생각했다. 어느 다큐를 보기 전까지!


우연히 BBC  다큐 '개에 관한 놀라운 비밀'이라는 다큐를 보고 '감'과 '눈치'의 뿌리를 찾았다.

<개에 관한 놀라운 비밀>

다큐는 개의 오감에 대한 주제를 시작으로 개의 '식스센스'까지 이야기가 뻗어났다. 가끔 '이사할 집을 구하러 갔는데 개가 귀신을 보고 짖었다.' 같은 낭설 아닌 낭설을 들으며, 인간은 가지지 못한 개의 보다 발전된 '감'을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다큐는 이야기한다.

'엄청난 관찰을 통한 여섯 번째 감각.'


끊임없는 관찰


그렇다. 내가 ㄱ씨와 ㅇ씨의 비밀연애를 알아차린 것도, ㅂ씨의 검은 속셈을 알아차린 것 역시 단순히 감이 좋았다기보다 모두 그들의 행동, 표정, 말투를 끊임없이 관찰한 덕에 수집한 정보로써 도출된 것들이였다. (실제로 나는 타인을 관찰하는 걸 좋아하고 그들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을 즐긴다.)


사실 개에게는 엄청나게 발달된 후각이 있으니 푸코가 시력을 점점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왠지 모를 위안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 개는 후각 의존적 동물이니 인간만큼 불편하진 않겠지.’

이것은 인간 중심적 사고가 빚은 크나큰 오해였음을 깨닫고 생각 없이 시청한 다큐에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졌다. 푸코는 단순히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의 끊임없는 관찰을 통해 얻어낸 여섯 번째 감각 역시 점차 소멸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당차던 발걸음은 점차 주춤거림으로 바뀌고, 낯선 대상과 공간을 맞닥뜨리면 두려워하거나 깜짝 놀라는 정도가 늘어났다.


푸코가 나의 기분과 행동을 보고 반응하고, 우리가 서로 교감하고 있다는 신호를 잡아챌 수 있었던 것은 그와 내가 서로를 끈질기게 관찰한 결과였다. 푸코의 여섯번째 감각은 동거 생물체들(나, 두부)을 향해 있었다. 생각해보면 푸코는 집에서 늘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컴퓨터 앞에서 영혼없이 일하고 있는, 소파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는, 전화를 받다가 울고 있는 나를. 매순간 그의 시선 끝에 놓인 덕에 녀석은 나의 작은 행동, 표정 하나에도 반응해주었다. 이제는 내가 세심하고 타이트하게 녀석을 관찰해야할 시점이 되었다. 녀석을 위한 나의 여섯번째 감각을 더욱 다듬기 위하여.


푸코의 탁한 동공은 이제 어디로 향하고 있는 중일까.. 녀석의 여섯번째 감각이 쉬이 무뎌지지 않길 눈크기가 사뭇 다른 녀석의 눈꺼풀을 어루만지며 되뇌인다. 


브런치 푸코 두부 이야기 

바깥 풍경 구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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