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에 ‘카르나피나아사나’라는 동작이 있다. 그 동작은 등을 바닥에 대고 누운 상태에서 다리를 얼굴까지 젖혀 다시 무릎을 굽혀서 무릎으로 귀를 압박하는 자세다. 요가 수련을 1년을 넘게 했지만, 난 아직도 그 자세만 하게 되면 이상하게 숨이 막히고 두렵다.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숨이 점점 막혀오면서 ‘이 자세로 한참 동안 있어야 한다면?’, ‘만약 궤짝 같은 작은 상자에 구겨 넣어진 채 갇혀서 이런 자세로 한참을 있어야 한다면?’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심지어는 내가 좁은 상자에 갇혀서 괴로워하는 이미지마저 떠올랐다. 호흡으로 두려움을 잊어야 하지만, 그 자세에서 만큼은 이겨내지 못했다. 마치 과거에 그 자세로 호되게 당해본 것처럼……. 결국 황급히 자세를 풀어내기 마련이었다. 선생님께도 몇 번을 여쭤보았다. “선생님 왜 이 자세에서만 유독 숨이 막히고 두려움이 몰려오는 거죠? 남들도 다 그런가요?” 선생님은 유독 내가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난 용기 내어 말해보았다. “선생님…… 솔직히 말하면 이 자세를 할 때면 마치 과거에 고문을 당해본 것처럼 숨이 막히고, 내 의지로 자세를 풀 수 없는 상황에 있는 것 같아요. 좁은 상자 같은데 갇혀서 박제당한 것처럼……” 선생님은 말했다. “혹시 어릴 때 비슷한 경험은 없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경험은 없었다. “전생에 그런 것은 아닐까요?” 선생님은 내 질문에 꽤나 담담하게 답했다. “그럴 수도 있어요. 충분히……“
시인 류시화 씨도 인도의 어느 성곽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전생이 떠올랐다고 했다. 잠깐이지만, 몇 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곳에 있던 그와 그의 운명의 상대와 함께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나도 그런 것은 아닐까?
이 두려움의 정체가 전생의 기억이라면 그 속으로 들어가 나의 전생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렇게 ‘카르나피나아사나’를 열심히 연습했다. 그러면서 희미한 느낌이었던 이미지가 점점 굳어졌다. 감옥 안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 작은 나무상자에 갇혀 뒤집어져 있는 이미지였다. 마치 원하는 답을 얻어내기 위해 고문을 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원래는 좁은 상자에 갇혀 웅크리고 있었으나 누군가가 발로 차서 뒤집혔기에 난 자연스레 ‘카르나피나아사나’ 동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기도가 막히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최악의 고문, 고통을 당한 것이다. 그 고통이 생을 건너 지금의 나에게도 전해지며, 그런 생이 있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한 마디 더 해주셨다. "지난 생에서 끝나지 않은 무언가가 있어서 이런 느낌을 받았을 수 있으니, 이번 생에서 ‘카르나피나아사나’를 한번 극복해 보세요" 진지하게 생각해준 선생님이 고마웠다. "감사합니다 나마스떼"
‘카르나피나아사나’ 자세를 하게 되면 몸이 뒤집혀 폐 위의 온갖 장기들이 폐를 눌러 숨의 양이 줄어든다. 게다가 목이 조여와서 기도는 거의 막히다시피 하게 된다. 숨이 줄어들고, 그만큼 호흡은 가빠진다. 그러면서 숨 막힘이 극심한 고통을 가져온다. 게다가 만약 이것이 고문이라면 이 자세를 원할 때 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이번 생에 만약 그런 고문과 같은 것을 당한다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는 것, 이것들이 고통과 두려움의 이유들이다.
마치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는 듯한 이미지와 나의 정의에 집착하는 성향, 가치관 등 여러 가지를 조합해보면서 ‘난 전생에 일제강점기나, 엄혹한 시절의 투사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난 여전히 ‘카르나피나아사나’를 1분도 채 유지하지 못한다. 이미지가 선명해진 탓인지, 두려움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두려움이 몰려와서 숨의 집중을 잃을 때는 갑자기 자세를 풀고 일어나 앉아버리기 십상이다.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열심히 반복해서, 이 자세를 견뎌 낼 수 있도록 해보려 한다. 혹여나 언젠가 또 그런 고통을 겪더라도 여유 있게 견뎌낼 수 있도록……. 이번 생에 ‘두려움’이 끝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에필로그
여자 친구에게 몇 번 전생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한 번은 한창 가뭄이 들 때 내가 말했다. “비가 와야 하는데 왜 이렇게 비가 안 오지? 이러다 농사 다 망하겠네……”(농업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고, 부모 친지 또한 전혀 관련이 없다) 걱정하는 나를 보며 여자 친구는 말했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니 일이나 신경 써~”, 난 말했다. “그러게 가뭄이 오면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지? 내가 전생에 임금이었나? 원래 비가 안 오면 임금이 덕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하잖아~ 이게 죄책감인가?” 그때 여자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임금이 아니라 농부였을 거야. 게다가 소작농, 그래서 비가 안 오면 농사가 잘 안 되고 그럼 세금 내고 뭐하고 얼마 안 남을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야.”
이번에도 요가 동작을 하면서 고문받는 느낌이 들었다며 “전생에 내가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나 엄혹한 시절에 민주투사는 아니었을까?” 하고 말했다. 그때 여자 친구는 또 실실 웃으며 말했다. “매국노 아니었을까? 하도 정보를 팔아넘겨서 독립투사한테 고문당한 거 아니야?” 둘은 한참을 웃어 젖혔다.
사진출처 _ 요가 디파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