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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창 Nov 05. 2020

살아가는 삶 살아지는 삶

난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아침에 눈이 떠졌다. 혹시 알람을 못 듣고 늦잠을 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황급히 핸드폰을 본다. 다행히 아직 알람이 울리기 30분 전이다. ‘30분은 더 잘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과 기쁨을 느끼며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자 마자 알람이 울리며, 진짜 하루가 시작된다. 그렇게 무거운 월요병을 안고 일주일의 시작을 힘주어 돌려낸다. 다행히 내 일주일은 물레방아 같아서 처음 돌리는 것은 힘들지만 한번 돌기 시작하면 그럭저럭 문제없이 돌아가곤 한다.



한창 운전을 하고 가던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질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신은 살아가고 있나요? 살아지고 있나요?”



질문은 머릿속에 콕 박혀서 울려대기 시작했고, 고민을 시작할 때까지 멈추질 않았다. 처음엔 살아가고 있다고 온갖 근거를 들고 싶었는데, 갑자기 그런 노력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지금 내가 살아지고 있던 것이라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하루 중 가슴 뛰는 순간은 없었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들만 가득했다. 그러면서 내놓은 답은 ‘어쩔 수 없었다’였다.


20대의 난 가슴 뛰는 삶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세계일주를 해보려 했었고, 이번 생에 깨달음을 얻어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해 스승을 찾기도 했고, 명상을 하고, 사막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또 사회에서는 약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기에, 인권변호사가 되려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들을 현실화시키려는 몇 번의 노력에도 이뤄진 것은 없었고, 30이라는 나이에 두려움을 느끼며 결국 직장에 취업을 하며 남들처럼 평범히 살고 있었다. 늦은 나이에 괜찮은 직장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고, 전보다 삶이 편안해진 것을 들어 자위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 시기가 시기니 만큼 자유롭게 떠나볼 수 없어’, ‘고생하고 살지 않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어’, ‘남들은 이 정도 사는 것도 잘 살고 있는 거랬어’, ‘지금 도전했다가 망하면 어떡할 건데?’, ‘어차피 다른 걸 해봐도 금방 또 질릴 거야’, ‘해볼만큼 해봤잖아’, ‘나 잘살고 있는 거야………’, ‘나 잘살고 있는 걸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물음은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고, 내 삶에다 온갖 변명을 갖다 대기 시작했다.






"주말만 기다리며 사는 삶"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회사 다닐만하냐?”, “아니” 하나같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들이 대답한 ‘아니’는 ‘아니’가 아닌 것 같았다. 진급도 기다려지고, 청약도 넣고, 주식도 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준비를 하는 등, 바라는 모든 일들이 기다려진다는 듯 말하는 녀석들의 표정을 보며 나와는 다름을 느꼈다. 그들에게 일과 일상의 의미는 ‘엄청난 재미는 없지만 싫지 않다.’ 또 ‘지금으로부터 이어지는 미래가 기다려진다.’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난 이상하게도 그런 일상 모두가 기다려지지 않았다. 그나마 나에게 관심사가 있다면 길고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인데, 20대에 온갖 고생을 해봤기에 다녀와서의 맞닥뜨려야 할 경제적인 막막함을 대비해, 일을 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생활비가 나올 수 있는 방안을 세우는 것 정도다. 지금까지 생각해본 것으론 대출을 받아 건물주가 되거나 공부를 해서 전문직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 정도인데 둘 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고민만 하는 난, 더 이상 일상이 재밌지 않다. 진급해서 올라가고 월급을 더 받는 것 또한 얼마나 더 '내 시간이 줄어들까'를 먼저 떠올리며 욕심이 나지 않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서 내가 행복해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 나의 아침은 빨리 저녁이 되어 쉴 수 있기만을 기다리고, 저녁엔 더 편히 쉴 수 있는 주말을 기대하며 ‘살아지고’ 있었다. 이렇게 쓰다 보니 갑자기 ‘음……. 이거 어디서 많이 해봤던 생각인데?’ 중 고등학생 때에 주말만을 바라고 살았던 것이 떠올랐다. ‘내일이 드디어 토요일이다!’ 라며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행복했고, 토요일엔 내일이 벌써 일요일 이라며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슬펐고, 일요일엔 월요일을 부정하며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어른이 되면 절대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그렇게 20대를 열심히 살았는데, 결국 돌고 돌아서 난 또 같은 물레방아를 돌리고 있었다.


과거에 싫어했던 삶으로 다시 돌아온 것을 느낀 순간, 진지하게 마음에다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는 내 삶의 의미가 뭘까? 내가 뭘 하고 살아야 할까?,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운이 좋다면 한 번쯤 누군가가 답을 던져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신기하게도 저런 뻔한 고민을 시작한 순간,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평생 저런 고민을 끼고 살았다고 여겼는데, 최근 몇 년간은 고민을 하는 척만 했지 외면하고 있었나 보다. 지긋지긋한 고민을 다시 진지하게 옆구리에 끼게 된 순간, 신기하게도 세상이 조금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의 해상도가 일반화질에서 UHD정도는 된 것처럼 느껴졌다. 난 고민 없이 살고 싶었지만 역설적으로 고민을 제대로 마주하는 순간 내 눈은 세상을 보고, 세상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여전히 답은 없었고 답답했지만, 조금 더 사는 것 같아졌다는 것, 그것만으로 조금은 만족할 수 있었다.


세상을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나같이 노골적인 불만이 삶을 잠식하는 것을 알아챘을 때는 한번 즈음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지금 내가 맞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를…….. 그 누구도 아니라 나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러면 여태 살면서 있었던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두려움과 변명들이 수면 위로 튀어나와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그러면서 최소한 그놈 들을 풀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은 단순하게, 조금은 당연하게 고민과 동거할 용기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겁쟁이였음을 받아들이고 다시 고민을 끼고 살아가는 것처럼  



에필로그


소녀가 알려준 삶의 의미


전반적으로 파스텔 톤의 정겨운 분위기였다.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잔뜩 있었고, 선선한 날씨에 가을 운동회가 한창인 듯 보였다.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지만 나만 저 분위기에서 배재된 듯, 뭔가 그립고 애절한, 한 템포 느린 화면이 눈 앞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왠지 모를 어색함에 그곳을 벗어나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밖과는 다르게 침착하고 고요한 분위기였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나서 화장실 창문을 통해 운동장을 바라보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다 세면대 옆에 누군가가 방금 벗어 놓은 듯한 환자복이 허물처럼 있었다. ‘병원에서 환자가 탈출했나?’라는 생각이 들던 무렵 내 또래의 남자가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왔고, 내가 나갈 때 그도 따라 나왔다. 그는 다시 운동장으로 향하는 듯했다. 나 또한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소녀가 숨을 헐떡거리며 우리에게 뛰어왔다. 그러면서 본인을 기자라고 소개하며, 다짜고짜 인터뷰를 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소녀는 광대가 조금 튀어나왔고 많이 말라 보였다. 나이는 20대 초반처럼 보였는데, 말을 더듬으며 조급하게 인터뷰를 하자고 들이대는 것이 전반적으로 어색해 보였고, 마치 사람들과 말을 많이 해보지 않은 사람 같았다.


과거, 하려던 일들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들었던 시절, 기운이 안 좋아 보인다며 조상님에게 제사를 지내면 잘 풀릴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제사비까지 내며 우스꽝스러운 절을 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마치 도를 아십니까?’ 같은 사기꾼이 아닐까 생각했다. 누가 봐도 기자는 아닌 듯했기에 난 축구를 하러 가야 한다고 둘러대며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그러면서 갑자기 화장실에 있던 환자복이 떠오르며,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다. 어색한 말투, 서투른 태도, 이상하리만큼의 조급함 ‘저 소녀는 정신병원을 탈출한 것이다!’


그런데 아까 같이 화장실에 있었던 남자는 착해서 인지 멍청해서 인지 그녀의 인터뷰를 응해주는 듯했다. 난 반대로 뛰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저 소녀가 남자에게 어떻게 하는지 몰래 지켜봤다. 그러면서 저 남자를 구해줘야겠다 싶은 마음에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소녀와 남자가 내 근처까지 와 있었다. 순식간이라 눈치를 채지 못했고, 소녀는 나에게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으면, 인터뷰를 하자며 말을 더듬으며 들이댔다. 난 손사래를 치며 가야 한다고 거절을 했고, 저 남자에게 소녀가 정신병자라고 말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소녀가 한눈을 팔고 있을 때 난 남자에게 후다닥 다가가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 여자 정신병자예요!” 드디어 성공했다 싶은 그때,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 소녀는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 실망한 표정으로 나에게 “왜 그랬어요.......” 라며 울기 직전인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 남자는 멀뚱멀뚱 서있었고, 난 왠지 모를 커다란 미안함과 민망함에 휩싸였다. ‘어? 이게 아닌데?’ 그때 소녀는 나에게 다가와 글이 적힌 종이를 건넸다. 그 종이에는 소녀가 여기까지 오게 된 연유가 쓰여 있었다.


소녀는 우울증으로 여태껏 정신병원에서 살았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무기력했고, 자연스레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다 그녀는 문득 삶의 해답을 찾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와서 처음 만난이 들에게 그녀가 찾은 답을 알려주려 했는데 그게 바로 우리였던 것이다. 서툴렀지만 그녀의 마음은 고귀했고 난, 고작 과거의 싸구려 두려움에 그 마음을 내쳤다. 미안함과 민망함의 감정이 격해지며, 난 그 꿈에서 깼다.


소녀가 알려준 삶의 해답은 ‘노력하고 살다 보면 삶의 의미를 알 수 있다.’였다. 그녀는 그 노력을 하기 위해, 한 번이라도 뜨겁기 위해 우리에게 왔다고 했다.


꿈이란 것이 다 그렇듯, 뜬금없이 왔다 사라지지만, 난 가끔 그 속에서 내가 살아가야 할 길의 이정표를 발견하곤 한다. 소녀가 나에게 던져준 답은, 누군가에겐 뻔한 말로 들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당시 내가 가장 듣고 싶어 했던 말이었다. 현실을 걱정 없이 살게 해 준 고마운 말이었고, 감사하게 잘 받았다.


마치 여태껏 내 생을 묵묵히 지켜보던 무의식이 나에게 한 번쯤은 해주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며, 앞으로도 꾸준히 고민하려 한다. 그러면 이번처럼 누군가가 한 번쯤은 답을 던져주는 행운이 있지 않을까?  


여러분께도 그런 행운이 깃들길 바라며 글을 줄인다.









사진출처 https://wonderfulmind.co.kr/want-find-meaning-life-just-keep-moving/

               https://ppss.kr/archives/118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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