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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창 Dec 04. 2020

미래의 나에게 미안할 짓을 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가끔 정말 좋은 책들을 마주했을 때면 읽고 난 뒤, 인상 깊은 내용들이 머릿속을 맴도는 것이 아니라, 책을 덮은 직후의 삶이 바뀌는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군 복무 시절 내무반 한 구석에 있었던, 오래된 책이 나에겐 그러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시골의 작은 초가집,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와 손녀딸이 나란히 누워있다. 편히, 너무나 편안하게 누운 채로 걸어온 삶을 회상하며 그 길 하나하나를 짚어서 손녀딸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살아있었던 순간들......., 좋았던 순간, 후회하는 순간....... 그렇게 재미있는 한 편의 드라마를 손녀는 배를 깔고 턱을 괸 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듣고 있었다. 


“남들 눈치 보고 산거, 그게 제일 후회가 된다. 아무것도 아닌데, 그땐 왜 그리 신경 쓰고 살았을꼬......  애야, 넌 그렇게 안 살았으면 한다.” 





당시 일병이었기에 자리에 누울 수 없어 쭈그리고 앉은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는 내 삶의 순간순간을 훑으며 불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머리까지 불어온 바람 때문에 멍하게 천장을 바라봤고, 얼마나 지났을까? 멍하게 있지 말라던 선임의 꾸지람에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에게 군 복무 시절은 마치 '작전타임'과 같았다. 그때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작전을 짤 수 있는 좋은 시간...... 그런 시간 속에서 많은 후회들을 남기며 살아온 것을 깨달았으나, 그렇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몰라 제자리만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때마침 불어온 바람은 저 너머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난 그 바람에 힘입어 후회의 바다를 벗어날 수 있었다. 과감하게 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현재)

아침 8시 차를 타고 집을 나선다. 오늘 특별히 신경 써야 할 일이 없다면, 마음 편히 노래를 듣거나 라디오를 틀어서 운전하는 순간을 즐기려 해 본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에 가리개를 올리지만, 왠지 산뜻하고 기분 좋은 아침이다. ‘멍해도 되는 아침’, '걱정거리 없는 출근길’ 일주일에 2-3일 정도 되는 그런 출근길에서 이리저리 흘러가는 생각들에 붙들려 가보기도 하고, 망상도 해보는 여유를 가진다. 그중에서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흥분이 되는 단골 망상이 있다. 매번 해도 해도 그렇게 짜릿한 망상, 이름하여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단골 소재가 되는 만큼 많이들 상상해보는 듯하다. 


수없이 해본 망상이었기에, 난 이 망상의 끝을 잘 알고 있다. 고무적인 한마디로 끝이 나며, 결론을 낸 즉시 마음이 풍요로워져, 한동안을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마치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이다. 지금부터 그런 '마법의 주문'을 들려주려 한다.  




오늘 아침에도 생각에 붙들려 자연스레 과거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난 또 중1이 되어 있었다. 다시 돌아간 내가 그곳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은 격투기 학원에 등록을 하는 것이다. 어릴 적 할머니는 무속신앙을 곧잘 믿으셨는데, 사주를 보러 가서는 내가 자칫 잘못하면 큰 조폭의 우두머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는 부모님께 각별히 조심을 시켰다. 엄마도 입버릇처럼 “싸우지 말아라, 큰일 난다”, “네가 참아라”, “위험한 일 하지 마라”며 신신당부를 하며 겁을 줬다.(사실 난 내가 다치고 말지, 누구를 아프게 하는 것을 잘 못 견뎌 하기에 그 무당은 순 엉터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말 때문이었을까? 안 그래도 소심했던 나는 더 소심해졌고, 겁도 많아졌다. 가끔 친구들과 다투다가도 싸움이 일어날 분위기에선 엄마와 할머니가 한 말들이 떠올라 그냥 사과를 해버리곤 했다. 그러다 친구들 사이에서 태권도를 다니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는데, 역시나 나는 집에서 심하게 반대를 했기에 가지 못했고, 조금은 비주류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다. 


내가 다녔던 당시의 중학교는 쉽게 말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순화 버전으로 생각하면 쉽다. 일진도 있었고, 지나가다 소위 잘 나가는 친구들이(싸움 좀 한다는 녀석들) 툭툭 치고 다니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소심하고 겁 많은 나로서는, 서로의 힘을 과시하려 약한 친구들을 아무렇지 않게 괴롭히는 모습에서 나만 아니길 바라곤 했다. 툭툭 치고 지나가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을 해서 최대한 흥미가 안 생기길 바랬다.


지금 내가 정의에 집착하는 것도, 사회적 강자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학창 시절의 울분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당시의 난 비굴했다. 문제가 뭔지도 알았지만 그저 용기가 없었고 힘이 없었다. 어른이 되어 이런 나를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노력의 결과로 그때와는 다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지금의 내가 중학생이 된다면 당연히 첫 선택은, 어른들의 반대에도 격투기 학원에 등록을 하고 운동을 해서 힘을 기르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어른들의 말에 반기를 드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지금의 난 알고 있다. 설득이란 방법을....., 그때는 안된다고 하면 그게 끝이었지만 이제는 설득으로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도, 어른의 말이 모두 맞는것이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힘을 기르고, 여유롭게 학창 시절을 즐겨보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과거 친구들을 괴롭혔던 녀석들을 흔히 말하는 ‘사이다’처럼 응징해보는 것이다. 패를 나누고 서열을 가려, 힘을 과시하는 등 누가 가르쳤는지 모를 '뉴스에 나오는 못된 어른들이 하는 짓'들을 다신 못하게 할 것이다. 그렇게 동등한 인간으로서 잘 지낼 수 있음을 알려주며, 행복하기만 해도 짧은......, 다신 돌아오지 못할 그 시간을 뜨거운 색깔로 덧칠해보는 거다. 뜨겁게! 


그리고는 땡땡이를 쳐 보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도서관에 숨어있어도 보며, 연기학원이나, 성악 학원을 가보는 등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보는 상상을 했다. 그 시절 눈치를 많이 봤기에, 온전히 나를 위해 살지 못했었던 시간들을 보상해주고 있었다. 돈 걱정, 가족 눈치, 친구들 눈치 그런 거 싹 다 치워버리고, 오직 내가 뭘 하고 싶은지만 생각하고, 해 나가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구겨졌던 시절을 한껏 펴내고 있었다. 


그런 일 외에도, 당시 엄마에게 오를 만한 주식을 몰래 사라고 말하는 것, 절대 아빠의 도박빚을 갚아주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 선산을 절대 팔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에서부터, 중학생 때 더 열심히 공부할 것, 대학시절 연극부에 들어가 볼 것, 더 열심히 미래에 대해 고민해볼 것, 더 마음 편히 방황해볼 것, 더 열심히 연애할 것, 더 마음 편히 살아볼 것 등등 수 없이 많지만, 가장 중요했던 건 역시 '남들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보는 것'이었다.  


"어? 벌써?" 

그러다 벌써 도착할 시간이 되며,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다시는 그때로 못 돌아가겠지?' 과거 항상 이곳에서 멈추며 상상으로나마 생생히 즐긴 것에 만족했지만, 어떤 날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갔던 적이 있었다.


'만약 10년 후의 내가 오늘의 나처럼, 과거로 돌아간 상상을 하며 짜릿함을 느끼는데, 그때 떠올리는 게 지금의 나라면 뭘 바꾸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내 삶에서 뭘 되돌리고 싶을지를......., '사회를 떠나서 세계를, 세상을 실컷 방랑해보는 것', '온몸에 힘을 빼고 살아보는 것', '돈 걱정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살아보는 것',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할 말 다하고 사는 것', '내 가슴이 시킨 대로 살아보는 것' 등등 여러 가지가 떠올랐지만, 역시나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이걸 원하고 있을 것 같았다. 


"남들 눈치 보지 말고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라" 

중학생 때와 조금은 달라졌을까? 


그렇게 행복했던 1시간의 출근길 여행길을 마친다. 


매번 이 망상의 끝은 '여유'로 끝이 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은은하게 여유가 피어오르고, 나를 검열하던 내가 사라져 행동, 몸짓, 말들이 자연스러워진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살아도 될 면죄부(?)를 얻어서일까? 그렇게 한동안은 여유를 지니고 살아간다. 매번 그랬듯이......, 그러다 또 쓸데없는 걱정에 둘러싸여 나를 잊고 지낼 때면, 생각은 또다시 나를 과거로 끌고 가서 한껏 여유를 퍼담아 올라오곤 한다.




사람들은 흔히 첫 단추가 잘못 채워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내 삶은 망해버렸다고 느끼며 그때로 돌아가 첫 단추를 다시 끼우는 데에만 집착하지 정작 현재는 잊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삶이 끝나지 않는다면 바로 

'지금'이, 미래의 내가 그렇게 간절히 돌아가길 바라는, '첫 단추를 끼울 수 있는 순간' 중 가장 빠른 때가 아닐까?


그렇기에 우린 잘 생각해봐야 한다. 미래의 내가 돌아와서 씩씩거리며 바꾸고 싶어 할 정도로 후회할 짓을 하며 지금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래의 나에게 미안할 정도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에필로그



그건 당신 건가요? 책임질 수 있나요?


한 번은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15분)를 보며 공감되는 이야기를 하는 흔히 말하는 '스타강사'의 인생조언과 연기를 보게 되었다. 생생한 표정과 몸짓에 웃음도 나고 공감도 했기에, 책까지 빌려서 읽어보곤 했다. 그때의 느낌은 '우와 재미있다'였다. 공감되는 말들과 시원시원한 인생의 해답에 통쾌함을 느끼며 정신없이 읽어 내려갔고,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그토록 찾던 세상의 진리가 이런 것 일 수도 있을까?', '스승은 멀리 있는 게 아닌가 보다.' 라며, 꽂혔던 스타강사의 글과 영상을 찾아서 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상 속에서 말하는 강사의 모습이 마치 연기자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그날은 피곤했는지 자주 하는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띄우려 하는데, 피곤하고 몰입하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걸 보는데 갑자기 배신감이 일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앞의 장막 같은 것들이 걷히며 '이렇게 쉽게 삶의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그는 신인가? 그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답을 얻었지?'라는 생각에 그의 말 하나하나를 의심해보기 시작했다. 너무나 쉽게 단정하며 "이렇게 살아야 된다.", "삶은 이런 거다." 라며 했던 말들 속에는, 답은 있었으나, 답까지 온 그들의 삶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자꾸 '저 말들은 어디서 왔을까?'라는 의문들이 일었다. 그러면서 저들이 단정적으로 말하는 인생의 해답이 과연, 책임질 수 있는 말일까?, 저 말들은 어디서 온 말들일까? 본인 것일까? 아니면 타인이나 책에서 배운 것일까? 그렇게 시작된 의심은, 결국 그가 말하는 모든 것들을 다시 보게 되었고, 결국 난 이렇게 판단했다.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다 쓸만한 것'이다.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겐 위로가 되겠지만, 삶은 이런 것이라며 단정을 지을 수 있는 만큼의 진리나 지혜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내가 찾던 것은 아닐 거라 확신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이 해주는 단정적인 말들에, 고민을 멈추고 싶은 욕구들이 감응해서 달콤함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역시나 답은 내가 찾아야 하는 건데......


난 적어도 내 생각이 타인에게 전달될 때 그가 다양한 삶의 보기나 선택지 중 하나로 봐줬으면 했다. 내선택이 답은 아닐 수 도 있다는 당연한 생각을 했기에......, 이후에 TV이나 유튜브에서 그들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혼잣말로 화를 내곤 했다. "아니 그래서 그 말은 본인 거요?, 어디서 배운 거면 어디서 배웠다고 하던지, 무슨 책에서 본 건지 말을 해줘야지!", "당신이 내 인생 책임질 수 있어요?", "그렇게 살았는데도 안 나아지면?" 물론 그런 걸로 화내는 나도 억지스러웠지만, 속았다고 생각해서인지 이상하게 분노가 치밀었다. 


내 삶의 선택지를 담백하게 쓰려했는데, 쓰다 보니 그들이 말하는 자기 계발서? 혹은 그와 비슷한 듯하여 혹여나 답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말해주고 싶다. 


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보기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나도 내 글의 출처를 밝혀야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타고난 것, 개인적인 고민과 경험으로 발효시킨, 즉 내 것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이 60% 정도이고, 나머지는 책과 연애했던 친구들, 친구들, 사회경험 등등인 듯한데, 책들은 제목이 기억에 안 남는 게 대다수라......, 나머지는 프라이빗한 부분이 아닐까 하네요......, 아무튼 분노는 안 생기게 잘해보겠습니다. 











사진출처:

https://capacitaccionchile.wordpress.com/2016/04/21/averigua-que-inteligencia-dominante-tienes/

http://floridakorea.com/2017/12/28/%EC%84%9D%EC%9C%A0-%EB%93%B1%EC%9E%94%EB%B6%88%ED%98%B8%EB%A1%B1%EB%B6%88%EC%9D%98-%EC%B6%94%EC%96%B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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