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상주의자였다. 고쳐서 사회에 내놓을 수도 없는 지독한 놈. 주위에서는 내가 언젠가 사회를 떠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난 이상이라는 유토피아를 찾아 헤맸다. 그런데 갑자기 사회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생기더니, 그 꿈을 이루려 노력했고, 노력 끝에 꿈을 이루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덩그러니 사회라는 외딴섬에 남아버렸다. 그렇게 난 사회라는 섬에서 적응을 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
시끌벅적한 술집 안, 그는 입사동기 세명과 술자리에서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상사들을 향한 험담, 힘들었던 이야기들, 회사에서는 절대 하지 못할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마치 고등학생 시절 야자를 도망쳐서 놀고 있는 듯한 스릴을 즐겼다. 모두가 첫 직장이었고 1년이 채 되지 않은 신입사원들이었기에 같이 고생했고, 같이 설레었고, 같이 미래를 꿈꾸며 우정을 느꼈다. 그러다 동기들은 자연스레 내 집 마련, 결혼계획, 뭘 하고 살고 싶은지 등의 인생 계획을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부터 입을 닫고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서로의 꿈과 이상을 쏟아냈고, 동료들은 본인들의 이야기를 실컷 쏟아냈는지 그에게도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를 물어봤다.
"넌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음......"
그는 한참을 고민했고, 동기들도 한껏 취기가 올라와서는 그냥 넘어가 주지 않았다. 끊임없는 추궁에 그의 마음속 꽁꽁 숨겨뒀던 진심이 툭 하고 튀어나와 버렸다.
“하늘을 날고 싶어......."
"언젠간 하늘도 실컷 날아보고 이 세상 다 겪어봐서, 이제 다시는 안 태어났으면 좋겠어"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회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싫어 말하지 못했던 진심을 한 번쯤은 털어놓고 싶었던 걸까? 그는 고이 간직했던 이상을 쏟아냈고, 동료들은 갸우뚱하며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해해줬다. 사회에서 그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이 생긴 순간이었다.
난 마법을 믿는다. 마술이 아니라, 하늘을 날고 이곳저곳에 존재하며, 손짓 한 번으로 온갖 물건을 만들어내는, 그런 비현실적이라 불리는 마법 말이다. 나에게 있어 마법은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유희나 보상 같은 것이다. 깨달음을 이번 생의 목표로 삼으며,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나에게,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먹은 것으로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학창시절 창가 자리를 고집했다. 그때는 수업시간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는 게 그렇게 좋았다. 텅 빈 하늘 한가운데 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손을 뻗어보고 발을 디뎌보곤 했다. 한 번은 운동장 모래들이 햇빛에 반사돼서 황금색 물결처럼 보였는데, 내가 저 속으로 뛰어들면 죽기보단 쏙 빨려 들어가 다른 세상으로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여느 날처럼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공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새 두 마리가 운동장을 빙빙 돌고 날아가는 걸 본 순간, 내가 왜 그렇게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봤는지 알 수 있었다. 난 저 새들처럼 날고 싶었다. 세상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는 듯 원하는 곳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저 녀석들처럼, 난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고 싶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사는 것이 갑갑하다고 느꼈고, '세상에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더 있지 않을까?', '어른들이 여태 배워온 상식과 다른 세상을 우리에게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품으며, 다른 세상을 찾아 헤맸다.
일반적으로 중학생 즈음되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난 중학생 때 까지도 내가 한치의 의심 없이 온전한 믿음만 있다면,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었다. 그래서 밀려드는 의심을 배제하려 부단히 애썼으며, 부모님과 주변의 그 누구에게도 비밀로 한 채(어릴 적부터 이런 생각들을 이상하다고 취급받아왔기에 철저히 숨겼던 듯싶다) 홀로 세상의 상식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눈을 감고, 허공에 발을 디디며 몸이 떠오르는 상상을 하며 제자리에서 몇 번을 뛰어보고, 누워서 몸이 떠오르리라 믿으며 침대에서 몸이 뜨길 기다렸다.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나의 비현실적 믿음은 강했다. 심지어 당시 날개뼈 쪽에 통증이 있었을 때는 날개가 돋아나는 것이라 믿기도 했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당시 불안했던 가정과 교우관계를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생각했기에, 현실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로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현실도피의 목적으로 다른 세상을 꿈꾸고 가치관을 꾸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이 지금의 날 만들어 줬고, 그런 믿음의 배경에도 믿음 자체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즉 이유야 어쨌건 그때의 내 모습도 지금의 내 모습도 모두 긍정한다.
아 참! 저런 믿음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에필로그
현실과 별 다를 바 없었던 순간. 꿈속에서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사방이 모래로 덮인 사막에 인디언 복장을 한 어른과 아이가 있었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찾아 헤매던 스승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나를 바라봤고, 아이가 먼저 모래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다음은 내 차례였다. 둔덕을 뛰어내려 스승과 함께 하늘로 솟아올랐고, 난 그렇게 꿈꿨던 하늘을 날고 있었다. 하늘 속에서 벅차오르는 '진짜자유'와 행복이 아니면 어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 무언가가 내 안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렇게 한동안 하늘을 날았고 내가 그토록 찾던 세상의 무언가가 조금은 잡힐 듯 한 느낌을 손에 쥔 채 꿈에서 깨어났다. 이후에도 이어지는 꿈을 꾸기 위해 수없이 노력했지만 다시는 그 꿈을 꿀 수 없었다.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었고, 다시금 내 믿음을 공고히 하며 현실에서 스승을 찾아 헤매고, 사막에 집착했다.
가끔씩 내가 길을 헤맬 때 누군가 나에게 길을 알려준다고 한다면 그건 꿈일지도 모른다. 마음속 믿음들이 뿌리째 흔들릴 때도, 꿈은 나를 다잡아준다. 그러면서 말해주는 것 같다. "방황은 해도 포기하진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