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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창 Jun 09. 2020

이상주의자의 현실 적응기 1 스승을 찾아서

현실에서 스승 찾기


20대 중반 즈음 ‘뭘 하고 살아야 할까?’라는 지긋지긋한 고민의 답을, 이제는 내려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이 직업이 되었건 무엇이 되었건……




머릿속에 끊임없이 울리던 질문들이 갑자기 눈에 선하게 보였다. 그리고는 그 생각들은 나에게 이제는 답을 내려서 그 길로 달려가 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뭐하고 먹고살지?’, ’ 뭘 하고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라는 직업적인 것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누가 좀 알려주세요!’라는 근본적인 생각까지 갔었다. 그때는 어떤 스승 혹은 초월자가 내 눈앞에 나타나서 ‘네가 이런 일을 하고, 이렇게 살면 나중에 이렇게 늙을 수 있고, 또 이런 삶을 선택한다면 이렇게 늙을 수 있고…… '등 삶의 여러 선택지와 그에 따른 결과를 쫙 보여준 뒤 고를 수 있게 해 주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답을 내릴 수 없었고 결국, 나에게 ‘삶’을 알려줄 스승을 찾아내기로 했다. 당시의 나는 사람보다는 책, 현실보다는 이상을 가까이했기에, 안 그래도 컸던 비현실적인 믿음들이 더욱 커져 있었다. 그렇게 무작정 삶을 알려 줄 스승을 찾아 나설 수 있었다.




흔히 스승이나, 초월자를 찾는다고 한다면,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나에게는 ‘도인’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인터넷에 ‘도인이 사는 곳’을 집요하게 검색했더니 계룡산에서 도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봤다는 몇몇 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길로 나는 싸구려 개량한복을 하나 사 입고(도인을 만났을 때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해) 무작정 계룡산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계룡산은 영험한 기운(‘한국에서 가장 영험한 산’이라는 평이 많았다)이 느껴지기보다는 국립공원으로서, 등산로가 아주 잘 정돈된 관광지 같았다. 평일 낮이었음에도 등산객이 꾀나 많았고, 오히려 등산객들의 눈빛에서 개량한복에 머리까지 산발인 나를 도인으로 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왠지 도인들은 사람들이 없는 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등산로를 벗어나 길 아닌 곳으로 걸어 올라갔다. 

그렇게 길 아닌 곳으로 오르기 위해 두 손으로 바닥을 짚어가며 흡사 짐승처럼 네발로 기어서 산을 올랐다. 위만 보고 올라가고 힘들면 잠시 바위에 눕기도 하면서, 인생을 알려 줄 스승을 찾아 계속 올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고 있으니 날씨도 쌀쌀해지고, 해도 살짝 기우는 듯했다. 한참을 헤맸지만 도인 같은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가끔 지나가는 등산객만 만날 수 있었다.




등산객을 피해서 한참을 깊은 산속으로 걸어가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고통을 느끼며 잠시 몸을 추스르고 하늘을 봤을 때, 하늘은 꾀나 어둑어둑 해져 있었다. 그때 갑자기 엄청난 두려움이 뇌리를 스치며 ‘밤새 산을 헤매면 어떡하지? 가방에 물도 음식도 아무것도 없는데……’ 등의 전혀 생각지 않았던 현실적인 고민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며 식은땀이 났다. ‘내가 왜 올라왔는지, 스승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 순간 내 몸은 ‘살아야 한다’는 일념에 휩싸였고, 살기 위해 손을 뻗어 나무를 짚으며 뛰다시피 산을 내려갔다. 밤을 산에서 보낼 생각에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미친 듯이 내려가며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 다행히 등산로를 발견했고, 다행히 살아서 내려올 수 있었다. 




무사히 내려와서는 편의점에서 허겁지겁 물을 마시고, 도시락과 컵라면을 사 먹었다. 그렇게 한숨을 돌린 후 멍한 채로 길바닥에 앉았다. 그리고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돌이켜봤다. 




난 인생의 스승을 찾아서 계룡산까지 왔고, 올 때의 나는 무조건 스승인 누군가를 만나서 대답을 들으려 했다. 당장 못 듣는다면, 무협영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몇 년 정도는 산속에서 스승의 시중을 들면서 수련을 하며,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사회에 나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 정도의 각오로 내려왔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확실히 깨달은 것은, 나는 내 생각만큼 사회를 또 일상적인 생활을 버릴 각오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친구들 앞에서는 깨달음을 얻겠다고, 사회를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척, 자유로운 척, 남들과는 다른 척했지만, 이곳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스승이 아니라 ‘나’였다. 겁 많고 나약한 ‘나’, 또래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나’, 외면해왔던 현실적 욕구들을 마주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몸을 추스르고 집으로 도망갔다. 창피했다. 또 부끄러웠다. 




다음날 평소처럼 동네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한가득 빌려 침대 위에 늘어뜨려 놓고 찔끔찔끔 읽어대며, 창피함을 합리화시켜 줄 타인의 한 줄을 찾으며 내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껏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던 현실적 욕구들이 두려움이라는 형태로 나를 일깨워 줬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이런저런 합리화를 하며, 이렇게 결론을 내렸었다. 




'현실에서 남들처럼 일을 하며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내가 스승을 만나지 못한 것은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시 학교로 돌아가 졸업을 하고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때를 기다리자! '




이런 합리화를 하며 그때의 나는 내 사회적 욕구들을 승인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사회적 욕구를 잘 채울 수 있는 직장을 운 좋게 들어갔고 사회생활을 나름 잘 해내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그때 품었던 삶에 대한 의문을 포기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때의 싸구려 합리화가 현실이 된 지금, 열심히 사회 안에서 삶에 대해 배우려 하고 있으며, 이런 배움이 끝날 때, 스승을 만날 것임을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삶이 무엇인지 알아내서, 그런 앎을 가지고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런 꿈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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