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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창 Jun 09. 2020

이상주의자의 명상록 1 첫 명상

내가 처음으로 명상을 한 것은 중학생 즈음이었을 것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버지는 도박을 하고 집에 왔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나무라며 언성이 높아졌다. 당시의 나는 소심하고 겁이 많아 언성이 높아지면 몸을 숨기기에 바빴고, 내가 개입해서 말릴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저 방에 숨어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랬고 ‘혹여나 내가 잘못한 것이 있어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거라면 제발 용서해주세요’ 라며 하느님, 부처님 등 도움을 줄 법한 불특정 다수에게 기도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겁쟁이 꼬마는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릴 적 그럭저럭 괜찮았던 아버지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혹시 아버지에게 무슨 귀신이 씌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기억도 흐릿한 어떤 책에서 본 것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아버지의 몸에서 귀신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상상하며 빌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싸움은 이어졌지만 이후로도 나는 문 밖에서 언성이 높아질 때면, 가부좌를 틀고 고요한 세상으로 들어가기를 바랐다. 그때의 어린 진창이는 부모의 싸움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도망칠 곳을 찾았고 그곳이 바로 명상이었던 것이다. 그 속에서 포근했던 과거의 아버지를 만났고, 그 추억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이미지를 강하게 하기 위해 잡생각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연습을 했고, 호흡에 집중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떠오르는 모든 이미지들까지 없애려 했다. 아무것도 없는, 고요가 주는 평안을 더 선호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명상을 시작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힘들다’라는 감정이 생길 때면, 나는 명상을 통해 고요한 마음으로 들어가서 살아갈 힘을 얻어 다시 올라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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