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창 Sep 09. 2020

목적지에 도착해야만 좋은 여행일까?





"가는 순간이 여행일까? 목적지에 도착해야 여행일까?"

 


나는 여행을 할 때, ‘가볼까?’ 생각 드는 목적지 하나를 정하고 천천히 목적지 방향으로 걸어간다. 주변을 둘러보며, 바다가 보이면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다 저녁이 되면 숙소에 돌아오기도 하고, 내일 그곳에서 다시 여행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 여행을 즐긴다. 목적지는 사실 여행을 시작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기에, 내 여행 있어서 진정한 목적지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여행에서는 게스트하우스를 자주 이용하는데, 그곳에서 여행자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어디서나 첫마디는 “오늘 어디 어디 가보셨어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항상 머뭇거렸다. 내가 갔던 곳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여행 도중 멈춘 대부분의 장소는 지명이 따로 없거나 명소가 아니었기에) 물론, 초면에 할 말이 없어서 하는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여행과 나의 여행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그들은 유명한 곳, 아름다운 곳 등 가야만 하는 강력한 목적지가 있었고, 목적지에 가지 못했을 때에는 많이 실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많이 가봤으면 대단하다 여기기도 했다. 반면에 나는 제대로 된 목적지에 도착한 적이 거의 없었기에 비주류의 여행자가 되기도 했다.

 

 

  



 

 


"현실에 충실하게 살았던 것이 문제였던 걸까?"  

 

 

드디어 문이 열리고 숨을 고르며 문 안으로 들어섰다. 의자에 앉으며 양손을 가지런히 무릎에 올렸다. 아침에 집에서 마시던 공기와는 차원이 다른 빽빽한 공기가 숨에 섞여 들어왔다. 긴장이 공기질까지 바꾼 것이다. 5명의 면접관은 나에게 긴장을 풀라며 물을 하나 줬다. 이걸 마셔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던 찰나에 짧게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하면서 본격적인 면접이 시작되었다.

 


긴장으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대화를 이어가며 질문공세를 막아내던 중, 시종일관 미간을 찌푸리며 마치 눈싸움을 하자는 듯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남자 면접관은 말했다. “진창님 경력이 여러 가지네요, 이 회사 2년, 이런 일 저런 일…… 어린 나이에 해본일은 다양한데, 우리 회사 일을 잘할지는 의문이네요, 우리 회사는 전문지식도 많이 공부해야 되는데, 솔직히 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속으로 생각했다. ‘해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 수 있지?’, 몇 번을 꾹꾹 누르며 이전 회사에서 이룬 좋은 실적과 관련 전문지식 스터디 이력을 어필하며 잘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다른 지원자들은 관련 학과를 나와서 관련된 인턴을 한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진창 님은 경쟁력이 없는데, 다른 직장을 찾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흥분했지만 오른손의 맥을 짚으며 겨우 가라앉혔고, 과거 전공과 상이했지만 좋았던 업무성과를 말하며 잘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후의 면접에서도 난 항상 저런 류의 질문을 많이 받았다. ‘경력이 너무 다양한데, 우리 일을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관된 경력의 지원자들에 비해 경쟁력이 없다’ 등 …….

 


그때마다 "살기 위해 되는대로 일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경제적인 이유로 선택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세상의 풍파를 겪은 흔적으로 봐주실 수는 없을까요?", "잘할지 못할지는 해봐야 아는 것 아닐까요?" 등 다양한 대답을 시도해 봤지만, 그들은 그런 솔직한 대답은 더욱 싫어하는 듯했다.

 

 



 

20대 초반, 단신으로 사회에 나왔고,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벌어야만 했기에 휴학 후 계약직, 아르바이트 등 할 수 있는 온갖 일들을 했다. 그중 1년이 넘었던 일들은 모두 이력에 썼고, 그 당시 닥치는 대로 했던 일들은 당연히 일관될 수 없었다. 게다가 성적에 맞춰서 골랐던 전공은 적성에 맞지 않았기에, 전공과 지원 직무는 상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단신으로 나와 겪어본 사회라는 곳은 어떤 경력을 가졌는지 보다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해 보였다. 기술직, 전문직 외에는 배우는 기간이 존재할 뿐, 경력이나 전공이 큰 차이를 만들지 않았고, 오히려 사람의 성품이나 태도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영업직을 뽑는 자리에 아무리 영업 경력이 화려하지만, 본인 포장만 잘했지, 실제 영업능력이 좋지 않거나, 일 자체를 안 하려는 경력자가 있을 수 있다. 반면에 경력이 하나도 없지만 성실하고, 친근하게 사람을 대할 줄 아는 신입사원은, 욕심을 부린다면 적응기간 이후 기존 경력직보다 훨씬 더 좋은 실적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면접관들의 경력과 전공에 집중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의문이 들곤 했다.

 


이 직무에는 어떤 자질이 필요한지, 통계적으로 이런 성향의 사람들을 뽑았더니 잘하고 있더라,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등 내 기준의 좋은 질문들을 기다렸지만, 들어본 기억은 없었다.

 


다른 면접에서 또 일그러진 표정으로 저런 질문을 하는 면접관(누구나 저 질문을 할 때는 항상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에게 “면접관 님은 어릴 적 꿈이 뭐였습니까?”라고 역으로 질문하기까지 했다. 면접관 님은 어릴 적부터 이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관련 전공을 고르고 관련 회사에서만 인턴 하고, 관련된 일만 일관되게 해서 입사한 것이냐고 묻기 위해, 결국 “꿈이 이 회사 직원이었습니까?”라고 묻기 위해서였지만, 흐지부지 넘어가버렸고, 이후 취업이 되면서 설욕전을 펼칠 기회는 사라졌다.


 

면접에서는 면접관마다 ‘굿맨’, ‘배드맨’ 등의 역할을 가지고, 일부러 컨셉에 맞춰 질문하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본인 사고방식과 다른 가치관을 드러내는 대답을 하면, 질문 중에 감정이 섞이고, 면접이라는 자리는 공식적으로 그런 마음을 롤 인척 하며 드러내기에 썩 괜찮은 자리였기에, 난 그들의 감정을 자주 느낄 수 있었다. 즉 일부는 배드맨이 아니라 본인의 배드 한 감정이 섞인 질문을 한 것 같았다.

 


대게 초등학생 때 꿈을 써내라고 하면 나 때만 해도 1위가 과학자, 2위는 연예인, 3위는 대통령 정도였다. 그러면서 수능 이후 성적에 맞춰 전공을 선택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목표를 세우고 계획대로 모든 것이 이뤄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삶이었다. 면접관들도, 어릴 적 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우리들 모두가 조금씩 경로를 수정하면서, 그러면서 또 그때마다의 꿈을 꾸면서, 매 순간 여러 갈래의 길 위를 걸어간다.

 

 

 




"어릴 적 꿈이 직업이 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태어나서 한 번에 원하는 일을 찾아서 관련 학과를 진학하고, 관련된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을 나는 기적이라 칭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운과 노력이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의사, 변호사가 꿈이라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집안에 태어나야 하고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재능과, 노력을 할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나야 할 것이다. 또 입시 당시의 제도에 맞는 공부와 활동을 해야 하며 시험 당일의 최소한의 운, 최소한의 육체적 건강을 지녀야 하는 등 수많은 고비들을 넘어야만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입시를 통과하더라도, 학업 도중 육체와 심리를 피폐하게 만드는 사건 사고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업까지 연결되었을 때 그 일이 나의 기대와 부합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또 고민에 휩싸일 것이다.  




몇 천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아나운서가 되었지만 프리선언을 하며 예능인의 길을 걷는 이가 있는가 하면, 힘들게 변호사가 되었지만 연극배우가 된 이도 있다. 그 외에도 전공과 다른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다. 목적지에 가본 사람들의 말만 듣고 그곳에 갔을 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선택한다. 너무 힘들게 목적지에 왔기 때문에 그곳에 머무르며 적응하거나, 아니면 당장 다른 목적지를 찾아 떠나거나. 

 

세상은 후자의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많이 박한 것 같다. 많이 가보고 여러 번 돌아오며 세상을 겪은 사람들은 그만큼 세상을 더 넓게 가봤기에 한길만 가본 사람들과는 또 다른 깊이와 유연성이 있을 것이다. 이후에 어떤 재능이 발현될지는 모르지만, 그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아닐까?


 

 

  



 

 

"비주류의 여행자"

 

첫 직장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받던 중, 돌아가면서 우리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를 말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누구는 담당업무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했고, 누구는 회사의 CEO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점점 거창한 꿈들을 들으며, 회사의 원로들은 뿌듯해하는 듯 보였다. 그러면서 점점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난 또 엄청난 고민에 휩싸였다. ‘다들 어떻게 대답하는 거지? 일단 다 해봐야 뭐가 재밌고, 뭘 더 잘하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차마 분위기상 그런 말은 못 한 채 대답했다. "닥쳐오는 순간에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동문서답을 한 듯한 분위기가 펼쳐지며 분위기 싸~ 해졌지만, 그게 비주류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그 순간의 최선의 선택들이 모여서 미래의 내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의 내가 그런 선택들의 결과물인 것처럼……..


 

오늘도 수없이 많은 선택의 갈랫길 위에서, 뭐가 맞는 것인지 고민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러면서 바란다 이 고민을 하는 순간이 행복해질 수 있기를....... 평생 없어지지 않을 고민 같기에......

 

 

 

 

 

 

 

흘러가는 물들의 마음

 

눈앞에 물빛들이 흘러간다.

그들은 가고 싶어서 흘러가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물들이 밀어서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것일까?

오늘은 생각해보고 싶다. 나도 그들처럼 흘러가는 것 같기에


 

-  진창의 20년 5월 1일의 바람과 풍경이 쓴 시   -

 

 

 

 

 

 


에필로그

 

 

그날은 조금 감성적인 날이었다. 비도 오고 한참 ‘나는 누구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매몰되어 있었는데 여자 친구가 나한테 물었다.

"뭐 먹을래?"

"글쎄……."

"밥 먹고는 뭐 할래?"

"글쎄……."

"뭐하고 싶은지도 몰라?"

그때 나는 눈을 개슴츠레 뜨고, 시선을 허공에 흐리며 냉큼 대답했다.

"뭐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 지금 내가 뭐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전부 모르겠어......"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면서 살면 멍청한 거야, 컨셉잡지 말고 빨리 메뉴나 정해!!!!!(짜증과 함께 팔뚝을 짝 때렸다)"

그 한방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갑자기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었다. 그렇게 떡볶이를 맛있게 먹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적어도 뭐 먹고 싶은지는 정신만 차리면 알 수 있구나'

 









사진출처

http://www.jobnjoy.com/portal/jobnews/plan_explan_view.jsp?nidx=174733&depth1=&depth2=&depth3=

 

 

 


이전 03화 이상주의자의 명상록 1 첫 명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