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 지켜본 그 녀석은 참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어떨 때 보면 미련한 바보 같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세상을 통달한 현자 같기도 했다. 하루 15시간 고된 일을 하며 살지만, 불평 한번 하지 않고 묵묵히 본인의 삶을 살아가는 녀석....... 나는 절대 넘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커다란 세상의 파도를 오래된 서퍼처럼 능숙하게 넘나들었고, 심지어 그 위에서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진정한 ‘안빈낙도’의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의 몇 안 되는 사람....... 이놈은 세상의 뭔가를 아는 놈일까? 누구는 그 녀석을 미련하다 했다. 하지만 내가 본 그 녀석은 사회의 배웠다는 그 누구보다, 높다는 그 누구보다 단단하고 깊은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홀로 완전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나는 한때 인권변호사를 꿈꾼 적이 있었다. 20대 중반, 당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이 머릿속 가장자리에 언제나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연관성은 없지만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던 중 갑자기 생각이 정리되며, 인권변호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힘없는 자들에게 “내가 도와줄게요! 일어나세요”라고 말하는 이미지나, TV 뉴스에서 그들을 대변하려 인터뷰하는 이미지 등 약자를 위하는 정의로운 인권변호사의 모습이 떠오르며 열정이 타올랐다. ‘이거다!’ 그 상상 속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었다. 그렇게 강렬한 이미지들을 연료로 삼아 그 어떤 힘든 인권변호사의 삶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환희를 느끼며 미용실을 나왔다. 머리카락을 잘랐을 뿐인데 머릿속까지 정리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연료들은 2년 만에 다 타버렸다. 로스쿨 입시에 두 번이나 떨어졌고, ‘정권이 바뀌었다.’, ‘시대정신이 바뀌었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굴러간다’ 등의 사회가 나 없이도 정의로워지고 있다는 합리화를 거치며, 연료들은 다 타버렸다. 그렇게 2년간의 시도 끝에 고귀하다 여겼던 꿈을 접었다.
한창 로스쿨 입시 공부를 할 당시 나는 아르바이트를 병행을 하고 있었으나, 한 번의 고배를 마신 후 2년째는 마지막이라 생각해서 생활비를 대출받아 공부했었다. 그러면서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서울에 있는 고향 친구에게 좀 같이 살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다. 본인도 좁은 원룸에 살고 있던 그 녀석은 흔쾌히 알겠다고 해줬고, 그렇게 절대 잊지 못할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 친구는 중학생 때부터 흔히 말하는 부랄 친구로서, 과거 노래를 정말 잘해서 가수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던 녀석이었다. 그 녀석은 군 전역 후 서울에 올라와 보컬학원을 다니며, 학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근처 마트에서 일하고 레슨을 받으며 생활했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있듯 그 녀석에게도 세상의 시련이 찾아왔다. 보컬학원 원장이 그 녀석 이름으로 천만원이라는 당시 거금을 대출받게 해서 돈을 빌리며, 잠적해버린 것이다. 내 친구는 앨범한장 못 내본 채, 대출받은 돈을 갚고 생활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하던 마트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마트에서 5년째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녀석은 주 6일 근무로, 아침 8시에서 저녁 11시까지, 15시간씩 일했고, 월에 네 번은 오후 6시 정시에 퇴근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최저시급을 받았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였고, 정말 힘들어 보였다. 집에 오면 씻지도 않은 채 쓰러져 기절하듯 자는 것이 다반사였다. 관심사는 오로지 휴식, 핸드폰뿐이었다. 휴식, 식사 등 원초적인 부분 외의 재테크나 사회, 꿈 등에 대한 관심은 가질 수가 없었고, 그 외의 것들은 알레르기 일으키듯 싫어했다. 귀찮음이 극에 달한 것이다. 보컬학원 원장에게 사기를 당한 것도, 결국은 귀찮아서다. 검증하고, 따지고 하기 귀찮아서 그냥 빌려준 것이다. 15시간씩 일하는 이에게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친구가 일하는 마트의 휴일, 휴식시간이나, 주휴수당 등 부당해 보이는 부분이 보여서 한번 확인해보라고 했지만, 귀찮아서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적금을 들기 위해 은행을 가거나, 공과금을 내러 밖에 나가는 것 또한 미루고 미루다 6개월 만에 내가 겨우 끌고 간 적도 있었다. 주에 하루 있는 휴일은 가끔 노래 부르러 나가는 것 외에는 집에서 꼼짝하지 않고 밀린 잠을 보충하거나 침대 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 녀석 말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휴일 같다고 했다. 짧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면 다음날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정말 힘들어 보였고, 당장 그만두고 좋아하는 음악 관련된 일이나, 다른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몇 번을 권했으나, 대답이 없었다.
하루는 퇴근하고 침대에 박제되어있는 친구 녀석에게 물어봤다. “너 그렇게 살면 안 힘드냐?”, 친구는 말했다. ".............." 핸드폰에 고정된 시선은 미동조차 없었다. 대답하기도 귀찮은 것이다. 그리고는 말없이 냄비에 물을 올리며 너구리 라면 두 개를 꺼냈다. 그러면서 처음 입을 열었다. “먹을 거?”, “아니” 그 녀석은 말없이 라면 두 개를 먹어치우곤 바로 침대에 누웠고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 멋지고 쿨한 녀석이었다.
그날 나는 마지막 로스쿨 입시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장의 생활비가 급해서, 그 녀석에게 마트에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냐고 물었고 마침 합격 발표 당일에 마트에서 일일 아르바이트를 쓴다고 했다. 시간은 오후 1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나는 떨어질 것이란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았기에 일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오후 1시부터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내가 맡은 일은 농산물 진열대 앞에서 감자, 상추 등을 보충하고, 손님들이 담아온 농산물의 무게를 재서 가격 스티커를 붙이는 일이었다. 그렇게 오후 내내 합격통보를 기다리며 흥분된 채 일을 했다. 오후 5시 드디어 발표 문자가 왔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후보도 못 받고 불합격 통보를 받은 것이다. 2년간 온갖 고생을 다 하고 대출까지 받아가며 공부했는데 탈락을 한 것이다.
처참한 마음으로 농산물 진열대 앞에 서 있는데 누가 툭 치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친구는 보기에 뭐했는지 방에서 잠깐 밥이라도 먹고 오라며 나를 휴게실로 데려갔다. 친구에게 말했다. “알바비 안 줘도 되니까 나 먼저 들어갈게 미안……” 이런 기분으로 사람들을 응대할 자신이 없었다. 술이라도 먹고 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안된다며, 일은 일이니 그래도 저녁까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곤 도망가 버렸다. 따라가서 “씨발 나 떨어졌다고!!!” 소리까지 쳤지만 녀석은 대답이 없었다. 결국 포기한 채 꾸역꾸역 밥을 먹고, 마트 조끼를 입고 농산물 코너로 갔다. 세상 슬픈 눈으로 손님 한 분 한 분께 감자, 당근을 비닐에 싸서 스티커를 붙여 드렸다.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어색한? 기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세상은 처참히 무너져 내렸건만 주변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감자를 고르고 당근을 골라 나에게 건네줬으며, 나는 거기에 슬픈 눈빛과 처참한 심정을 담아서 가격 스티커를 붙여드리곤 했다. 그때 마트에서는 신나는 힙합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녀석은 마트에서는 경력 꽤나 되는 축에 속했고, 공산품 팀장을 맡고 있었기에, 큰일이 없는 이상 계산대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괘씸했고, 알만한 녀석이 내 감정을 헤아려주지 않는다는 것에 너무 화가 났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한 손님이 계산대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젊은 20대 남자처럼 보였는데, 계산원의 “이거 행사 상품인데 하나 더 가져오시면 됩니다.”라는 말에, 어머니뻘인 직원분께 갖다 달라고 한 것이다. 계산원은 침착히, “손님께서 가져오셔야 됩니다”라고 말했고, 젊은 손님은 가져오라고 소리를 쳤다. 그때 자리에 앉아있던 내 친구가 가서 “손님 죄송한데 행사상품은 손님께서 가져오셔야 됩니다.”라고 한번 더 안내했고 그 손님은 내 친구에게 “행사라며 네가 가져와!” 반말로 소리쳤다. 그때 내 친구 녀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건을 가져오며 태연히 그 진상 손님을 내보냈다. 난 그것을 보며 손이 벌벌 떨렸다. '과연 나라면 저 녀석처럼 할 수 있을까?' 친구 말로는 이 정도 진상은 진상도 아니라 했다. 계산원 얼굴에 물건을 집어던진 사람, 물건 훔치다 걸려도 욕하는 사람, 모멸감 주는 사람 등 듣기만 해도 이가 갈릴 정도의 엄청난 진상 스토리들을 나중에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고귀한 척 변호사가 되려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진심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변호사가 되고자 한 것일까? 아니다. 나는 힘든 사람을 도우며, 내가 그런 좋은 사람으로 남들에게 알려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 내가 저렇게 남들에게 잘못한 것 없이 욕먹으며 얼굴 팔리고, 가끔은 “그러니깐 이런 데서 일 하는 거야”라는 막말을 견뎌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세상 무심한 내 친구가 멋있어 보였다. 이 녀석은 자연스레 흘려버렸다. 마치 너네가 하는 말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듯이 ………
나 또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 볼꼴 못 볼꼴 들을 겪었다. 하지만, 로스쿨 입시 공부를 하며, 대학을 졸업하며, 뭣도 없었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직을 꺼려했다. 불특정 다수가 나에게 언제든지 자극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싫었고, 상처 받고 또 혼자 삼켜내야 하는 것은 너무 아팠다. 그래서 고귀한 척, 공부만 하면 되는 상대적으로 쉬운? 길을 가려했었다. 심지어 그것도 난 못했지만.......
로스쿨 공부를 하며 스터디를 몇 번 해보았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아는 한 최악의 인재 풀이었다. 물론 전부는 아니었지만, 이기적이고, 치밀하게 악랄했다. 고깃집, 옷가게, 카드사, 고시원, 해외전시 등 온갖 알바와 사회생활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중 단연 최악이었다. 그들은 계층이동을 하기 위해 변호사가 되려는 듯했다. 대접받고 살며, 누리고, 격차를 즐기기 위해 그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고, 내 안의 자존감이나 부족한 무엇을 채우기 위해 사회적 지위가 필요한 이들 같았다. 그래서 너무 싫었다. 나는 분명 타인을 위해 변호사가 되려는 거라고...... 그들과는 다르다고 했지만, 결국엔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었기에, ‘힘이 있음에도 남을 위해 산다 그러니까 난 좋은 사람이다.’라고 봐주길 원했던 것이다. 사회에서 인정과 존경을 받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채우려 했던 부족한 부분들이었다. 나나 그들이나 모두 내가 부족하기에 변호사가 되고자 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성에 맞지 않음에도 전문직이나, 자본주의적 상위계층을 위한 직업에 목메는 이들 중 다수는 내가 부족한 인간이기에, 홀로 온전할 수 없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그 녀석은 그 따위 것 없어도 홀로 충만한 녀석이었다. 고된 일을 하지만,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알량하게 가진 것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 필요도 없으며, 그 누군가가 자신을 비난해도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 세상에서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본인 뿐이라는 듯 무심하게 외부의 자극들을 흘려보낼 수 있는 그런 우월한 인간이었다. 그러면서 마트에 근무하는 분들 모두가 새롭게 보였다. 그들의 미소 뒤에 강인한 자아가 보였고, 치열한 전쟁터에서 여유롭게 지내는 그들이 진정 우월한 인간이구나 싶었다.
나중에 끝나고 방에서 서로 맥주를 먹으며 물어봤다. "나 같으면 정말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을 것 같은데 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어?", "........." 제기랄, 이 녀석은 또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일상인 듯, 아무렇지 않은 일인 듯……
에필로그
쉬는 날이었다. 싸우거나, 아무 일도 없었지만 이 녀석과 말을 안 한지 일주일도 넘은 듯해서 맥주를 사와서 먹으며 이런저런 말을 붙였다. 내가 10마디 하면 1마디 정도, 시선도 핸드폰에 고정된 채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참 그 녀석을 대단하다 여기고 있었고 살짝 존경심도 가지고 있었다.
“(한참 취해서) 너 같이 힘든 일 하는 애가 사회에서 대우받아야 되는데……. 기득권들보다 훨씬 대단한 놈인데…….”
“(밤 12시 갑자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네 여사님 아 그게……. 괜찮다니깐요~ 진짜 괜찮고 별일 아니에요~(30분 넘게 통화는 이어졌다)”
“왜 무슨 일인데? “
“(깊은 탄식)아……… 마음 약한 여사님이 있는데 오늘 손님이랑 싸워서 자꾸 그만둔다네, 아…… 내일 또 내가 땜빵하게 생겼네 내일 휴무인데 미치겠다 아,,,,,,,,,,,!!!!!”
그 녀석은 갑자기 식탁을 손으로 내리치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술을 연거푸 마셨다. 몇 년 만에 본 가장 큰 감정 기복이었다.
괴로워하는 녀석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녀석도 평범한 인간이구나, 존경까지는 좀 빼도 되겠다’
사진출처
https://www.ibs.re.kr/newsletter/2016/03/sub_04.html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2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