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창 Jan 07. 2021

이상주의자의 현실적응기2 세계관 대화편

주위를 둘러봐도 모래뿐인 넓디넓은 사막에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걷고 있다. 제자는 사회에서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던 사람이었지만, 점점 삶에 대한 의문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그를 가만두지 않았기에, 결국 떠났다. 삶에 대해 알기 위해, 삶을 알려줄 스승을 찾기 위해. 


그렇게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돌다 스승을 처음 본 순간 불현듯 '저 분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스승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스승은 그런 제자의 생각에 화답이라도 하듯 말했다. “여태 헤매고 다니느라 고생했다.” 그의 머릿속을 꿰뚫어 본 듯한 한마디에, 여태껏 스승을 찾아 헤맨 수많은 순간들이 스쳐 지나가며 가슴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그렇게 그는 스승의 발 밑에 머리를 대며 스승에 대한 예를 다했다. 스승은 “고개를 들어라 나도 널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제 왔느냐.” 라며 호탕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제자는 여태 지니고 살았던 무거운 보따리 속에 있었던 의문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제자:  스승님 저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왜 나이가 들수록 기쁨은 줄어만 갈까요?

         난 누구일까요? 

         행복하게 사는 걸로 만족하면 될까요? 행복을 추구하면 되는 걸까요?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해탈하면 어떻게 되나요?


스승: 천천히 하자, 우리에게 시간은 많다. 


제자: 그럼 첫 번째, 스승님 저는 왜 태어난 것일까요? 


스승: 네가 계획하지 않았느냐!


제자: 제가요? 전 그런 적이 없는데요........?


스승: 이 지구라는 곳은 배우고 성장하기에 적합한 곳이지, 죽고 나서는 배고픔과 졸림 같은 욕구와 감정, 시간의 개념도 없으니 변화를 경험하기가 쉽지 않아. 그런데 지구에 태어나는 순간, 배고픔도 느끼고, 좌절도 느끼고 사랑도 느끼며 다양한 감정들 속에 있어보고, 많은 곳을 가보기도 하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결국 넌 변화하기 위해, 성장하기 위해 이 지구를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란다. 


제자: (살짝 오싹해하며) 죽으면 감정도 못 느끼고 그러면 사는 게 너무 무료하지 않을까요?


스승: 무료하다라...... 그건 네 마음속 감정이겠지? 이렇게 말하면 어떠냐. '존재' 함과 동시에 모든 것과 연결된 하나가 된다고 말하면 조금 감이 오겠느냐.


제자: (긁적거리며) 잘은 모르겠지만 싫은 느낌은 아닌 거죠???


스승: (호탕하게 웃으며) 걱정마라 충만하고 따듯할 게다. 


제자: 그렇다면....... 굳이 태어나서 고생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스승: 그러니 지구에 계신 분들은 용기 있는 분들인 것이지. 잘 보거라 충만하고 따듯한 채로 계속 '존재' 할 분들이 지구에 태어났기에 좌절이란 감정을 겪고, 사랑을 해보며 다양한 변화를 경험해 보는 것이야. 죽을 만큼 힘든 일이 있어서 방에서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며칠 동안 있으면 어떨 것 같으냐?


제자: 음....... 배가 고플 것 같습니다.


스승: 그렇지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겠지, 그렇게 죽을 것 같은 감정으로 몸을 일으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시간이 지나면, 신기하게도 그 상태를 벗어나 살아갈 힘이 생기곤 하지. 지구는 그런 변화를 경험하기에 적합한 장소란다. 


제자: 그렇다면 지구에서 사는 삶은 제가 하기 나름인가요? 아니면 모두가 정해져 있는 것인가요? 지구에서는 운명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스승: 넌 네 생을 계획해서 태어나는 거란다. 네가 어디서 살 것인지, 어떤 경험을 할 것인지, 어떤 마음으로 살았으면 하는지 등의 다양한 부분을 말이야. 중요한 배움을 위해서 어느 순간에 큰 시련을 계획했을 수도 있고, 귀인과의 만남을 통해 배움을 얻게 했을 수도 있지. 그러기 위해 주변의 여러 영혼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필수란다. 어떤 이들에겐, 네가 방황하고 있으면 길을 알려달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에겐 흔들어 달라고 부탁도 했겠지, 어쩌면 이번 생의 끝까지 함께 해달라고 했을지도.......


제자: 그럼 그런 조력자들의 생은 저를 위한 생인 가요?


스승: 그건 아니란다. 그들의 삶 속에 네가 있는 것이고, 네 삶 속에 그들이 있는 것이지...... 그뿐만 아니라 네가 중간중간에 꿨던 꿈들, 벌어진 일들, 신비한 경험, 나와의 만남 이 모든 것들이 이번 생에 네가 준비한 계획이 아니겠느냐.


제자: 그런데, 그렇게 무조건 계획한 대로 이뤄지면 굳이 태어나서 경험하는 것이 의미 없는 것 아닌가요? 자유의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스승: 계획은 했으나,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단다. 너무 큰 배움을 위해 생을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시련들로 계획했을 때, 그 삶을 견뎌내지 못하고 중도에 생을 마감하는 일도 있는데, 그걸 '자살'이라고 하지. 그럴 때면 그때부터 다시 수정하고 계획해서 생을 살아 보겠지? 그러니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과 배움으로 삶을 계획하고, 그렇게 충분히 생을 살다 보면 너처럼 생을 마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제자: (환희에 찬 표정으로) 스승님! 그러면 제가 이번 생을 마지막으로 다신 안 태어날 수 있는 건가요?!


스승: 난 네가 이번 생이 끝이라곤 안 했단다. 생을 마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했지....... 마지막일지 아닐지는 네가 앞으로 하기 나름 아니겠느냐. 계획대로 될 수 있을지....... 아니면, 그 계획에 마지막이 없었을 수도 있고.....


제자: (심각하게 고심하다 이내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라 생각해서 고민을 포기한다)


제자: 그럼 다음으로, 스승님 세상에 있는 종교 중에 맞는 건 뭐고 틀린 건 뭐예요? 이게 정말 궁금했어요. 전 불교가 가치관에 가장 가깝다 여겼는데......


스승: 맞고 틀린 게 어디 있을까? 엄격하게 말하면 다 틀렸고, 엄밀히 말하면 다 맞는 것이지. 원래 종교란 하나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란다. 예수가 한 말, 부처가 한 말, 신들이 한 말은 전부가 같은 말이지. 다들 옮겨 적으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었고, 또 그걸 이용하려는 간사한 녀석들 때문에 나뉘고 훼손된 것이 아니겠느냐. 신이건 부처건 믿는 마음, 네가 바라는 마음, 그게 종교가 아니겠느냐. 네가 어떻게 하는지가, 바로 네가 믿는 종교의 본질이 되는 것이니, 믿는 너의 마음을 믿어보라고 말하면 그게 맞는 말인 것 같구나. 


제자: 어려운 것 같은데..........


스승: (머쓱하게) 허허......


제자: 스승님 그러면 만약에 제가 해탈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스승: 생과 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지. 


제자: 그러니깐,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데요?


스승: 하나가 되겠지?


제자: 하나요?


스승: 너도 명상을 많이 해봐서 알겠지만, 명상을 통해 깊은 고요 속으로 들어가 보면 결국 느껴지는 것은 '하나'라는 느낌이란다. 가까이는 눈앞에 보이는 풀, 돌멩이들과 하나 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나중에는 주변의 모든 것과,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됨을 느끼며 충만하고 따듯함 속에 있을게다. 그렇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그곳에서 넌 '하나'가 되어 있을 것이다. 시간이 사라진 곳에서, 변화되는 감정 없이, 지금보다 훨씬 충만한 상태로 계속 존재하는 것이지. 그러다 또.......


제자: 그게 좋을까요?


스승: 그건 네가 판단할 일이지? 헌데 뭘 해도 온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지금의 너보단 낫지 않을까 싶구나. 


제자: 어떻게 아셨어요? 전 만족이 안돼요. 어렸을 적부터 연애를 해도 다른 사람이 눈에 보이고, 돈을 벌어도 더 큰걸, 원하던 일을 해도 어느새 또 다른 것을 바라고, 만족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어요. 왜 저는 만족할 수가 없을까요?


스승: 깨달음에 가까이 가기 위한 너의 계획이 아니겠느냐. 삶의 아픔을 느끼면서도 용케 여기까지 와주었구나. 


제자: 저도 이렇게 뵐 수 있을 줄 몰랐어요! 그래서 너무 감사하고, 꿈만 같아요. 눈을 뜨면 꿈일까 너무 무서워요.......


스승: 괜찮다. 다 너의 계획 속에 있는 것 아니겠느냐. 걱정 말아라 ALL IS WELL


제자: 어? 저거 내가 자주 쓰는 주문인데, 이상하게 저 말만 하면 다 잘되더라고요. 


스승: ALL IS WELL 내 마지막 할 말이다. 나중에 또 보자꾸나 (뿌옇게 흩어져 간다) 


제자: 어!!! 어! 스승님 어디 가세요 가지 마세요!!!! 아직 궁금한 게 많아요!!!!!!


스승: 다 계획대로....... 언젠가 느....ㄴ.........


그렇게 꿈에서 깨어났다. 




에필로그


달을 가리키는 손을 글로 쓰고 있다.


내가 쓰는 글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것이 있을법한 방향을 가리키며 때로는 꿈을 꾸기도 하고, 사색을 하기도 하고, 신발을 신고 문을 열어젖혀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가본 곳, 꿈속에서 본 것, 발로 밟아 본 곳, 그 순간에 존재했던 감정과 생각, 또 '진짜'들을 글로 적어보고 있다. 과거에 나 같은 생각과 고민을 하는 사람의 글을 처음 읽어본 순간 '어?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또 있었네? 다음 건 없나? 이다음건?' 하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그런 기쁨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하며 또 꺼내본다. 







세계관의 출처: 본인의 경험과 삶, 가치관, 꿈, 모리츠 준코, 무탄트 메시지, 요가난다 자서전, 불교, 티베트 문화, 힌두교, 류시화, 공자, 노자, 동양철학, 서양철학, 호주 원주민, 아메리카 원주민 등등


사진출처:http://www.dailysisa.com/news/userArticlePhoto.html



        

이전 04화 목적지에 도착해야만 좋은 여행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