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6
그렇게 질투와 의심과 불안과 선망과 자랑스러움과 성취감 등 여러 가지로 복합적인 감정을 맛보면서 공연을 해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전날 나는 이곳 호스텔에 머무는 아마추어 화가의 소개로 오픈 마이크 공연을 할 수 있는 바에 다녀왔는데, 워낙 중심가에서 먼 곳이라 거의 두 시간 반 넘게 고생고생하면서 호스텔로 돌아왔다. 그런 데다가 자기 직전에 일기라도 쓰려고 3층으로 올라갔더니 한 방에 머무르는 싱가포르 여자애가 울고 있어서 사정을 듣고 위로해주다가 새벽 6시에 잠들었다. 그렇다 보니 일어난 건 오후 세 시.
그런데 3층에서 누군가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목소리는 호스텔 관리자 니노,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 당시 니노와 사귀고 있던(모두에게는 비밀로 하다가 나중에 밝혀짐)아마추어 화가 마리아가 목소리를 높여 싸우고 있었다. 나는 둘을 중재할 생각으로 부스스한 머리로 천천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가자마자 불똥이 내게로 튀었다.
“너 로빈 숨겨주고 있지?”
뜬금 없는 니노의 추궁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소리야?”
“니노, 제발 그런 피해 망상을 버리라고.”
마리아가 나무랐다. 싸움이 길었는지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감정이 격해 보였다. 니노는 나에게 맥락이 없는 이상한 소리를 좀 하고, 연인에게도 험한 말을 한 뒤 호스텔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무슨 가정폭력의 현장을 본 것 같은 느낌으로 마리아 옆에 앉았다. 마리아가 상황 설명을 해줬다.
내가 로빈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삼사 일 전이었다. 그는 공연이 끝난 뒤 갈 데가 있다면서 어딘가로 사라졌고, 나는 호스텔에서 만난 네덜란드 여자애를 만나 놀았다. 그런데 로빈이 그날 밤부터 호스텔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니노는 주관성이 강한 사람이라서 손님에게 차별적인 정책을 시행했는데, 자신이 선호하는 손님은 숙박비를 후불로 받는 경향이 있었다. (후불로 하지 말고 안 받으면 안 되나?) 나도 이때 약 이십 만 원 정도의 숙박비를 빚지고(?)있었다. 준다고 해도 니노는 ‘됐어, 나중에 줘. 우리 사이에!’라면서 거절했다. 로빈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돌아오지도 않고 연락도 되지 않으니 니노는 그가 숙박비를 떼어먹고 도망쳤다고 단정한 것이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로빈의 짐은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로빈은 버스커다. 이 나라를 뜨지 않는 이상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내는 일은 너무도 쉽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약간의 팬층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어디서 공연한다더라 하는 정보가 돌 때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SNS를 활용해서 페이스북에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버스킹 한다는 정보를 공유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그런 식의 소셜미디어 활용 및 문명의 이기에 무심했다.
“전화 해봤어?”
“니노가 전화번호를 받아두지 않았대.”
나는 입술을 삐쭉였다. 일명 <로빈 효과>다. 그가 멋드러지게 기타 곡을 한두 곡 뽑고 나면, 대부분의 남자들이 하트가 꿀떨어지는 듯한 눈이 되어서는 술이나 담배, 음식을 주거나 뭔가 그에게 이권을 제공하는 등 자기가 가진 최대한의 대접을 하려 들었다. 아무래도 저 정도 실력의 기타리스트는 그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모양인데, 여성들 보다는 남성들이 그런 증상이 더 심했다. 여자들은 ‘와, 진짜 잘 치네’라고 얘기한 다음 다른 주제로 넘어갔지만, 남자들은 유명 영화배우나 축구선수가 등장한 것처럼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니노 역시 그랬다. 로빈이 온 날 3층에서 ‘모든 술이 무료!’라면서 파티를 열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고 나서는 호스텔비를 주겠다는 그에게 나중에 주면 된다고 신경쓰지 말라고 했고, 그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편의를 봐 주고 침대 시트를 무상으로 갈아주는 등 온갖 방식으로 그의 관심을 끌려 들었다. 그래서 호스텔의 한 멤버가 ‘혹시…. 니노…그쪽이었어?’라면서 놀렸다.
“그럼 연락이 안 된다는 건 무슨 얘기야?”
“페이스북 디엠을 보냈다는 거지.”
“페이스북 디엠은 며칠 확인 못할 수도 있잖아? 잠깐 어디 여행 갔나보지.”
장기 투숙객들은 며칠 씩 다른 데서 놀다 오는 경우가 흔하다. 짐만 맡기고 아예 다른 지역에 있다가 오는 경우에는 그 날짜만큼 숙박비를 빼 주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호스텔마다 정책이 다르다. 하지만 리버티 스퀘어처럼 중심 중의 중심에 있는 거리에서는 그 같은 예외는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 호스텔은 며칠 비우더라도 그만큼의 비용을 내야 했다.
“그리고 짐도 남아있다며? 기타 있어? 기타 남아있으면 도망친 건 아니야.”
“그게… 옷이나 캐리어는 남아있는데 기타가 없대.”
흐음. 나는 팔짱을 꼈다. 기타 없이 어딜 돌아다니는 사람이 아니니까 가지고 갔을 수도 있다.
“내 생각엔, 물론 좀 의심스러운 상황일 수는 있겠지만 좀 더 기다려 봐. 페이스북은 확인 못할 수도 있고, 기타가 없는 건 버스킹하려고 갖고 가서 그럴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숙박비 그동안 한 번도 안 받았어?”
“한 번도 안 받았대.”
“그러면 금액이 좀 되겠다. 그래도 그건 도망칠 만큼의 메리트가 있는 금액은 아니잖아. 몇 백 만원도 아니고. 게다가 로빈 본인은 주겠다고 했는데 니노가 일부러 안 받은 거잖아. 그래놓고 딴 소리는.”
“나도 너랑 비슷하게 생각해서 아까 니노를 말리고 있었어.”
“아니 근데 아까 내가 로빈을 숨겨준다는 건 뭐야?”
“너도 니노 알잖아. 가끔 피해망상이 발동해서 사람들 공격하는 거.”
“도대체 쟤 왜 저러는 거야? 저번에도 그러더니.”
니노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굴다가도, 그 친절이 돌아오지 않는 것 같으면 상대를 악당으로 만들며 울분을 터뜨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몇 주 전에도 톰이라는 영국인 작가가 여자친구과 함께 이곳을 찾아왔는데, 며칠 간 그를 추켜세워주고 비위도 맞춰주더니 사소한 오해 하나로 그가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찾아왔다면서 소설을 썼다. 오해를 풀기 위해 조금 달래주려던 톰은 이윽고 그가 만들어내는 근거 없는 소설에 질린 얼굴을 하더니, 한바탕 니노와 싸우고 호스텔을 뛰쳐 나가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문제는 니노가 본인이 증폭해 낸 오해를 아직까지도 진실로 믿고 있다는 점이었다.
“뭐, 숨겨주니 뭐니 날 비난한 건 억울하긴 하지만, 일단 나도 걱정되니까 로빈에게 연락해 볼 게.”
버스킹하기 위해서 장소나 시간 등을 맞춰야 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내 전화도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