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푸너1
니노의 행실에 기분이 상한 나는 리버티 스퀘어에서 파푸너를 만나기로 했다.
파푸너는 내가 기오르기를 만난 지 얼마 안 돼 알고 지내게 된 또 하나의 조지안 버스커다. 그는 이십대 초반 정도로 나보다 훨씬 젊었지만, 인종이 바뀌면 상대의 나이를 못 알아보는 특성이 있다보니 내가 XX살이라는 걸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동양인이 동안이라지만…. 너, 내가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놀리는 거지? 네가 그 나이일 리가 없잖아. 패스포트라도 보여주면 믿을 게. 라고 그는 말했다. 여권까지 가져다 줄 부지런함은 없었으므로,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너 믿고 싶은 대로 믿으라고 말했고, 그는 내가 나이가 젊은 데 있어보이려고(?) 나이가 많다고 거짓말을 한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는 원래 축구선수였다. 실력도 괜찮았던 모양인데 경기 중 무릎부상이 제대로 완치되지 않아 선수생활을 접었다. 파푸너는 운동하는 애들이 으레 그렇듯 지나칠 정도로 긍정적이고 가볍고 어딘가 사람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보는 듯한 냉정함이 있었다. 그는 축구하던 시절에 대해서 회상하는 걸 어려워하지는 않았지만 그 답지 않게 아주 약간 얼굴이 어두워졌었다. “축구 이외에 어떤 걸 하겠다는 생각도 없었는데 더 이상 축구를 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우울함의 극치였지. 성적도 좋았고 장래도 촉망받는 상태였거든. 하지만 난 내 그런 모습 때문에 더 화가 났어. 집에 박혀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인생 낭비니까. 그래서 시작한 게 음악이야.
음악을 시작한 지는, 버스킹말고 집에서 연습을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생각하면 일 년이 지났어. 그리고 몇 개월연습하지 않고 버스킹까지 하게 됐으니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지.”
그는 나와 함께 마트를 향하다가 멈춰서더니 발차기를 몇 번 했다. 나는 그 나이대의 남자애들이 그렇듯 의미 없는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네 노래 실력이 그 모양인 거군.”
내 말에 파푸너는 화난 척을 해 보였다.
파푸너는 확실히 노래 실력은 그다지 자랑할 만한 것은 못 되었다. 조지아어를 모르는 내가 봐도 가사에 강약이 없었다. 음악의 기본은 감정을 추스르고 노래에 녹아내고, 그 결과물에 강약이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그는 그걸 아직 몰랐다. 하지만 그의 재능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그가 바람잡이를 하면 수입이 달라졌다. 또한 장소선정에도 뛰어났다. 버스킹으로 두세 곡 불러보고 는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그는 과감히 자리를 옮겼다. 그는 그걸 ‘감’이라고 했다. 축구를 하던 감각이랑 닮았다고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축구는 상황파악이 필요한 스포츠야. 내 편은 어디 있고 적은 어디 있는지, 다들 지쳤는지, 내가 쟤한테 공을 넘기면 쟤게 이 공을 골문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상황인지, 이 방향과 저 방향 중 어느 쪽이 골을 넣을 확률이 높은지.”
그리고 이러한 상황판단이 버스킹에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노래하는 곡은 비슷한 데 결과가 시원치 않다는 건, 내가 모르는 어떤 방해 요소가 근처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거나 이곳이 좋은 스팟이 아니거나 하는 외부 환경적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였다. 그가 ‘느낌이 이상하니까 옮기자’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보면, 우리가 연주하던 곳과 멀지 않은 곳에 웬 5인 이상의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거나, 이벤트가 있거나, 버스킹을 시작할 때는 괜찮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유동인구가 급감했거나 하는 등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루는 일리야와 함께 팀을 짜서 하는데 유동인구가 평소의 1/10에 불과했다. 파푸너는 ‘이건 많이 이상해. 나가 보자!’라면서 모두를 부추겼다. 역시나, 이 날은 보도 바로 앞에서 선거 유세가 벌어지고 있었고, 300명 정도의 사람들과 취재진까지 있어 통행이 어려운 수준이었다.
이처럼 그의 감에는 믿을 만한 구석이 있었기에 그와 버스킹하는 것을 그만두기가 힘들었다.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 꽤나 친해져서, 버스킹 할 때가 아니라 그냥 밥먹거나 심심할 때도 가끔 불러내게 되었다.
이 당시에는 파푸너가 꽤나 날티 나게 놀며 지내던 때였다. 나중에 제대로 임자 만나서 실연으로 몸서리를 치게 되지만, 이때까지는 나에게 소개하는 여자가 매번 바뀌었다. 이 날도 그는 나를 불러내서 새로 사귀게 된 금발의 녹색 눈동자의 아가씨를 소개해줬다. 최근 트빌리시의 돌아가는 상황이라던가 경찰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정책을 바꾸었다던가 하는 정보를 습득하고 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떠 있는 건 로빈의 이름이었다.
“뭐야, 누구야?”
나는 오른쪽 눈썹을 한껏 들어올리고, 한숨을 내쉰 다음 전화를 받았다. 내가 전화를 걸긴 했지만 반가운 용건으로 전화를 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화는 받기도 전에 끊어졌고, 다시 걸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누구 전화야?”
너 혹시 이렇게 저렇게 생기고 어디에서 주로 연주하는 기타리스트 아냐고 하니까 파푸너가 이마에 주름을 몇 개 잡더니, 애매하다, 잘 모르겠다고 했다. 요즘 들어 버스커가 워낙 많다 보니 외모나 선곡만으로 누구라고 추측하기는 힘든 세상이 되었다.
파푸너와 헤어져서 리버티 스퀘어 쪽에서 다른 버스커들 연주를 구경하고 있는데 호스텔의 다른 인도 여자애에게서 문자가 왔다. 내용은 상당히 절박한 것으로, 한 마디로 축약하면 니노가 미쳤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호스텔 사람들을 상대로 뭘 하고 있는 거냐 싶어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호스텔로 돌아갔다. 그리고 인도 여자애가 표현한 대로 니노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는 내일이라도 당장 로빈을 경찰서에 가서 고소한다면서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자 낮에 말했던 피해망상이 그대로 유효함을 증명해 보였다. 즉, 로빈이 그 얄량한 숙박비를 내지 않기 위해 잠적했으며 로빈과 버스킹도 다녔던 그와 비교적 친한 나는 그의 사기 행각을 도와주고 있으니 쌍으로 고소하겠다는 거였다. 아이고, 두통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고, 근거조차 없는 혼자만의 소설이잖아.
나는 이 호스텔의 건축은 맘에 들었지만, 마약 빨고 만든 듯한 총체적 난국의 설정인 프랑스 영화에서 그대로 빠져나온 듯한 배가 나오고 키가 작고 어딘가 군인같은 답답함을 풍기는 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프랑스인에게서 더 이상 ‘관리’를 받으면서 살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새로운 집을 얻어서 나가자. 그건 그렇고, 이렇게 오해하게 만든 로빈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로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