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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대리 Oct 05. 2023

회사를 가고 싶게 만드는 꾸미기 스킬

데스크테리어가 필요한 이유

내 취향에 맞는 데스크테리어를 하면 사무실이 예뻐 보인다.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데스크테리어를 완성한 다음날엔 빨리 출근이 하고 싶더라. 세상에나 사무실 자리도 찍으면서 배시시 웃는다. 방에 있는 책상을 꾸미고 청소한 것만큼이나 기분이 좋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은 노동 시간이 길고 생산성은 낮다. 온갖 뉴스와 외신이 노동 시간을 줄이고 휴가를 늘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어찌어찌 살아가는데 도가 튼 한국인들은 데스크테리어에 진심인 태도를 보이는데, 이런 기사가 난지도 벌써 5년이 됐다. 데스크테리어에 환상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속출한 지 꽤 됐단 얘기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데스크테리어 만 검색해도 정보량이 엄청나고, 오늘의집과 같은 플랫폼에는 데스크테리어 카테고리로 관련 용품을 판매한다. 왜 데스크테리어에 열광할까?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다. 제2의 생활공간인 셈. 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무실은 업무 공간으로만 사용된다. 집에서처럼 늘어져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다. 몸을 바로 세우고 마감 업무를 쳐내기 바쁘다. 에너지를 끌어올려 집중 모드로 만들 필요가 있다. 돈이 좀 들긴 하지만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데스크테리어다. 내가 일하는데 최적화된 환경을 만들기도 하고 좋아하는 것들로 자리를 채우기도 한다. 업무에 도움이 된다. 삭막한 것보단 귀여운 게 에너지를 주니까(귀여운 건 최고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던 5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취미를 위해 내 방은 열심히 꾸며도 회사에는 단 한 푼도 투자할 수가 없었다. 그 흔한 가습기, 칫솔 살균기, 방석도 두지 않았다. 입사한 그대로 퇴사까지 그 형태를 유지했다. 생각해 보면 회사 자체에, 회사원이라는 나의 직업에 애정을 갖지 못했다.


고등학교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 졸업하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친구들 사이에 섞여 우연히 밥을 먹게 됐는데, 7년 동안 같은 회사만 다녔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나는 회사에서 기분 안 좋은 시즌일 때 화분부터 갖다 놔. 보고 있으면 귀엽고 사랑스럽다니까?“ 머리에 펀치를 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키보드 바꾸는 것까지는 이해를 하는데 화분을 갖다 놓는다고? 회사에 흔적도 남기고 싶어 하지 않는 나와 달리 그 친구는 회사에 자신의 흔적을 마구 남겼다. 조그마한 자리도 자기화하는 것이다. 당시 씩씩 대며 퇴사를 하고 백수로 지내던 나는 그때 뭔가 깨달았다. 회사를 잘 다니기 위해 노력한 적이 없었다는 걸.




장비 세팅하기

이직을 하고 제일 먼저 키보드와 마우스를 바꿨다. 하루 중 가장 많이 만지는 장비가 아니던가. 광화문 교보문고와 용산 전자상가에 가서 타건 테스트도 해봤다. 숫자 키를 자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콤팩트한 텐키리스 키보드를 선호하더라. 노트북에서 글을 쓰던 버릇이 있어 그런지 기계식 키보드보다 납작한 노트북 자판이 좋다. 기계식은 손목이 불편한 느낌. 맥북을 사용하기 때문에 로지텍 MX Keys Mini for Mac로 골랐다. 이왕 사는 거 진짜 갖고 싶은 걸로 사자는 생각에 마우스까지 야무지게 분홍색으로 맞췄다.


“여기 누구 자리야?”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꾸민 보람이 있구만. 분홍빛 키보드와 마우스 세트와 어울리는 잔망루피 피규어도 한 마리 갖다 놨다.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자료 정리와 카피라이팅이 주 업무이기 때문에 키보드를 많이 두드린다. 회사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3만 원짜리 키보드+마우스 세트에 비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 피아노를 치는 것 같은 느낌(어린이 바이엘 3권까지밖에 안 배웠지만). 돈 쓴 보람이 있다. 같은 카피를 써도 더 맛있게 써지는 느낌이다. 가장 좋은 건, 출근했을 때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분홍빛 자리가 외친다. 웰컴.


힐링존 만들기

가벽이나 패브릭 천을 활용해서 공간분리를 하는 인테리어가 한창 유행이다. 공간분리를 꼭 집에만 하란 법은 없다. 책상에서도 얼마든지 공간분리가 가능하다. 마우스 패드, 모니터 받침대, 노트북 거치대 등으로 최적의 업무 환경을 만들면서도 남는 공간에 나만의 힐링 존을 만들 수 있다. 나 말고도 살아있는 생명체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화분 두 개를 데려왔다. 보스턴 고사리와 떡갈고무나무. 애칭은 보고와 떡고. 2~3일에 한 번씩 물을 주고 매일매일 예쁘다 예쁘다 해주니 쑥쑥 자란다. 키운 지 두 달 정도 지났는데, 떡고(떡갈고무나무)는 벌써 잎사귀가 5개나 자랐다. 애들 키우는 재미가 이런 건가. 사실 보고(보스턴고사리)는 좀 병약하다. 한 놈이 말썽 안 부리면 다른 한 놈이 부린다던데 이건가.


뒷자리 디자이너는 매달 달력을 찢어 마스킹테이프로 벽에 붙인다. 달력과 어울리는 엽서나 포스터를 활용해서 나름의 인테리어를 하는데, 우리 팀 공식 포토존이다. 옆자리 팀장님은 꽃무늬 패브릭 위에 미니언즈 피규어를 몇 마리 올려뒀다. 모니터와 모니터 사이에 남는 공간을 알차게 활용한 힐링존이다. 8시간 내내 집중하는 사람이 있을까. 가끔 님도 보고 뽕도 따면서 힐링도 하는 거지. 하루에 한 번쯤 좋아하는 걸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아, 내가 아직 살아있구나! 업무에 치여 죽지 않았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나’ 꾸미기

처음에는 꾸민 채로 입사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추레해진다. 추리닝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출근한 적도 많다. 귀찮으면 옷을 다리지도 않고 구겨진 채로 입고 간다. 매일 머리 감고 샤워하면 뭘 하는가. 더러워 보이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 치장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말끔하게끔만 하고 다니자는 의미다.


회사를 다니면서 굳이 꾸밀 필요가 있을까? 있다. 매일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기 때문이다. 보통 회사 화장실 세면대에는 큰 거울이 있다. 추레하게 하고 다닐 때에는 매일 그 거울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아 오늘 진짜 못생겼네.’ 하루에 최소 5~6번은 화장실에 가는데, 갈 적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어떨까. 일주일이면 20번이고, 한 달이면 80번이다. 내가 나에게 못생겼다고 말하는 횟수다. 반대로 ‘아 오늘 예쁘네.’라는 생각을 하루에 다섯 번씩 해준다고 상상해 보자.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허리도 꼿꼿하게 펴게 되고, 표정도 자신 있어진다. 화장은 못해도 깔끔해 보이려고 한다. 일 년에 최소 3~4번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고, 안경도 아침 점심 저녁으로 닦는다. 크록스 보단 운동화를 신으려고 노력하고. 별 거 없지만 효과는 좋다.




데스크테리어까지는 아니더라도 본인의 자리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건 중요하다. 방이 내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듯, 회사 자리에서도 그 사람이 업무를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물건들, 대충 끼니를 때우다 흘린 샐러드 소스 자국, 하얗게 쓸린 자국이 많은 마우스 장패드, 여기저기 지문 자국이 찍힌 모니터. 정리를 하지 않아 게을러 보이는 게 아니라 방치한 것처럼 보인다.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겨우겨우 다니는 티가 난다. 내가 나를 신경 쓰지 않는데 어떤 팀원들이 나를 존중하겠는가. 누군가를 존중하고 나 또한 존중받는 회사 생활을 하기 위해서라도 깨끗한 자리 정리는 필요하다. 내가 나의 자리를 대하는 태도가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다. 내가 나를 대접해야 누군가도 나를 대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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