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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대리 Oct 09. 2023

일은 아니지만 일에 필요한 루틴

8시간 내내 일할 수는 없잖아요

대한민국 사무직 노동자는 하루 평균 8시간을 주로 사무실에서 보낸다. 회사에서 숨을 쉬는 나만의 루틴을 찾아야 사무실에 갇히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당당하게 입사한 회사에서 돈을 받고 일한다. 입사 전에는 입사가 목표였지만 입사 후에는 퇴근이 목표가 된다.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만을 바란다. 돈을 받지만 사무실에 '갇혀'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우고 원하는 일을 하세요! 유튜브를 시작하세요! 여행을 떠나세요! 할 수 없다. 당장의 먹고사니즘과 이후에 올 현타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일단 출퇴근을 하면서 여유를 찾는 건 어떨까. 예컨대 회사에서 잘 쉬는 방법 같은.


사람이 쉬지 않고 8~9시간을 일하면 죽을 수도 있다. 당장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더라도 무리하면 몸 어딘가에 나쁜 덩어리가 쌓인다. '과로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일하는 틈틈이 휴식을 취해야 하는 이유다. 리프레쉬는 필요하다. 전속력으로 달리다 쓰러질 것인가, 중간에 숨을 좀 고르고 다시 뛰겠는가. 휴식이라는 비공식적이고도 암묵적인 룰이 잘 지켜지려면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회사는 직원이 쉬는 것을 아니꼽게 보지 말아야 하고, 직원은 회삿돈으로 농땡이를 피울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 양심과 예의를 지키면 파라다이스까진 아니어도 윈윈 할 것이다. 좀비처럼 출근하는 직원이 좋은가? 업무 시간을 1초 단위로 계산해서 보고하라는 회사가 좋은가?


그렇다면 사무실에서 어떻게 쉬어야 할까? 5분이라도 전자기기와 멀어지는 휴식을 추천한다. 콘텐츠 기획자든, 개발자든, 디자이너든, 영업 관리자든 직군과 상관없이 우리는 컴퓨터를 붙들고 있다. 컴퓨터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지하철에서도 스마트폰을 만지고, 집에서도 TV를 보는 현대인들의 눈은 잘 때 빼고 전자파에 노출돼 있다. 육체와 정신은 연결되어 있다. 전자파로부터 몸의 피로를 덜면 복잡한 머릿속 생각들도 자연스레 덜어진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어떻게 하면 숨구멍을 만들 수 있을까? 회사의 공간과 문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면실 혹은 숙직실이라 불리는 침대 공간이 있는 회사에서는 낮잠을 잔다. 15~20분만 자도 머리가 맑아진다. 2시간 동안 졸면서 처리했던 일이 30분 만에 끝나기도 한다. 휴게실이 마땅치 않은 회사에서는 밖으로 나가 동네 한 바퀴를 돈다. 바깥공기를 마시면 콧속이 시원해진다. 막 가을이 된 요즘 같은 날씨엔 더 상쾌할 것이다. 건물에 카페가 있다면 회사에 널린 종이 잡지를 들고 잠시 들렀다 오는 것도 좋다. 따뜻한 커피나 티 한 잔 하면서 생각을 비워내는 것이다. 보통 회사에서 사람과 일에만 적응할 생각만 하는데, 어떻게 쉴 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 한다. 1분도 쉬지 않고 일만 하면 번아웃이 빨리 오고, 잦은 번아웃은 퇴사 시기를 앞당긴다.




모닝커피와 설거지

출근 직후에는 모닝커피를 내리고, 퇴근 직전에는 설거지를 한다. 일은 아니지만 일에 필요한 루틴이랄까. 회사 커피 머신으로 모닝커피를 내리는 행위는 "자 오늘도 일을 시작해 볼까?"의 뜻이다. 이직할 때마다 그 회사가 어떤 커피 머신을 갖고 있는지, 어떤 비율로 타야 맛있는지를 꼼꼼하게 체크한다. 지금 회사의 원두는 테라로사이고, 물과 얼음을 가득 채운 텀블러에 리스트레토(고농축 에스프레소) 2샷을 넣으면 환상이다. 열두 시 점심시간까지 나의 정신을 책임지는 녀석이다.


내일이 기대되는 퇴근 준비가 있다. 설거지다. 모닝커피는 깨끗한 텀블러에 마셔야 제맛이다. 쿠팡에서 주문한 빨대 솔까지 야무지게 챙겨 꼼꼼하게 설거지를 한다. 올대리의 퇴근 시간은 7시. 6시 50분엔 텀블러와 솔을 들고 탕비실로 간다. 구석구석 텀블러를 닦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물론 오늘 좀 나댔다 싶은 날도 있다. 반성하고 내일부터 덜 나대자고 다짐한다.


간식 공동구매

달에 한 번씩 간식을 대용량으로 산다. 기본적으로 회사에서 주는 개인 서랍을 사무용품이나 생활용품이 아닌 간식으로 채우는 편이다.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 끼를 먹지만 점심과 저녁 사이는 6~7시간 정도로 텀이 제법 길다. 간식을 먹어주지 않으면 퇴근길 지하철이 고통스럽고 저녁을 우악스럽게 먹게 된다. 그 핑계로 간식 곳간을 나의 취향에 맞게 가득 채워 넣었다.


배낭에 간식을 한가득 짊어지고 출근해 곳간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 달도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나 할까. 시즌별로 당기는 간식이 다른데, 최근에는 곤약쫀드기에 빠져 옥수수 맛과 인절미 맛을 주문했다. 서리태와 누룽지로 채워질 때도 있고 하리보 젤리로 가득해 서랍을 열 때마다 부스럭 소리가 난 적도 있다. 스테디셀러로는 천하장사 소시지. 비슷한 키스틱도 상관없다. 소시지가 요물이다. 팀 사람들과 공동구매를 해서 나눠먹기 딱이다. 배달 온 소시지를 꽃다발처럼 들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광경을 보라. 이 모든 행위 자체가 달콤한 휴식이다.


2회의 양치질

점심과 저녁 사이에 꼭 간식을 먹기 때문에 회사에서 양치질을 2번 한다. 집에서 하는 것보다 더 정성스럽게. 일하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다. 진짜 아니다. 일에 찌든 나를 잠시나마 상쾌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앞니, 어금니, 덧니, 사랑니까지 꼼꼼하게 닦는다. 거울을 보고 이를 닦고 있는 나를 보며 멍 때린다. 양치멍이라고 들어봤나.


양치질을 좀 색다르게 하는 방법도 있다. 올대리의 사무실은 건물 5층에 위치해 있는데, 꼭 5층 화장실만 쓰라는 법 있나. 가끔은 지하 1층에 가서도 하고, 2층에 가서도 한다. 엘리베이터가 아닌 비상구 계단을 통해 몸을 움직인다. 입안도 상쾌하고 찌뿌둥한 몸의 뼈들도 제 위치를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같은 팀 디자이너는 양치질을 하면서 그렇게 스트레칭을 하더라. 온몸에서 으드득으드득. 같이 양치질을 하다가 그의 발길질에 맞을 뻔했다.




입사가 목표였던 5년 전과는 달리 언젠가부터 퇴사가 목표가 되는 삶을 살더라. 퇴근 시간만 기다렸고, 주말이 오길 기다렸다. 세월이 빨리 가는 건 싫으면서 시간한테 빨리 가라고 등을 떠밀다니. 앞뒤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노동 시간이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고, 두렵지 않은 월요일이 있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퇴사가 목표인 삶은 그만두고 싶었다. 탈 없는 회사생활은 없겠지만 어쩌면 출퇴근이 조금은 재밌어질 수도 있지 않나. 되게 별 거 아닌 방법들이 기분 좋은 루틴이 되었다. 루틴이 됐다는 건 그 습관에서 기쁨을 느꼈고 스스로 이득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식 밖의 경제학>이란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어떤 행동이 반복되어 나타날 때는 그것을 꼼꼼히 따져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앞으로 내가 선택할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퇴사 노래를 부르고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습관화되어 있다면, 더 멋진 회사에 가서도 그런 행동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회사에서 좀 더 긍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방법들을 찾는다면 어떤 회사에 가서도 긍정 루틴을 찾을 것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인간은 환경에 강한 영향을 받는 동물이다. 회사가 바뀌든, 시즌이 바뀌든 내가 쉼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을 발견하고 실천한다면 어떤 상황이든 오아시스를 찾을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는가. 사막에서의 물 한 모금은 미래를 무한대로 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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