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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대리 Oct 12. 2023

번아웃을 물리치는 지원군의 힘

든든한 가족과 친구들

번아웃의 시기를 늦추거나 강도를 약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인생의 우선순위를 점검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만사를 제쳐두고 업무에 모든 시간을 올인할 때 번아웃은 고개를 내민다. 1위는 나(=나의 건강), 2위는 가족/친구, 3위가 일(=돈)일 것을 추천한다. 구글의 김은주 수석 디자이너가 쓴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란 책에서도 일보다는 나의 건강이, 일보다는 가족과 친구들이 더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 살기 위해서다. 되도록이면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부양하고, 가족을 돌보고 주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수입이 없을 때 친구들을 만나기 어렵다. 입에 풀칠도 못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가족과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다. 불어나는 빚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도 많다. 돈은 없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서 주변 관계들을 앗아가고 마침내는 나를 잃게 만들 수 있다.


돈은 어디까지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도구이지 삶의 목적 그 자체는 아니다. 수천억 대 자산을 갖고 싶은 사람은 그 액수만을 갖고 싶은 게 아니다. 그 돈으로 할 수 있고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상상한다.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돈을 잔뜩 벌어 혼자서만 살고 싶다고 하지 않는다. 아직 취업을 해본 적 없는 철부지 동생도 ”돈 많이 벌면 컴퓨터 하나 사고, 엄마 안마의자 사줄게.“라고 한다. 돈이 없는 것보다 두려운 게 사회적 고립이다. 돈이 없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텅 빈 통장이 무서운 건 통장에 찍힌 마이너스 금액 자체가 아니다. 모든 인연을 끊고 1평 남짓한 공간에서 겨우 몸을 뉘이고 흐느끼는 나의 모습이 또렷하게 상상될 때다.


돈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사람 나고 돈이 났지 돈이 나고 사람이 난 게 아니다. 작고 귀여운 월급을 벌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 가족에게서 안정감을 느끼고 친구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는 사람들. 거기서 받은 에너지로 나가서 일을 한다. 그 에너지가 있는 사람들은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방어막이 생긴다. 반면 떼돈을 벌어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 회사에서 인정받아 휴일까지 반납하며 밤낮으로 일하는 사람들. 일이 바빠서 부모님을, 어린아이를, 아내와 남편을 보지 못하기 일쑤다. 친구들과는 언제 연락한 지도 모르겠다.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올해만 지나가면.. 투자까지만 받으면.. 하다가 몇 년이 흘러간다. 후폭풍에 휩쓸려 번아웃이 크게 왔는데 주변에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


옛말에 틀린 말이 없다는 말엔 동의하지 않지만, 가정이 화목해야 일도 잘 풀린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엔 1000% 동의한다. 바쁘다고 미룰 게 따로 있지 나와 가족과 친구를 내팽개쳐서야 되겠는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포근한 곳은 그들의 품이다. 총에 맞고 화살에 찔려도 안전한 장소에서 정성스레 치료를 받으면 살아난다. 그곳에서 받은 긍정적인 에너지로 우리는 바깥에서 또 살아남는다. “나는 언제든 충전될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갖고 일을 대하면 한층 여유로워질 것이다. 그 여유와 안정감은 번아웃에 대적할 만한 힘을 갖고 있다.




자기 전 10분, 나만의 시간 갖기

하루를 쭉 돌아보면 혼자만의 시간이 참 없었구나, 싶다. 미혼인 올대리도 시간에 허덕이는데 아이까지 있다면 10분 시간 내기도 정말 힘들 것이다. 5분, 아니 3분이라도 좋으니 잠깐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자기 전에 나와 대화를 해보자. 오늘 어떤 일이 있었고, 기분이 좋았다면 왜 인지, 뭐 때문에 속상했는지 등을 찬찬히 생각한다. 더 나아가 감사했던 일 3가지를 떠올린다. 마무리로 <본질육아>의 저자인 지나영 교수님이 추천한 자기 암시를 하면 끝.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


회사 근처 모텔에서 잘만큼 야근에 절어있던 날이 있었다. 고작 2주였는데 몇 년을 고수해 온 생활패턴이 다 망가졌다. 집에 들어가면 가족들에게 씩씩대기 일쑤고, 친구들에게는 못 만날 것 같다는 카톡을 엄청 보냈다. 더 심각한 건 분노와 우울과 무기력에 빠진 나 자신이었다. 누군가 지나가다 실수로 툭 치기만 해도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왔다. 주말에는 잠만 자고 해야 할 일을 아무것도 못했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중 <곽정은의 사생활>이란 유튜브를 봤다. 감사일기까진 아니더라도 감사 생각이라도 하면 기분이 나아진다는 메시지였다. 감사일기의 효능은 알지만 펜을 들 힘조차 없던 내게 딱 맞는 조언이었다.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사 생각을 할 정도로 효과가 좋다. 스스로를 응원하고 인정해 주니 잠도 잘 온다.


가족들과 밥 먹기

한국인은 밥심이다. 밥은 생명 연장의 가장 효과적인 도구이기도 하지만 정서적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오죽하면 정이라고 하겠는가. 가족들과 이러쿵저러쿵 떠들면서 밥을 먹으면 온기가 느껴진다. 반찬이 맛없어도 하하 호호, 물을 쏟아도 푸히히한다. 혼자 있었으면 현타가 왔을 일인데 함께 있으니 재밌기만 하다. 이런 온기를 느끼고 싶을 때 가족들과 밥을 먹으면서 어리광도 부리고 사랑도 주고받으면 어떨까.


가족과 함께 사는 올대리는 아침이라도 꼭 같이 먹으려고 한다. 각자의 직장과 출퇴근 거리가 다르기 때문에 저녁 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 각자 차린 아침 식사도 다르다. 올대리는 그릭요거트나 과일, 구황작물을 선호하고 엄마는 무조건 밥이다. 열무김치 볶은 거에 멸치와 콩자반이 올려진 밥 한 그릇. 나누는 대화도 시답잖다. “오늘 패션 죽인다.”부터 “커서 뭐 될 거냐?”까지 가지각색이다. 가족과는 억지로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아도 돼서 부담이 없다. 일이 많거나 힘든 시기에는 서로의 취향에 맞는 밥을 차려주기도 하고 커피도 내려준다. “오늘도 힘내. 주말에 맛있는 거 해줄 테니까.”라는 말과 함께.


친구와 대화하기

깊은 속얘기까지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주변에 1~2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란 말이 있다. 돈은 수백억쯤 벌어야 성공했다고 인정해 주는데, 돈에 비하면 아주 후한 기준이다. 그만큼 인생을 나누는 사람 찾기가 어렵단 뜻이다. 돈을 버는 것보다 어렵다. 취직이 쉽나? 찐친 만들기가 쉽나? 당연히 전자다.


가족의 역할과 친구나 애인의 역할은 다르다. 가족이나 애인에게 할 수 없는 아주 복잡 미묘한 이야기들이 있다. 가족과의 관계, 결혼관, 스스로에 대한 문제점 등 친구들과 깊게 한 판 얘기를 해야 속이 시원한 느낌이 있다. 엄마에게 가서 “난 왜 살까? 얼굴도 못생겼고 직업도 변변찮고 나이도 먹을 대로 먹었는데.”를 할 순 없지 않나. 친구들과 이런 주제로 한참을 떠들다 보면 진지하다가 울다가 웃다가 난리를 치는데, 놀랍게도 해결책이 나올 때가 있다. 예쁘장한 얼굴도 아니고(올대리의 엄마가 마니아층이 있을 거라고 기다리라고 한 외모의 소유자다), 스타트업에 다니는 회사원이면서 글쓰기를 멈춘 작가지망생에, 결혼 생각 없는 30대 여자인 내가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벌써 11화를 쓰고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공모전에 낼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다. 꿈을 위해서라면 인간관계쯤은 포기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하더라. 그런 와중에도 난 가족과 친구들과 시간 보내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당시에는 내가 이상한 건가 싶었다. 꿈은 꿈이고 관계는 관계지 않나? 관계가 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도대체 왜 포기를 해야 하는 거지? 포기를 안 해서 당선도 안 된 거고, 결국 작가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건가 싶었다. 회사에서 그렇다 할 성과도 못 냈고.


사람마다 우선순위와 가치관이 다르다. 난 관계지향적인 인간이고 가족과 친구에게서 충분한 사랑을 받고 그 힘으로 글을 쓰고 일을 하는 사람이다. 바쁘다고 미룰 게 따로 있지, 주변 사람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챙기는 게 중요하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페이스 조절이 됐다. 혼자서 고뇌하는 시간, 가족과 친구들과 보낸 시간, 회사에서 일한 시간으로 또 글을 쓴다. 일만 하는 사람들에 비해 성과와 연봉 인상 속도는 느리지만 회사에서 일을 하는 시간이 좋고 집에서 글을 쓰는 시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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