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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대리 Oct 16. 2023

직장이 아닌 직업 만들기

개인 프로젝트의 중요성

취업만 하면 먹고사니즘이 해결될 줄 알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인이 된 지금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아 뭐 먹고살지'다. 분명 직접 일해서 번 돈으로 밥도 사 먹고 커피도 사 먹는데 입버릇처럼 나온다. 썩 유쾌한 생각은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에 대한 걱정을 수시로 한다는 건 지금의 삶을 즐기지 못하거나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의미다.


언제 가장 먹고사니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까? 회사'만' 다니고 있을 때다. 매일 출퇴근만 해도 대단하다고 하지만 이런 삶도 몇 년 살아보면 참 지루하다. 어쩔 땐 불안하기도 하고. 회사는 나에게로 와 완전한 삶의 루틴이 되었지만 나를 평생 책임져주지 않는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란 책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회사를 나와서도 월급을 벌 수 있나요?" 벌 수 없다면 나는 직장을 가진 것이지 직업이 있는 상태가 아니다. 나를 책임지는 건 회사가 아니라 회사를 다니면서 만들고 쌓은 나의 경험이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나의 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권장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먹고사니즘이 해결되지 않으면 조바심이 난다. 여유가 없으면 일을 그르칠 확률이 높다. 어떤 글쓰기 수업에서 선생님이 첫 강의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혹시 글 쓰겠다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실 분 계신가요? 그런 분들은 저에게 통장 잔고를 먼저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몇 명을 살렸다는 소문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는데 뭔가 공허하거나,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다거나, 미래가 안 그려진다면 회사와 개인 프로젝트를 병행할 것을 추천한다. 실패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월급이 있지 않은가.


직장을 다니면서 당선되진 않았지만 장편 소설 공모전에 출품한 적도 있고, 출간엔 실패했지만 100페이지 분량의 원고 작업을 마무리한 적도 있다. 콘텐츠 기획자라는 직업을 살려 북스타그램도 운영해 보고 블로그도 썼지만 회사를 끼우지 않으니 관심을 끌 수가 없었다. 물론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단 생각에 정말 속상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먹고사니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다. 개인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넘어져서 아프지만 충분히 내일도 먹고살 수 있었다. 햄버거 사 먹을 돈도 있었고 롯데월드에서 놀 돈도 있었다.


반면 계속된 실패에 지쳐 나가떨어졌을 때, 글쓰기를 멈추고 회사에만 올인했을 때, 먹고사니즘에 대한 걱정이 미친 듯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믿을 건 회사밖에 없단 생각에 성과가 될 만한 일들에 욕심을 부렸다. 눈에 불을 켜고 지금 회사에서 필요한 가이드가 무엇인지, 어떤 일을 맡아야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찾았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노력, 운의 흐름, 상황이라는 삼박자가 맞아야 뭐가 돼도 된다. 내가 회사를 위해 그렇게 노력한 분기에 사상 최악의 성과 평가 점수를 받았다. 개인 프로젝트도 멈춘 데다 회사에 올인한 상태니 믿을 구석이 없더라.


간혹 드는 먹고사니즘에 대한 생각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운이 좋은 달에는 원고료를 40만 원까지 받았지만, 평균적으로는 회사 월급을 제외한 곳에서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음은 편안하다. 회사도 기분 좋게 다니고 있고, 실제로 꽤 괜찮은 성과도 냈다. 마음의 여유가 만든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마음에 하고 싶은 일이 하나쯤은 있다. 꿈을 이룬 사람도 넥스트 꿈이 있다. 거기에서부터 쉽게 시작해도 괜찮다. 없다면 만들고 찾는 것부터 하면 된다. 작가지망생의 별 거 없는 개인 프로젝트 3가지를 소개한다.




영화&독서 모임

혼자서만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관점을 나누는 커뮤니티가 필요할 때가 있다. 내가 모르는 새로운 접근과 감상은 책이나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와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안 보던 영화를 보게 하고, 안 읽던 책을 읽게 한다는 것이다.


올대리가 무기력에 빠지면 꼭 나타나는 증상이 있다. 독서를 멈추는 것이다. 지하철 출퇴근길에, 연차를 쓴 평일 대낮에, 주말에 모르는 동네의 카페에서 책 읽는 걸 좋아한다. 우울감을 유독 많이 느낄 때에는 긴 호흡의 책이나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다. 보는 도중 불쑥불쑥 부정적인 생각들이 치고 들어와 정신을 흐트러트린다. 기분 전환을 위해 억지로 여행을 가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대청소를 열심히 해도 나아지지 않는다. 결국  책 읽는 시간을 쇼츠 콘텐츠를 보는 시간으로 다 채운다. 뜨거워진 스마트폰의 열기만큼이나 나에 대한 자책도 심해진다.


이럴 때 강제로 커뮤니티에 나가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책을 읽고 그 영화를 보게 된다. 주변에 모임이 없다면 오프라인 강연이나 강의장에 가는 것도 추천한다. 운이 좋으면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스터디를 만들 수도 있다. 올대리는 우연히 간 강연에서 졸업하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대학 선배를 만났다. 이러쿵저러쿵 떠들다가 둘이 독서 모임을 하게 되었는데, 3년이나 할 줄이야.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최고의 개인 프로젝트는 글을 쓰는 일이다. 글쓰기에 가장 중요한 건 글과 작품을 접하는 것이다. 따로 시간을 내서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집단에 내가 한 발자국 들어갔다는 느낌을 준다.


대학교 병행하기

올대리는 8월에 두 번째 졸업을 했다. 2018년에 대학교를 졸업했고, 2021년에 다른 대학에 다시 입학했다. 중국어를 전공한 올대리의 직업은 콘텐츠 기획자이고 주 무대는 한국이다. SNS를 잘 못하고, OTT에 흥미도 없지만 웹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며 작가라는 꿈도 있다. 그래서 서울사이버대학교 웹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해서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강제로 글 쓰는 환경을 만들 수도 있고 웹콘텐츠의 흐름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학비도 일반 대학보다 훨씬 저렴한 수준이고 국가장학금도 받을 수 있어서 쥐꼬리만 한 월급에도 전혀 부담이 안 됐다.


물론 과제가 많으면 부담이 됐다. 오랜만에 쓰는 레포트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고, 찾아볼 논문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심지어 소설이나 웹툰 시나리오를 창작하는 과제도 많아서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하느라 과정이 꽤 고통스러웠지만 결과적으로 요 근래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그 환경으로 밀어 넣지 않았으면 글쓰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무기력증이 와도 수업을 듣고 시험을 봐야 한다. 무기력이 찾아올 시간이 없다. 글 쓰는 습관을 잃지 않게 도와준 멋진 개인 프로젝트였다.


실전 글쓰기

꾸준히 글을 쓴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회사에서 제작하는 콘텐츠에 필요한 카피나 정보는 뚝딱뚝딱 잘 쓰지만 내 이야기를 어딘가에 공유한다는 건 어딘가 부끄럽더라. 메모장에 대충 쓰는 일기는 자주 쓸 수 있지만 완성된 한 편의 글을 업로드하는 데엔 상당한 에너지가 든다. 하지만 글을 쓰고 싶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기도 하다.


장강명 작가의 <책 한 번 써봅시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 주제로 200자 원고지 600자를 써라"  A4로 환산하면 70~75페이지 정도 되는데, 단행본 1권을 만들 수 있는 기준을 명쾌하게 정리했다. 작가가 책을 내기 위해서는 한 주제로 그 정도의 글을 뽑아내야 한다. 완성된 한 편의 글이 20~30개 정도가 되면 그 정도 분량이 될 것이다. 실전 글쓰기 연습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브런치,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 그로로 등의 다양한 글쓰기 플랫폼에서 글을 썼다. 썼다 지운 것도 있고 완성했는데 못 올린 것도 있다. 인기 없는 글들이 대부분이지만 한 편의 글을 완성한 경험이 쌓여 자신감을 준다. 백지상태가 두렵지 않고 글 쓰는 속도도 이전보다 빨라졌다. 글을 쓰는 게 조금 편해져서일까. 뭐가 잘 안풀려도 부담감이 훨씬 덜하다.




<드로우앤드류> 유튜브 채널의 앤드류님도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개인 프로젝트를 권한다고 한다. 개인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채널이 바로 <드로우앤드류>다. 앤드류님이 쓴 <업사이클링>이란 책은 개인 프로젝트로 지금의 직업을 만든 사람들의 인터뷰집이다.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된 사람이 어쩌다 웹툰 작가가 된 이야기, 회사가 너무 멀어 남들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해 글을 써서 책을 출간한 과장님의 이야기, 배우가 되기 위해 연극영화과에 들어갔지만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인생이란 예측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예측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불안이 동반된다. 너무 당연한 감정 또는 느낌이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조금 잠재워질 뿐이다. 그 조금에 도움을 주는 것이 개인 프로젝트다. 그 기회를 통해 다니는 직장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롤을 찾을 수도 있고, 직장 밖에서 다른 업을 찾을 수도 있다. 미래에 다양한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보통 불안은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미래가 빤히 보일 때 느껴진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위해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여유를 갖고 다시 한번 현실을 바라본다면 한층 숨 쉬기 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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