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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대리 Oct 15. 2023

스타트업 기획자의 아이디어 찾아 삼만리

집 나간 아이디어를 찾습니다

스타트업에 다닌다면, 직군이 기획자라면 가지면 좋은 습관이 있다. 수시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다. 꼭 찾으려고 할 때 어디 있는지 도통 모르겠는 게 아이디어다. 아이디어와의 전쟁에서 반짝 살아남는 건 의미가 없다. 매일매일이 전쟁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이디어와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면서 오래도록 함께 있는 게 중요하다. 아이디어가 별로여도 토닥여주고 참신하면 칭찬 좀 해주고. 계속 머리를 굴리는 게 포인트다. 아이디어 좀 안 나온다고 “아 나 재능 없나? 지금이라도 직업을 바꿔야 하나?”할 필요가 없다. 원래 아이디어는 눈에 안 보인다. 인위적으로 자꾸 끄집어내는 연습을 해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밖으로 나온다.


스타트업은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현재 안정적인 수입원이 있어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회사다. 대기업보다 더 많은 비즈니스 모델에 도전하면서 빨리빨리 갖고 있을 건 갖고 버릴 건 버리는 선택이 필요하다.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이윤을 지속적으로 창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획자는 말 그대로 기획을 하는 사람인데, 하나의 기획을 위한 잡무가 80% 이상이다. 그래서 공부가 필수다. 낯선 분야를 어떻게든 이해해서 업무에 써먹어야 하고, 아는 분야는 더 깊게 공부해서 업무의 퀄리티를 높여야 한다. 스타트업에 다니는 콘텐츠 기획자인 올대리는 아이디어가 절실하다. 참신하든 참신하지 않든 아이디어가 나와야 제안을 할 수 있다. 퇴사하지 않고 회사를 잘 다니기 위해서는 아이디어를 습관화해야 한다.


커피라는 주제로 콘텐츠를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같은 소재여도 타겟이 누구냐에 따라 콘텐츠의 결이 달라진다. 커피 종류를 설명할 수도 있고, 원두 품종이나 커피의 역사, 추출 방식이 주제가 될 수 있다. 컨셉과 디자인에 따라 커피 클래스가 되거나 뉴스레터, 테이스팅 노트가 되기도 한다. 콘텐츠가 어디에 노출되는지도 중요하다. 책 혹은 팜플렛, 웹페이지, 유튜브채널, 인스타 릴스, 디지털 사이니지 등 목적에 맞게 톤앤매너 조절해야 한다. 기똥찬 아이디어는 없다. 필요한 걸 엮고 엮다 보면 뭔가 그럴싸해진다. 여러 명과 이야기를 나누면 또 뭐가 쌓인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제법 특별해진다. 아이디어 자체보다 아이디어를 내는 행위가 중요하다. 기획 회의를 하다 보면 다 같이 떠들다가 “그래 이거야!”하고 나올 때가 많지 않은가.


어떻게 하면 아이디어를 내는 습관을 가질 수 있을까? 딴짓, 기록, 자기 암시의 세 가지 방법을 추천한다. 뭔가를 떠오르게 만드는 일등공신들이다. 딴짓으로는 친구들이랑 떠든 수다, 공연이나 전시 관람, 책과 영화, 취미 등이 있다. 일이 아닌 활동과 일이 결합하면 색다른 지점이 나오는데, 요즘 많이 나오는 콜라보 상품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일들을 기록하면 수중에 떠오르는 게 더 많아진다. 기억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하루 있었던 일을 키워드로만 정리해도 써먹기 좋다. 아이유의 수많은 명곡들이 일기에서 나왔다는 인터뷰를 보라. 마지막으로 “틀려도 괜찮다.”는 자기 암시가 중요하다. 떠오르는 거에서 멈추지 않고 입으로 손으로 뱉어야 한다. 틀릴까 봐 아닐까 봐 욕먹을까 봐 주저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아이디어와 어울리는 동사는 떠오른다가 아니라 '나온다'다.




딴짓하기: 문화생활

10월, 목표를 돌아보기 좋은 시즌이다. 2023년 올대리는 10년 만에 새해 목표를 세웠다. 외출을 귀찮아하지 말 것. 문화생활을 하며 식견도 넓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목적이었다. 스타트업이라는 회사와 콘텐츠 기획자라는 직군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좀 더 재밌게 회사를 다니고 싶었다. 밖에서 만난 모든 경험들을 업무에 녹여낼 수 있다는 걸 전 직장에서 배웠다. 뭔지 잘 모르겠는데 웃긴 것, 어디서 주워들은 것, 길 가다 봤는데 감탄했던 것 등이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시켰다. 가진 경험들을 다 풀어냈더니 더 이상 꺼낼 게 없더라. 아이디어 곳간을 채워야 했다.


올대리는 파워 I성향으로, 평일에 약속이 있으면 다음 날 연차를 써야 하는 체력 쓰레기라 주말을 알차게 이용했다. 회사에서 당첨된 '캣츠' 뮤지컬 티켓을 시작으로, 하리보 100주년 기념 전시회, 서울 미디어 아트, 연극 '집에 사는 몬스터' 등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겼다. 클라이밍, 배드민턴, 트럼폴린에도 도전했고, 도마 만들기, TCI 검사 등의 원데이 클래스에도 참여했다. 얼마 전에는 소년철학 김누보님이 운영하는 앤트로폴로지 북클럽에도 참여했다. 서울 토박이지만 아직도 석촌 호수를 가본 적이 없는 올대리는 서울 촌년이다.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처음으로 고향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틈만 나면 "난 서울에서 절대 안 살 거야."라고 떠들어대곤 했었는데,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면 무대 위 배우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특히 우울하고 무기력할 때 소극장 연극을 추천한다. 그들에게서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 울만한 내용이 아닌 연극 셜록을 보고 '난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내 열정은 어디갔지?'하며 눈물을 펑펑 쏟았더랬지. 그림, 설치 미술, 사진, 디지털 아트 등의 전시를 보면 감탄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엄마와 나는 최근 들어 문화생활 단짝이 되었는데, 전시회장에 가면 엄마는 폴짝 뛰며 이렇게 말한다. "어머나! 세상 모든 게 아이디어네! 끝내준다!" 좀 이상해도 어떤가, 그냥 내뱉는 게 아이디어다. 독서 모임 같은 커뮤니티에 참석하면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살다 보면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되는데, 가끔은 안정된 일상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것도 좋다. 15년 된 친구들과 깊은 이야기는 나눌 수 있지만 더 이상 우리는 서로의 첫인상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없다. 서로 아는 게 많아 어떤 대화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너무 잘 안다. 새로운 관점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는 커뮤니티다.


기록하기: 메모장&캘린더

올대리의 두 번째 새해 목표는 삶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거인의 노트>에서는 "나만의 방식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기억하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기록하지 않으면 내가 어제 뭘 먹었고, 그저께는 누구를 만났고, 운동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잘 모르게 된다. 자기화한 것만이 남는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어 오늘은 무슨 일을 했고, 뭐 때문에 웃었고, 어떤 얘기가 기억이 남았는지를 쓰기 시작했다.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갓난아기가 나의 가방에 달린 케어베어 인형 키링을 만지며 까르르했던 것도 적었다. 지금 다시 떠올려도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메모를 했기 때문에 한 번 더 떠올릴 수 있게 됐고, 이렇게 글에도 적을 수 있게 됐고, 한 번 더 웃을 수 있게 됐다.


이처럼 기록은 하루하루를 더 기억나게 해 준다.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어떤 일에서 포복절도를 하는지도 알 수 있게 해 준다. 메모장에 타자를 치기 힘들 정도로 여유가 없는 상황에는 캘린더에 키워드만 입력한다. 호수공원 산책, 전지적 독자 시점, 가로수길 바게트, 첫 8호선 등. 한 달, 두 달, 일 년을 돌아보면 무슨 책을 읽었고 어디에 갔는지를 볼 수 있다. 거기서 얻은 인사이트를 다시 한번 보게 되면 언젠가 써먹는 날이 온다. 브런치 글에 녹이든, 노래 가사에 적든, 친구와의 수다에 조미료로 사용하든. 기록하면 인생이 풍성해진다. 이야기할 거리도 많아진다. 아이디어는 생각과 말 사이를 이어주는 인사이트다. 그 인사이트를 도와주는 도구가 기록이다.


자기 암시: So what?

올대리의 마지막 새해 목표는 "나 예뻐하기"다. 전 직장을 다니면서 매일매일 화장실 거울을 보고 "못생겼다"라고 말하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작년 이 맘 때쯤 진지하게 콘텐츠 기획자라는 직업을 버리려고 했다. 아이디어도 없고, 뱉어도 자신도 없고, 내가 지금 뭘 위해 회사를 다니는 지도 모르겠더라. 뭐가 생각나서 신나게 말하면 주변 반응은 시큰둥했고, 쏟아지는 일은 너무 많았다. '이거 괜히 내가 한 마디 더해서 일이 더 늘어나는 거 아니야?'란 생각도 많이 했다.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조직 문화도 아니었고, 그런 환경에서 위축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글을 누가 별로라고 하면 어떡하지? 다른 회사에 가서도 말을 못 하면 어떡하지?


스타트업에 다니지 않아도, 아이디어를 내는 직군이 아니더라도 머릿속에서 떠도는 생각을 적당한 상황에 꺼내는 건 살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인간은 관계를 맺고 사는 동물이고,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수적이다. 소통은 내 생각을 끄집어내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경험을 채우는 행위다.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평가가 두려우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왕 꺼낸 말인데, "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로 채우고 싶은가? 그래서 필요한 게 "뭐 어때?"라고 생각하는 자기 암시다. 내가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다. 당장은 틀렸는데 언젠가 맞을 수도 있고 애매할 수도 있다. 이런 모든 결과에 "뭐 어때?"라고 대응하며 나를 지켜야 한다. 올대리는 될놈될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은 안 되는 게 디폴트값이다. 안될 때마다 나를 안될 놈이라고 자책하기보다는 아직 안 됐는데 뭐 어때? 가 낫지 않겠는가. 그래야 다음 스텝으로 갈 수 있다. 포기하면 그 스텝에 머무른 채 세상을 탓하게 된다. 그것만큼 나를 괴롭히는 일도 없다.




작정하고 아이디어를 찾으러 다니면 그렇게 없다. 분명 여기 있었는데 왜 내가 찾으면 없는 걸까? 서른 살 먹고 회사에서 엄마를 부를 수도 없고. 이때 필요한 게 경험이다. 뇌는 적재적소의 상황에 뭔가를 팟! 하고 수면 위로 올리는데, 일할 때 이게 너무 필요하다. 이제부터 찾으려면 늦었다. 미리미리 경험을 해놔야 고기 많은 바다가 된다. 기획자에게 필요한 건 하늘에서 갑자기 내려주는 영감이 아니라 낚시 능력이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회사 집 회사 집 하는 경우가 많다. 일주일에 방문한 장소가 2곳밖에 안 된단 사실에 적잖이 놀란 적도 있다. 콘텐츠 운영 직군에서 그렇게 원하던 기획 직군으로 방향을 틀었고, 이미 맛을 봤으니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렇다고 당장 회사를 그만두거나 직업을 바꿀 생각도 없으니 게으른 이 몸뚱이를 바꾸기로 했다. 주말 내내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강의나 수업을 들으러 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거의 누워서 스마트폰만 만지더라. 그 조그마한 기계에서 어떤 아이디어가 나오겠는가. 어느 날엔가 경제 유튜브를 보는데 "진짜 성공한 사람들은 오프라인에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온라인에만 있다."라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코에 맞았다.


직장을 다니면서 세상의 다양한 경험을 누리는 데엔 무리가 있다. 효율 좋게 움직이면서 쉴 건 또 쉬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해외여행은 리스크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얼마 없는 연차도 쥐어짜서 써야 하고, 대직자도 구해야 하고, 최소 100만 원 이상은 깨지기 때문에 한 두 달 정도는 긴축재정에 들어가야 한다. 여행지와 현실의 갭 차이도 극복하려면 시간도 꽤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문화생활은 당장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가성비가 좋다. 비싸고 좋은 뮤지컬도 10~20만 원 대에 볼 수 있고, 2~3만 원짜리 연극만 봐도 돈이 전혀 아깝지가 않다. 전혀 관심 없던 분야를 엿볼 수도 있고, 그 속에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해 업무와 일상에 적용할 수도 있다. 삶의 안목을 기르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내가 봤는데~'하면서 수다를 떨고, 관계를 맺고, 아이디어를 내고, 직업을 바꾸고, 회사를 차리고, 크리에이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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