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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Jun 06. 2023

순례길 열두 번째 이야기

그의 흔적을 찾아서

구간 : 산토 도밍고 데 라 깔사다 - 벨로라도
거리 : 22.2KM
소요 시간 : 4시간 30분


  대학 생활을 기억해볼까 한다. 사람마다 각자의 대학생활에 대한 추억과 후회가 남겠지만, 나의 대학생활은 후회 없이 추억으로만 가득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놀아보기도 했고, 그것보다 더 열심히 공부도 했다. 학생회 활동을 하며 후배들과 친해졌고, 연극 동아리 활동으로 무대에 서보기도 했다. 하루를 쪼개 아르바이트도 병행했으며, 대학원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받았던 장학금 덕분에 나름 풍족한 대학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도 방학마다 교육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여행도 수차례 다녀왔기에 다른 사람보다도 대학생활을 충분히 즐겼다고 자부한다. 특히, 이런 생활을 하면서 어렸던 나를 돌봐주고 성장시킨 고마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의 흔적이 오늘의 목적지인 벨로라도에 있었다.


  이미 유명인이 되어버려 실명을 밝히기 어렵게 된 형이지만, 이 선배는 내가 신입생이었을 당시 영문과의 학생회장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는 능력과 재치 있는 입담으로 어디서든 가장 큰 사람이었다. 나는 당시 먼 거리에서 통학을 했는데, 내가 술을 먹고 늦게 귀가해야 하는 날이면 가끔 형이 다른 곳에 있다가 차로 데려다주기도 했다. 그는 학교 생활, 사람들과의 관계에 열심히 노력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옆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고, 그에게 도움을 받았던 후배들은 그를 존경했다.

산티아고.. 길?


  그는 2014년에 까미노를 걸었다. 그리고 오늘의 목적지인 벨로라도에서 알베르게 숙소 사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때의 만남에 대해 그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기억한다. 선배는 알베르게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벨로라도 공립 알베르게에서 6개월 간 일을 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스페인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고, 그는 현재 축구 해설, 특히 라리가를 전담하게 되었다.


  순례길을 걷기로 결정하고 나서 궁금한 점이 있을 때면 선배에게 도움을 받곤 했다. 그리고 선배의 부탁은 자신이 일했던 벨로라도 알베르게에 가서 아직 자신의 친구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영상통화를 한 번 시켜달라는 것이었다. 벨로라도로 출발하기 바로 전 날 선배에게 연락을 했고, 그는 그의 친구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렌다고 했다. 당시 적었던 방명록도 있을 것이기에 그것도 한 번 찾아봐달라는 부탁도 받았다. 나는 그의 흔적을 벨로라도에서 꼭 찾고 싶었다.


  산토 도밍고 데 라 깔사다에서 벨로라도까지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가파른 오르막이나 내리막 없이 예쁜 해바라기밭과 밀밭 사이로 지나가는 길이었다. 다만 도로 옆으로 길이 있어서 큰 차들이 다소 위협적으로 지나다녔고, 그늘이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렇게 4시간 30분 여를 걸어 벨로라도에 도착했다. 선배가 소개한 공립 알베르게에 얼른 들어가서 주인을 만나고 싶었다. 벨로라도는 그렇게 크지 않은 마을이었고, 마을 가운데 예쁜 광장이 있었다. 공립 알베르게는 마을 입구에서 광장으로 가는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해 체크인을 했다. 여자분께서 체크인을 도와주셨다. 도미토리는 10유로, 싱글룸은 15유로라는 말에 싱글룸을 달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기 주인이신지, 일하신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여쭤보았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처음이었는지, 이상해하는 표정과 말투로 대답해 주셨다. 그런데 이 분이 사장님이셨고, 일하신 지는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녀는 되려 내게 이런 질문을 왜 하는지 물었다. 나는 내 친구가 2014년에 여기서 6개월 저도 일을 했다고 말했고, 혹시 그를 알까 싶어서 물어보았다고 대답했다. 아쉽게도 그녀는 사장님이 바뀌었다고 전해주었다. 

침대를 파고드는 끝내주는 날씨


  나는 그의 추억을 찾고 싶었고, 그와 추억을 공유하고 싶었다. 이 사실을 그에게 알렸더니 그 역시 아쉬워했다. 그가 남겼다는 방명록도 찾으려 했지만 이미 정리해 버렸는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는 벨로라도에 대해 이것저것 안내해 주었다. 벨로라도는 닭이 맛있다는 것, 특별히 맛있는 식당이 없어서 자기가 있을 때는 알베르게 사장님이 해주는 밥이 마을에서 제일 맛있었다는 것.

어느 도시보다도 벨로라도를 천천히 느꼈다

  여행을 하며 장소와 시간에 대한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게 된다. 그것을 위해서는 그보다 먼저 그 장소에 대해 의미를 완성했던 사람의 걸음을 뒤따라 걷기도 한다. 선배의 바람대로 그의 친구들과 추억들은 만날 수 없었지만, 그의 흔적을 따라 아름다운 작은 마을에 대해 미리 알아보았고, 그곳에 닿기를 기대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벨로라도'라는 처음 들어보는 지역에서 그가 가진 추억을 들은 나는 스페인 북부의 작은 도시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자신의 의미를 찾았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로 그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는 그것을 자기에 맞게 소화해 냈다. 그는 스페인어서의 경험을 자신의 꿈으로 가는 길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과 벨로라도에서 만든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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