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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Jun 10. 2023

순례길 열세 번째 이야기

스페인에서 발견한 순대?

구간 : 벨로라도 - 산 후안 오르테가
거리 : 23.9KM
소요 시간 : 6시간 30분


  오늘도 어김없이 해가 뜨기 전 이른 시간에 일정을 시작했다. 마을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인지 가로등이 많이 설치되어있지 않았다. 출발하기 전 아빠가 챙겨준 헤드랜턴을 챙겨 쓰고 어두운 길을 헤쳐나갔다. 그러던 중 어두운 길에서 혼자 헤매고 있는 리사를 만났고, 해가 뜨기 전까지 함께 랜턴의 빛에 기대 걸어갔다. 어느 정도 길이 보이자 리사와는 다음에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나서 보통의 내 속도로 그녀를 앞질러 걸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는 약간의 산이 있어서 며칠간 걸었던 평지보다 훨씬 힘들었다. 거기에 조금씩 비가 내렸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기 때문에 쉽게 지쳤다. 오르막길보다 젖어있는 내리막은 더 힘들었다. 내 앞뒤에 걷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열심히 노래를 부르면서 힘든 길을 이겨냈고, 내리막을 한참 내려가다 보니 산 후안 데 오르테가 마을이 선물처럼 등장했다.

(좌) 숙소에서 나와 출발하는 길 / (우) 산티아고까지의 거리
(좌) 산 중턱에서 만난 오아시스 과일가게 / (우) 산 후안 데 오르테가에서 묵었던 알베르게

  산 후안 오르테가에서 머물렀던 알베르게에는 7개의 침대밖에 없었다. 항상 예약하는 습관이 있던 한국인 6명과 이탈리아에서 온 수도승 한 명이 묵게 되었다. 마을이 워낙 작았기 때문에 슈퍼마켓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구글 지도에 나오는 식당도 겨우 두 개 밖에 없었다. 그중 하나는 내가 머물렀던 숙소였다. 1층에서는 식당과 바, 그리고 2층을 알베르게로 사용하고 있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숙소에서 끼니를 해결할까 했지만, 구글 지도에서 보이는 식당 평점이 2개 중 2등이었기 때문에 일단 마을에서 가장 맛있는 식당을 찾아갔다. 


  같이 간 일행 중에는 생장에서부터 만난 셰프 형이 있었다. 그는 스페인에서 살았었기 때문에 언어와 경험을 바탕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그는 직업에서 비롯된 음식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각 지역에서 먹을 수 있는 특별한 것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한식이 먹고 싶어 지면 스페인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한식과 비슷한 음식을 해주곤 했다. 


  식당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주인이 반갑게 인사하며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셰프 형이 메뉴판을 살펴보더니 메뉴 세 개 중 하나를 가리키면서 한국의 순대와 비슷한 것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주인 역시 부르고스 지역에서 나오는 순대 같은 것이 맛있다고 추천해 주었고, 셰프 형 역시 먹어보기를 권했다. 스페인에서 순대라니. 나는 학교에서 일할 때 1주일에 한 번 이상 순대국밥을 먹었다. 전주에는 맛있는 순대국밥집이 많아서 그날 기분에 따라 선택했지만,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대국밥집인 '호성순대'를 자주 방문했다.


  먼저 주문한 음료가 나왔고, 이어 메뉴가 등장했다. 굉장한 크기의 순대였다. 한국에서 먹었던 순대와 굉장히 비슷했다. 그저 크기가 월등히 컸을 뿐이었다. 한국 순대와 맛이 약간 달랐다. 전주에서 많이 먹는 피순대와 당면순대가 적절히 섞여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만든 순대를 살짝 구워서 짭짤하고 달달한 맛을 낸 듯싶었다. 특히 이것을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었는데, 같이 나온 빵 껍질에 올려서 올리브유를 듬뿍 부어 먹는 것이었다. 익숙한 맛이 새로운 맛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점심에는 돼지고기와 순대가 함께 있는 메뉴를 먹었고, 결국 저녁에 다시 방문하여 순대만 있는 메뉴를 시켰다.



  여행을 하다 보면 몸 컨디션이 갑자기 나빠질 때가 있다. 나는 그 때면 한식당을 찾아 든든하게 챙겨 먹었다. 그런데 순례길에서 한식당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도시에서도 겨우겨우 찾아가야 하는 한식당인데, 작은 마을에서 한식을 기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기껏 해야 겨우 찾을 수 있는 라면 정도가 전부였다. 아무리 맛있는 것이 많은 여행지여도 내 몸에 힘을 넣어줄 수 있는 음식은 내가 늘 먹던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한식은 아니었지만 이 작은 마을에서 내게 익숙한 맛을 찾을 수 있었고, 다음날 다시 걸을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런데.. 이걸로 순대국밥도 만들어 주시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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