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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Jun 30. 2023

순례길 열다섯 번째 이야기

부르고스 대성당(2)

구간 : 부르고스 -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
거리 : 20.6KM
소요 시간 : 5시간


  내가 시를 전공한 이유, 더 크게 봤을 때 문학을 전공한 이유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한 사람을 바라볼 때 현재의 모습뿐 아니라 현재를 만들고 있는 과거의 일까지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내 앞에 서 있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 사람의 과거를 생각하면서 나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려 노력하게 된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 나아가서는 내가 바라보는 현실 세계의 사건이나 사람들까지도 다양한 시각에서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나를 둘러싼 것들은 각각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기고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귀를 기울이며 한참을 바라본다.


  나는 부르고스 공립 알베르게에서 묵었기 때문에 많은 소음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빼곡하게 늘어선 침대에는 각각 하루만의 주인이 있었고, 수백 개의 기상 소리가 있었으며, 씻는 소리와 짐을 싸는 소리가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예정 기상 시간보다 일찍 일어났다. 그런 김에 깨끗이 씻고 숙소를 나섰다. 마지막으로 숙소 앞에서 새로운 모습을 하고 있는 부르고스 대성당을 바라보다가 도시를 빠져나갔다.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 가는 구간을 '메세타' 구간이라고 부른다. 메세타 구간은 이베리아 반도 중앙부에 위치한 고원지대로 테이블 모양의 언덕들이 이어져있는 지역이다. 이 구간에 대해 토레스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구간에 대해서는 의견이 비슷한 반면, 메세타 구간은 각각이 기대하는 바가 달랐다. 누군가는 이 구간보다 더 의미 있는 길은 까미노에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고, 또 다른 사람은 너무 지루에서 다음에 오면 건너뛸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나마 오늘 갔던 구간은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구간이었지만, 앞으로 만날 길들은 오르막과 내리막 없이 평지가 계속된다고 했다.


메세타 구간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에 도착했다.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문을 연 알베르게가 없었다. 후기가 괜찮은 알베르게 앞에 짐을 두고 주변 가게에서 마실 것을 샀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흘렀는데 내가 기다리던 알베르게가 아니라 맞은편 알베르게가 먼저 문을 열었다. 고민 끝에 먼저 문을 연 곳에 묵기로 했다. (굉장히 좋은 선택이었던 것이 원래 기다렸던 알베르게는 그날 문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체크인을 하려 기다리고 있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노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의 마을 구석구석


  마을이 워낙 작아서 마땅한 음식점이 없었다. 점심은 문을 연 식당을 겨우 찾아 메뉴 델 디아(오늘의 메뉴)로 해결했지만, 저녁까지 이곳에서 해결하기엔 석연치 않았다. 오늘 묵을 알베르게에는 주방 시설이 없었지만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이 있다고 하여 저녁 식사를 신청했다. 샐러드와 빠에야, 와인과 후식이 나오는 코스였다. 개인 정비를 마치고 일곱 시가 되어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그중에는 아까 만났던 한국인 부부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두 분께서는 한국 국적이 아니라 미국 국적을 가지고 계셨다. 두 분은 세 번째 순례길을 걷는 중이었고, 이전의 경험들과 팁, 눈여겨보면 좋을 것들을 말씀해 주셨다.


알베르게에서의 빠에야


  남편 분께서는 19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공부를 하고 터를 잡은 분이었다. 그는 건축가였기 때문에 여행을 가면 그 도시의 건축물들을 유심히 살펴본다고 했다. 지역의 유명한 건축물뿐 아니라 각각의 도시가 가지고 있는 마을의 모습, 마을에 따른 집의 모양, 심지어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창고의 건축 형태까지도 찬찬히 뜯어보는 것이 유행의 또 다른 재미라고 했다. 그 이유는 건축물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건축물이 오래되고 마을의 역사가 긴 유럽에서는 각각의 지역의 환경에 적합한 건축 형태가 마을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부르고스 대성당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냐는 질문을 하셨다. 나는 대성당이 주는 거대함과 위압감 있는 모습이 보는 사람을 압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는 이어서 한번 더 질문을 던졌는데, 그 건물에서 사람 사는 모습이 보이냐는 질문이었다. 즉, 이 건물이 사람을 위한 건물이라고 생각하냐는 것이었다. 조금 고민을 하다가 엄청난 건물을 짓기 위한 사람들의 희생과 그것을 감수하는 신앙심이 있었을 것이라고 다시 대답했다. 그랬더니 이것은 사람을 위한 건물이 아니라 신을 위한 건물이기 때문에 자신이 연구하고 직접 설계하는 건축관과는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이 분의 말이 정답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건축물이 주는 감동과 영감이 중요한 부분일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건축물이 보여주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의미 있게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건축물을 보고 어떤 면에서 감동을 받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순히 웅장함에 사로잡혀, 혹은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그 순간을 소비하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선생님께서 던지신 질문을 통해 나를 압도했던 것들이 어떤 의미였는지에 고민할 수 있었다. 그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내게 부르고스 대성당은 사람들의 희생과 신앙심으로 지어진 건물, 신앙심에 의한 희생이 담긴 건물이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대답이었던 사람 사는 모습을 찾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하나로 통합할 수 없게 만들었다. 과연 사람들의 희생과 그것을 짓는 사람의 신앙심이 같은 목적과 결과로 이어졌을까.


  이렇게 커다란 성당을 짓기로 한 사람은 신앙심을 위해, 혹은 능력의 과시를 위해 이 일을 결심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신의 말씀과 뜻을 기억하며 설계했을 것이고, 다른 이는 그 설계 위에 정성을 다해 돌을 조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성당의 기초를 다지고, 재료를 나르고, 높은 곳에 오르는 등 육체적 고통을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은 그들과 같았을까. 이름으로 기억되는 설계자나 조각가가 아니라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신앙심으로 뭉쳐 자신을 희생했을까. 타인의 신앙심에 의해 자신의 몸을 희생할 수밖에 없던 것은 아닐까.


  문학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주된 목소리에 의해 가려진 숨겨진 목소리, 심지어 목소리를 낼 수 없던 사람들이 내고 있던 목소리였다. 이야기에는 수많은 목소리가 숨어있고 그것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 따라 같은 이야기도 풍성하게 다가올 수 있는 이유이다. 건축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완성시키기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기억되는 것들과 기억되지 못하는 것들. 이 안에서도 숨겨진 많은 이야기들, 많은 목소리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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