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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Aug 21. 2023

순례길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한국인이 까미노에 많은 이유?

구간 : 모리나세카 - 비야프란카 델 비에르조
거리 : 31.2KM
소요 시간 : 8시간


  순례길에서 만나는 많은 유럽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참 신기하다고 말한다. 같은 유럽 내 국가들이야 버스나 기차, 혹은 짧은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오면 된다고 하지만, 아시아 대륙 끝에 있는 한국에서 해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스페인을 방문하는 행위는 쉽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 가톨릭 신자들이 많은지 물어보는 친구들도 있고, 한국에서 까미노를 걷는 사람에게 부여하는 어드밴티지가 있는지 묻는 이들도 있었다. 800KM 가까이 걷기 위해 열 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오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항상 까미노에서 이슈가 된다.



  사실 한국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지 잘 알지 못한다. 길에서 만났던 한국인들에게 물어봐도 저마다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다. 종교적인 이유, 지인의 추천, 하이킹을 좋아해서,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서 등 '한국인들은 도대체 왜 순례길을 이렇게 많이 걷는 거야?"라는 질문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하나의 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한국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고 싶어 하는 도시를 찾았다. 바로 오늘의 목적지인 비야프란카였다.


  이곳은 2019년 tvN에서 방영한 '스페인 하숙'의 촬영지였다. 당시 삼시 세 끼에서 엄청난 케미를 보여주었던 차승원, 유해진 배우와 함께 배정남이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여기에는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였고 이 길을 걷는 각자의 이유를 들려주었다. 스페인 하숙이 방영된 후 산티아고 순례길의 방문자 수가 증가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한국에 이 길을 대중적으로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던 프로그램임은 확실했다. 


  그래서 "왜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까미노에 오는 거야?"라는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았다. 모든 이유를 아우를 수는 없겠지만, 질문한 사람의 입장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대답이었다. 


  "각자 오는 이유는 너희만큼 다양하겠지만, 한국에서 방영한 티브이 쇼 때문에 많이 유명해지긴 했어."


200KM가 깨질 때 나는 처음 가져간 등산화를 올려놓고 왔다


  나는 스페인 하숙을 방송으로 보지 못했다. 순례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챙겨보고 걷는다기에 유튜브 클립으로 몇 번 본 것이 전부였다. 오늘의 목적지를 비야프란카로 설정한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저 30KM 부근에 있는 적당한 도시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몇몇 한국인들은 무리해서라도 이 도시를 방문한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인들을 마주칠 가능성이 높은 도시였다. 대부분 스페인 하숙의 촬영지인 '산 니콜라스 엘 레알' 알베르게를 방문한다. 세 명의 출연진들이 순례자들을 맞이하던 카운터, 그리고 그들이 해가 뜨기도 전에 나가고 때로는 늦은 밤이 돼서야 들어오던 입구(사실은 알베르게의 후문이라고 한다)를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티브이에 나온 곳을 방문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구글 지도를 통해 본 알베르게의 후기는 대부분 악평이 많았다. 시설의 문제라기보다 직원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변에 더 좋은 알베르게들이 많으니 굳이 오래된 알베르게를 방문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도 많았지만, 직원의 태도 때문에 리셉션에 들어가자마자 나왔다는 후기들도 꽤 많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약은 하지 않은 채 목적지로 향했다.


  비야프란카에 도착했다. 방송에 나왔던 알베르게는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했다. 생각보다 큰 건물이었고, 입구는 방송에서 나온 곳이 아니라 커다란 건물의 정문에 있었다. 리셉션에 도착했다. 건물에는 알베르게뿐 아니라 레스토랑과 호텔 등 여러 시설이 함께 있었다. 큰 건물을 나눠 쓰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직원이 등장했다. 그런데 역시 후기를 통해 전해 들은 대로였다. 스페인어를 전혀 할 줄 모름에도 불구하고 고압적인 직원의 몇 마디에 나는 이 알베르게에서 묵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그들은 숙소를 제공할 뿐 친절함을 우리에게 제공할 필요는 없지만, 돈을 내고 숙소를 이용하는 입장에서도 같은 금액에 불편함을 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곳에서 방송을 했던 이유가 바로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겼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항상 순례자들로 꽉 차는 알베르게보다 더 이상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어진 곳을 섭외하기가 더 쉬웠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각각의 순례자들이 자신의 숙소를 정하는 기준은 다양한다. 나에게 그 기준은 편한 잠자리였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면 다음날 걷는데 지장이 생기기에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곳을 항상 선택해 왔다. 직원의 태도는 그동안 딱히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다만 내게는 딱히 방송에서 나왔던 곳을 방문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오늘 만난 직원의 불쾌함은 내가 굳이 감당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몸뿐 아니라 마음이 더 편한 곳으로 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알베르게를 옮겼다. 평점이 매우 좋고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난 배드 버그를 만나게 된다.

  

티브이에 나온 장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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