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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Aug 25. 2023

순례길 스물일곱 번째 이야기

예상치 못한 선물


구간 : 라스 에리라스 - 트리아카스텔라
거리 : 29.1KM
소요 시간 : 6시간 30분


  보통의 여행에서 계획 없이 즐기는 내 모습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여행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항상 계획에 없던 것들을 마주칠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까미노에서는 달랐다. 길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 챙겨 오는 것들도 많이 놓친 채 시작했다. 특히 내가 걷는 프랑스 길에 있는 중요 포인트들에 대해 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유명한 지점들을 놓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무심코 지나칠 뻔한 철의 십자가가 그랬고, 부르고스 대성당이 그랬다. 이 길의 정보나 역사를 알았다면 순례길을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준비를 하지 못하니 항상 숙소에 도착하고 난 후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지나온 것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오늘은 세 번째 산을 넘는 날이었다. 세 번째이자 순례길에서 넘어야 하는 마지막 산이었다. 첫 번째 산이었던 피레네는 그늘이 별로 없고 지루한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졌었다. 걸은 길을 뒤돌아보며 마주한 풍경들은 굉장히 아름다웠지만 그것을 얻기 위한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두 번째 폰세바돈 지역을 넘어갈 때는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문제였다. 한번 발을 잘못 디디면 발목을 접지를 것 같은 위험한 구간이었다. 그리고 오늘 넘은 세 번째 산은 앞의 두 산보다 엄청난 오르막을 내게 선물했다.


  아침 7시 반 정도에 시작한 것은 다행이었다. 산길이다 보니 가로등이 없었고, 심지어 이 구간을 함께 걷는 순례자들도 없었다. 해가 어느 정도 올라와 있었기에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과 오르막의 경사가 문제였다. 앞선 두 개의 산이 보여준 오르막은 적어도 중간에 쉴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주었다. 오르막을 한참 걷다 보면 평지가 나와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고, 잠시 충전의 시간을 가진 뒤 다시 오르막을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아니었다. 쉴 틈 없는 오르막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산 하나를 통째로 넘는데 29.1KM 밖에 되지 않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높은 산을 완만한 코스로 오르는 게 아니라 짧은 거리로 단숨에 올라가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막막하던 오르막의 끝이 보일 때, 이번 모든 여정을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펼쳐졌다. 메세타 구간이 평화로운 아름다움이었다면 오늘 내가 마주한 광경은 압도적인 규모가 주는 아름다움이었다. 오르막 중간에 만나는 마을들은 동물들의 울음소리만 들려오는 고요한 곳이었다. 산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과 소, 양들만 있을 뿐이었다. 그들을 지키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우거진 숲을 지나 앞이 탁 트였을 때는 해가 밝게 올라왔고, 햇빛은 산의 푸르름을 한껏 끌어내고 있었다. 한 여름 태양이 만들어내는 공기의 색과 초목이 발산하는 생명력 가득한 색이 서로 공명하며 순례자들을 거기에 잠기도록 만들었다. 가장 힘든 오르막이었다는 생각은 사라진 채 자연에 흡수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오르는 산은 하나의 산으로만 구성되어있지 않았다. 여러 개의 줄기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내가 걷는 산의 내리막이 끝나는 지점과 저 멀리 보이는 또 다른 산의 오르막이 시작하는 지점이 함께 있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는 내가 밟고 있는 산의 내리막과 다른 산의 오르막을 함께 볼 수 있었다. 여러 개의 산이 어우러져 있었고 어떤 때는 산들이 겹쳐서 보이기도, 또 산들이 교차하면서 숨겨왔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들의 색은 한 여름의 초록이었지만 계절이 지나며 순례자들에게 보여줄 모습은 감히 그 수를 셀 수 없을 것 같았다. 수많은 산들이 주는 크기의 아름다움이었고, 한창의 젊음을 발하고 있는 색깔의 아름다움이었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오르막을 이겨낸 아름다움이었고 그리고 이제 이들을 보는 것이 끝나가는 아쉬움의 아름다움이었다.



  이 길이 끝나간다는 아쉬움은 레온 지역과 갈리시아 지역의 분기점이 나오기 때문에 더욱 짙어졌다. 앞에서 걷던 사람들이 웅성대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당연히 이 구간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지 않았으니 갈리시아 지방으로 넘어가고 있는 줄도 몰랐다. 기나긴 레온 지역을 지나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포함되어 있는 갈리시아 지방으로 진입한 순간이었다. 지역이 바뀌면서 함께 바뀐 표시석은 목적지까지 160KM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순례길에서 꼭 먹어야 한다던 뿔뽀 요리(문어요리)의 대표 지역이었기 때문에 얼른 갈리시아에 도착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마지막 지역이 예고 없이 닥쳐오니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어느새 내가 쓰는 말과 생각에도 '마무리'라는 단어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길을 정말 마무리해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 그리고 이 길을 걸으며 고민하려 했던 것들을 잘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오 세브레이로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은 프랑스 길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 순례길을 시작하는 순례자들도 많았다. 오르막을 올라오며 들었던 아쉬움 때문인지 처음으로 성당에 들어가 의자에 앉아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가지고 오지 않았던 종교적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지금까지 지나오면서 했던 모든 생각들은 모두 종교적인 것들이었다. 용서와 환대, 고난, 희생. 그리고 그것들을 포용하는 사랑.



  돌아가신 지도교수님을 위해 기도했다. 불편하신 몸으로 산을 좋아하고 걷기를 좋아하셔서 이 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셨던 교수님을 떠올렸다. 다시 생각해 보면 이 기도는 돌아가시기 전 한심한 모습밖에 보여드리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일이었다. 대학원에 와서 공부하겠다는 말, 교수님과 함께 공부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말씀을 드렸을 때, 교수님께서는 연달아 세 번 그 말이 진심인지를 물으셨다. 대학원에 처음 입학하고 교수님의 수업을 들어갔을 때에는 "교수님 수제자가 들어왔다고 수업 과정까지 바꾸셨다."라는 말이 들려올 만큼 나를 많이 아껴주시던 분이었다. 결국 내 석사과정 첫 학기, 2018년 2학기의 수업을 교수님께서는 끝내 마치지 못하셨다. 그리고 교수님과의 마지막 수업이 되는 그 학기에 나는 한심한 모습만을 보여드렸다.


  작품을 접하는 내 시각은 교수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자신의 삶에서 비롯된 약자들에 대한 시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신 분이었고, 문학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분이셨다. 그리고 작품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들을 꼭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씀하신 분이셨다. 이긴 사람들의 목소리가 전해지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그것에 가려져서 심지어 기록조차 되지 않았을 그런 목소리들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뿐만 아니라 시를 재밌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수업 방식과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호소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충격적인 순간은 시간이 지나도 그 당시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가 기억이 난다고 한다. 나는 그때 학원에서 오후 여섯 시쯤 수업을 하고 있었고, 그날에는 수업을 모두 마친 후 회식이 예정되어 있던 날이었다. 물론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석사 첫 학기가 끝나기 전 교수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수업을 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도 남은 수업 분량에 대한 페이퍼를 제출하라고 과제를 내주시는 분이셨다. 그리고 교수님은 다음 해 돌아가셨다. 부고를 접한 후 몇 분간 모든 사고가 정지되었다. 원래 몸이 편찮으신 것을 알고 있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수업은 꼭 하고야 마시는 분께서 수업을 못하실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교수님께서는 어쩌면 학교로 다시 돌아오시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앞으로의 내 미래가 걱정되는 게 당연했지만, 나의 스승으로서, 그리고 힘든 삶을 살았던 한 명의 사람으로서 그에게 찾아온 죽음이라는 상황이 너무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교수님이 계시지 않은 남은 수업들에서 나는 많은 칭찬과 격려를 받았다. 연구자로서의 가능성이 있으니 열심히 하면 될 것 같다는 이야기,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재능이 좋으니 공부를 꼭 끝까지 하라는 이야기. 나는 교수님이 돌아가신 후 다시 교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가지 못했다. 다른 수업이 아니라 내 지도교수님 수업에서 열심히 하지 못한 후회 때문이었다. 그리고 교수님께 나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한심함으로 드린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뭔가를 이뤄내기 전에는 감히 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께서는 내가 했던 일들에 모두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최선의 길을 찾아주셨다. 내가 연극 연출을 맡았을 때는 본인이 연극 연출을 맡았을 때의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하고, 내가 조교 제의를 받았을 때는 자신이 조교를 했던 경험을 들려주며 절대 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학업적인 고민뿐 아니라 개인적인 고민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주시고 같이 눈물을 흘려주시던 분이었다. 그런 분께서는 내가 석사학위논문을 통과한 뒤 산티아고 순례길에 갈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리고 결국 이 길을 완주했다는 이야기를 들려드렸을 때 어떤 이야기를 해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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