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 라면 가게
By. 김안예
프롤로그 ― 라면 가게는 어딘가에 있다
"이 가게는 시간을 잃은 사람들에게,
길을 잃은 마음에게 문을 열어요.
누군가는 눈물을, 누군가는 기억을,
누군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내일을 놓고 가죠.
나는 그 마음을, 조용히 끓여내요.
소금보다 약간 더 짠 눈물 한 방울,
별빛보다 살짝 흐린 기억 한 스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담을 단 하나뿐인 그릇.
당신의 이야기...."
라면 가게는 어딘가에 있다.
밤하늘에 별이 하나씩 켜질 때쯤, 길을 잃은 사람들만이 발견하는 라면 가게가 있다. 어디에도 없지만, 어딘가에는 꼭 존재한다. 주소도 없고, 간판도 없으며, 지도에도 찍히지 않는 작은 골목 끝....
시간이 멈춘 듯한 모퉁이 너머, 희미한 기억과 절실한 소망이 만나는 그 어딘가에 그 가게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곳을 ‘은하수 라면 가게’라 불렀고, 또 누군가는 ‘무지개 마을의 마지막 가게’라고 불렀다.
정확한 이름은 아무도 몰랐고, 누구도 그 위치를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말 간절한 순간, 마음이 무너지고 길을 잃었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 그곳은 어김없이 문을 연다.
그곳은 아무런 표지판도, 화려한 장식도 없다. 골목 어딘가에서, 아주 희미한 빛이 숨을 쉬듯 깜빡이고 있었다. 불빛은 번쩍이는 네온도, 유혹하는 간판도 아니었다. 마치 별빛이 지상에 스며든 듯, 은은하고 조용하게 공간을 물들였다.
빛은 문득 시선 끝자락에서 걸렸다가, 어느샌가 마음속까지 스며들어오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불이 켜졌다고 느끼기도 어려울 만큼 희미하지만, 분명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지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게는 오래된 시간 속에 몸을 묻고 있었다. 불균형한 벽돌이 층층이 쌓인 외벽, 수세기의 먼지와 이야기를 품은 듯한 나무 기둥, 그리고 모퉁이에 매달린, 반쯤 지워진 작은 유리등 하나. 그 유리 등 안쪽에서 반짝이는 건 불빛이 아니라, 마치 별 무리의 한 조각을 집어넣은 듯한 은빛 가루였다. 창문은 안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뿌옇게 닦여 있었고, 그 유리에 닿은 바람은 조용히 안으로 무언가를 밀어 넣듯 흔들렸다.
창틀에는 이름 모를 덩굴이 얇게 감겨 있었고, 그 사이로 피어난 작은 하얀 꽃들이 별처럼 퍼져 있었다.
이름도, 표지판도 없었다. 가게를 드러내는 건 오직, 그 오래된 나무 문 위에 은은하게 새겨진 별자리 문양 하나뿐이었다.
누구에게나 열리는 문은 아니었다. 별의 숨결을 기억하는 사람이거나 또는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고 싶은 이에게만, 그 문은 문득, ‘빛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아주 오래된 나무 문 하나가, 지난 세기의 시간을 껴안은 듯 조용히 골목의 그림자 속에 숨겨져 있을 뿐이었고, 그 문에는 별자리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낡은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계절이 뒤섞인 공기 속에서, 익숙한 듯 낯선 향기가 스친다. 그리고 바람은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듯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어느 순간, 들린다. 들려야만 하는 이에게만 들리는 바람의 종소리. 가게 입구에 매달린 작은 종 풍경은, 마치 오래된 암호처럼 낮고 깊게 울린다.
‘지금이야. 바로 이 순간이야.. 여기야. 여기!’
그 소리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마음이 무너진 사람의 귀에는 기적처럼 선명하게 다가온다. 마음속 무언가가 깨지고, 바닥에 조용히 흩어지는 날이면 그 문은 마치 오래 기다려온 친구처럼 스르르 열리는 듯 마중 나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노크도, 초인종도 필요 없다.
이곳의 문은 사람의 손이 아닌 ‘마음으로만’ 열리는 법이다. 문 안으로 들어서면 다른 세계처럼 느껴지는 작은 공간이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따뜻한 증기와 라면 국물 향기, 그리고 말없이 등을 돌린 사장의 뒷모습이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다.
나무의 결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테이블, 세월을 머금은 듯한 오래된 의자,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 천천히 돌아가는 선풍기와 그 너머, 주방 한가운데에서 라면을 끓이는 한 사람.
주인장은 대부분의 시간을 등을 돌린 채 일한다. 낡은 앞치마, 낮게 묶인 머리, 단정한 손목. 그의 존재는 말없이 공간을 감싸며 속삭이는 것만 같다.
은하수 라면 가게의 주인장의 이름은 윤하. 혹은, 다른 이름으로는 아스트라나이다.
그녀가 라면을 끓이는 냄비 뒤, 찬장에 숨겨진 오래된 별자리 지도.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별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그녀는 가끔 그 별들을 손끝으로 짚으며 중얼거린다.
“오늘은... 누가 그 별을 찾을까.”
*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는 조용한 배려이고, 마치 오래된 편지의 마지막 줄처럼 따뜻하다. 불 앞에서 국물을 끓이는 동안, 공간은 묘한 정적에 감싸인다.
긴 침묵이 흘러간 뒤, 그는 늘 같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한다.
“이곳에는 세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하나, 오늘의 라면은 오직 당신만을 위한 단 하나의 레시피입니다.”
“둘, 먹기 전엔 과거를, 먹고 나선 미래를 기억하게 될 겁니다.”
“셋, 이 가게를 나가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지만, 가슴 어딘가엔 아주 조용한 온기가 남을 겁니다.”
그녀의 말은 주문처럼 들리기도 하고, 기도처럼 속삭여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눈물이 고인다.
*
가끔 손님들은 묻는다.
“... 이 골목에 이런 곳이 원래 있었나요? 여기는... 대체 어디인가요? ”
주인장 윤하는 대답하지 않고, 미소를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다만, 국물의 맛을 천천히 보고,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더니 이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간과 공간이 겹치는 곳이라고 해야 할까요.... ”
그리고 그녀만의 특별한 재료 하나를 냄비에 살짝 넣는다. 그 뒤로 아주 작고도 분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것은 당신을 위한 라면입니다.” 주인장이 말했다.
“이거.... 그냥 라면 맞나요??” 손님은 신비롭게 생긴 마법 같은 예쁜 라면을 보면서 의심을 하면서 물어보았다.
“라면이든, 추억이든, 희망이든... 결국에는 다 국물 속에 녹는답니다..”
주인장은 이렇게 말하고 손님을 보며 웃어주었다.
손님은 주인장의 의미심장한 말을 듣고 이렇게 물어보았다.
“그럼... 저의 과거도요?”
“여기서 먹는 라면은 단순한 라면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곳은... 단순한 라면 가게가 아니랍니다. 과거, 현재, 미래.. 이곳에서는 순서가 전혀 중요하지 않답니다. 한 숟가락이면, 당신은 그 모든 시간 속을 여행할 수 있답니다.. 당신이 진심으로 원할 때, 은하수 라면 가게의 문은 열립니다.”
*
이곳은 그런 가게다.
누군가의 슬픔을 조용히 감싸 안고, 누군가의 후회를 말없이 들어주며, 누군가의 마지막 소원을 조심스럽게 끓여주는 곳....
지도에도 없는 특별한 가게. 그러나 반드시 존재하는 곳, 바로 ‘은하수 라면 가게’이다.
그날 찾아오는 손님은 모두 다르고, 그날 만들어지는 라면 또한 모두 다르다. 어떤 날은 ‘눈물의 간장라면’, 어떤 날은 ‘잊힌 첫사랑을 위한 들깨라면’, 그리고 또 어떤 날은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전하는 마지막 미역국 라면’.
그 모든 그릇에 담기는 것은 단지 재료나 국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생의 작은 조각이고, 마음의 반짝이는 순간들이다. 그 라면을 먹은 손님들은 돌아가서 말한다.
“분명히 맛있게 먹었는데, 집에 가서 똑같이 만들어도...
절대 그 맛을 따라 할 수 없어요.”
“그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한순간이었어요.”
그리고 가게를 나설 때,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문 너머를 바라본다. 그때, 주인장은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손을 흔든다. 마치 마음속 어딘가에 마지막 조약돌을 조용히 내려놓는 듯한 동작으로... 그리고 문을 나선 뒤, 세상은 늘 그랬던 것처럼 변함없이 흐른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 사람의 삶엔 아주 작은 변화가 찾아온다.
숨을 쉴 때, 조금 더 따뜻한 온기가 있고. 하늘을 바라볼 때, 조금 더 오래 머문다. 이곳은 그런 가게다.
한 그릇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다독이고, 삶의 방향을 아주 조금 바꿔주는 곳....
바로 당신이 진심으로 원할 때만 문이 열리는 곳...
시간과 공간이 겹치는 곳...
바로 [은하수 라면 가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