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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업하는 회계사 K Nov 01. 2020

1.4 똑똑한 사장이 가난하다.

나를 믿지 말고, 시스템을 믿어라!

너 자신을 알라.
- 소크라테스



나를 아는 똑똑한 학생들


우리 회계법인 아래층에는 제법 큰 독서실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자주 학생들과 마주치게 되는 것을 보면 장사도 제법 잘 되는 모양이다. 회계법인이 위치한 곳이 평수가 큰 고층 아파트가 밀집된 곳임을 감안하면, 독서실을 오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집에 "내 방" 하나쯤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하지만, 그 친구들이 왜 굳이 추가 돈을 내고 좁디좁은 독서실이란 곳으로 모여들까. 내 방에서는 컴퓨터가 나를 부르고, 침대가 잠을 유혹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조금만 더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독서실 비 아껴서 내가 평소에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사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일 것 같다. 하지만, 소위 명문대에 진학했던 많은 학생들 또한 독서실을 거쳐간 것을 보면 독서실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가치가 있기는 한 모양이다.


왜 학생들은 집에서는 공부가 안되고 독서실에서는 집중력이 올라갈까? 그건 바로 독서실이 딴짓을 하기 힘들도록 구조가 짜여 있기 때문이다. 독서실에서는 좀 자고 싶어도 침대가 없으니, 책상에서 웅크려서 잘 수밖에 없다. 그 자세로 몇 시간 자고 나면 팔이 저려 눈물이 찔끔 난다. 친구들과 장난치고 수다를 떨고 싶어도, 총무 눈치가 보여서 길어야 10분, 20분이다. 독서실 땡땡이치고, 몰래 PC방이라도 가는 순간 어김없이 부모님께 콜이 간다. 어떻게 보면 숨 막히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공부라는 목표로 나를 몰아가는 효과가 있다. 학생들이 독서실에 등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 의지력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의지력이란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독서실에 등록한다. 이 행동을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면, 내가 의지력이 없다는 것을 사전에 인정하는 "겸손함"이 있다. "나는 유혹에 약한 동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독서실이라는 환경에 나를 맡겨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학창 시절에는 자의든 타의든 "나를 믿지 않는 것"에 제법 익숙하다. 하지만, 성인이 되는 순간 특히 내 사업을 시작하며 소위 "사장"이 되는 순간 많은 사장들이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나를 모르는 가난한 사장들


이번 섹션에서 소개한 돈 관리 방법을 다시 소환해 보자.


통장 다섯 개를 만들고, 매달 2번 돈을 매출 통장에서 다른 통장으로 옮겨 놓자!


그뿐이다. 사업해서 부자 되는 방법은 이처럼 간단하다. 이렇게 하는 데는 아무런 회계 지식도 필요 없다. 그냥 인감도장을 들고 근처 은행에 가서 필요한 만큼 통장만 만들면 된다. 얼마의 비율로 옮길지는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시행착오 법으로 계속하다 보면 비율은 저절로 찾아진다. 시작이 중요하고 습관이 중요하다.


회계사로 일하며, 많은 사장들이 이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모습을 보았다. 그와 동시에 많은 경우 이 방법을 무시하고 그냥 그저 그런 사장으로 남는 모습도 보았다. 처음에는 가난한 사장들이 바보라서 이렇게 간단한 조언조차 듣지 않는 줄 알았다. 그래서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고객이 부자라야 회계사들도 벌이가 좋아진다.) 하지만, 그 이유를 더 자세히 살펴보니 사실은 정반대였다. 너무 똑똑해서 이와 같은 유치한 방법이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따로 돈 떼어 놓지 않아도, 돈 관리하는 데 전혀 문제없어요. 내가 사업을 박 회계사보다 훨씬 더 오래 했는데, 돈 관리 조차 못할까 봐 그래요? (회계사라는 양반이 초등학생도 알만한 이야기만 하는구먼..)


이런 분들은 대부분 통장 하나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통장이 여러 개 있더라도 아무런 체계 없이 이 통장 저 통장 주먹구구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의 돈 관리 능력을 과신하는 순간, 그것이 바로 가난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부자로 사는 많은 선배들이 걸어갔던 길을 놔두고, 굳이 힘들고 고된 가난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부자가 될 수 있는 유명한 "독서실"을 등록하지 않고, 내 방에서 공부하는 척하며 졸고 있는 것과 진배없다.


돈을 모으고 싶으면, 돈을 모으겠다는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돈을 모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돈이 저절로 모이는,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부자가 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내 사업의 돈을 관리하는 가장 심플한 것이 바로 STEPS 통장 관리 시스템이며, 돈 버는 회계 3M 중 가운데에 위치한 "Money M"이다.




"STEPS"를 무시하면 벌어지는 흔한 일


매년 3월이면 회계사는 사장을 만나러 간다. 한 손에는 법인세 신고서를 들고서.. 사장 입장에서 회계사의 방문이 마냥 달가울 리는 없다. 보나 마나 세금 내라는 소리일 테고, 또 당연히(!) 법인세 신고 수수료도 청구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세금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참에 회계사가 우리 회사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나 궁금하기도 하다. 때마침 바쁜 약속도 없고 해서 사장은 회계사와 미팅 약속을 잡는다. 게다가 회계사가 손수 우리 회사까지 온다고 하니 내가 큰 회사의 대표인 거 같기도 해서 약간 뿌듯한 마음까지 든다.


회계사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한다. 1년 전에 봤을 때 보다 얼굴이 더 좋아졌느니 하는 인사치레를 서로 주고받고 나서 본격적으로 "법인세" 이야기로 들어간다. 다음은 회계사와 사장의 흔한 대화이다. 아마 매년 3월이면 전국 수천 곳의 사업장에서 이와 비슷한 대화가 오고 갈 것이다. (괄호 안은 속마음을 적은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박 회계사 : 사장님, 올해는 매출이 정말 많이 오르셨더라고요..

김 사장 : 하하하,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운이 좀 좋았습니다.. (사실, 잠도 안 자고 일했습니다. 제 노력에 비하면 아직 반에 반도 안 왔죠..)

박 회계사 : 정말 대단하십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저희 고객들 중에 폐업하시는 분도 많은데 사장님처럼 매출이 몇 배로 뛰는 경우는 정말 드물거든요. (최대한 사장님을 띄어드려야, 있다가 법인세 수수료 청구할 때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겠지..)

김 사장 : 하하하..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공치사 같지만, 듣기 싫진 않군.. 수수료 많이 청구하려고 그러나???)

박 회계사 : (분위기도 괜찮은데, 이제 세금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볼까나?) 작년에는 매출액이 12억 정도에 당기순이익이 2억 조금 넘는 수준이어서 법인세가 2천만 원 나왔었는데요. 올해는 매출을 25억이나 하셨어요. 이익률도 훨씬 더 좋아져서 당기순이익 5억 정도가 됩니다. 그래서 법인세가 8천만 원 정도 나옵니다. (사장님의 반응이 궁금한데?)

김 사장 : (진심! 당황!) 네?? 8천만 원이요??

박 회계사 : 네, 8천만 원이요. (오늘도 좋게 넘어가기는 걸렀구나..)

김 사장 : 법인세가 8천만 원이나 나왔어요? 작년보다 2배 정도 더 한 거 같은데, 세금은 왜 이렇게 많이 나왔어요? (누구를 호구로 아나?)

박 회계사 : (사장이라는 사람이 세법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구나) 아, 세율은 누진세 구조로 되어 있어서요. 당기순이익이 2억까지는 세율이 10퍼센트이지만, 2억이 넘어가는 부분은 세율이 20% 적용됩니다. 그래서 작년보다 당기순이익은 2배 이상 늘었지만, 세금은 그것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 겁니다.

김 사장 : 아..!! (무슨 말인지 이해는 되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다..)

박 회계사 :... (세금에 이렇게 많이 놀라면, 나중에 수수료는 어떻게 이야기하지?)

김 사장 : 흠.. 8천만 원을 언제까지 내야 하나요?

박 회계사 : 이달 말까지 납부기한이니깐, 다음 주 월요일까지 내셔야 합니다.

김 사장 : 네???????

박 회계사 :... (왜 이렇게 놀라지? 법인세 납부기한은 작년에도 똑같았는데..)

김 사장 : 나 참, 이렇게 금액이 크면, 좀 더 빨리 알려주셨어야지 저희도 대비를 하죠. 꼭 그날까지 내야 하나요?

박 회계사 : 납부기한을 어기시면 가산세가 많이 붙기 때문에, 가급적 그 날까지 납부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김 사장 : (정신을 가다듬고) 그런데, 회계사님! 혹시, 뭔가 잘못 계산하신 거 아니에요?

박 회계사 : 네? 왜요? (우리 직원이 뭐 또 실수했나?? 진심 놀람!)

김 사장 : 지금 저희 통장에 있는 돈 다 모아도 3천만 원이 안 될 거 같은데요. 당기순이익이 5억이라는 게 말이 되나요? 저희 통장에 5억이 있었던 적도 없어요.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논리다!)

박 회계사 : 아.. (오늘 회의도 길어지겠구나..)

김 사장 : 뭔가 잘못 계산된 거 아니에요?

박 회계사 : 사장님이 지금 말씀하신 것은 현금주의로 생각하신 거고요. 법인세 계산 시 적용되는 회계는 현금주의가 아닌 발생주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매출이 발생하고 아직 돈을 못 받으신 경우에도 발생주의에서는 매출액으로 잡힙니다. 그래서 실제로 생각하시는 것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김 사장 : 아무리 그래도 너무 차이가 큰 거 아니에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 통장에 5억이 없었는데 당기순이익이 5억이 될 수가 있나요?

박 회계사 : 통장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안 되고요, 회계처리를 봐야 합니다. (이것까지 설명하려면 하루 종일 걸리겠는걸..)

김 사장 :  그래도 이렇게 많이 차이 날 수 있나요? (아.. 8천만 원은 대출이라도 해야 하나? 세금을 카드로 낼 수는 있나?)

박 회계사 : 아. 이 부분은 설명이 길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힘들고요. 오늘은 납부서와 신고서 우선 드리는 걸로 하고, 다음에 또 미팅 잡아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고 수수료는 다음에 이메일로 보내드려야겠다. 오늘 이것까지 말하다가는 난리가 나겠군)

김 사장 : 네, 어쩔 수 없죠. 당장 대출부터 알아봐야겠네요. 휴.

(헤어지고 나서 30여분 뒤, 박 회계사 전화가 걸려옴)

박 회계사 : 사장님, 제가 빠뜨린 게 있어서요. 법인세 말고, 법인세의 10% 정도 지방소득세라고 있거든요.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세액 8천만 원의 10%인 8백만 원이 추가로 나옵니다. 최종적으로 8천8백만 원 정도 납부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김 사장 : 네?? (빠직!) 네, 할 수 없죠. 알겠습니다. (그냥 회계사 바꿔야겠군, 이래서야 같이 일 할 수 있나?)



이 장면이 놀랄 만큼 어디선가 본 것 같으면 당장 은행으로 달려가 통장부터 만들자. 복잡한 회계 공부는 그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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