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Mountain National Forest
렌트까지 완료했으니 이제 여행을 떠날 차례다. 첫 번째 여행지는 바로 White Mountain National Forest 였다.
학교 생활에 바쁘게 적응하느라 9월이 훌쩍 가고 나자 바야흐로 보스턴에도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덥고, 가을에는 단풍이 들고,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봄에는 꽃이 핀다. 설명만 보면 딱 한국인 거 같은데, 적어도 기후에 있어서만은 보스턴은 서울과 꽤 비슷했다. 그러니 가을에는 단풍을 만나러 떠나야 하는 법!
한국에 설악산이 있다면, 미국에는 화이트 마운틴 국유림이 있다. 실제로 세계 10대 단풍지(누가 선정했는지 모르겠지만)로 꼽힐 만큼 멋진 지역이다. 뉴햄프셔 지역의 특산물이 단풍 수액으로 만든 메이플 시럽인데, 그만큼 단풍나무가 많은 곳이다. 보스턴은 한국보다 위도가 높은 지역인데, 한반도로 치면 거의 원산쯤이라고 하니 위도에 비해 기후가 따뜻한 셈이다. 단풍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단풍은 위에서부터 물들기 시작해서 내려온다. 화이트 마운틴 국유림은 보스턴보다도 훨씬 더 위쪽이니 그만큼 단풍이 빠르게 온다. 2010년에는 대략 9월 말 10월 초에 이미 단풍이 절정에 달했다. 그런데 벚꽃 시즌이 되면 심술이라도 부리듯이 비가 와서 벚꽃이 다 지곤 하는 것처럼, 2010년 가을에도 곱게 단풍이 들자마자 하늘을 쪼갤 듯한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한차례 요란하게 지나갔다. 그러고나니 나뭇잎도 우수수 떨어졌었다. 단풍시즌이다 싶으면 비오기 전에 빨리 구경가는 것을 추천한다.
당시 하숙집에서 알게 된 박사님이 여기를 다녀오신다고 하길래, 동행을 부탁드려 따라갔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하숙집의 장점이다. 그때에는 옆동네에 단풍이 예쁘게 들었으니 놀러 갔다 와 볼까? 하고 가볍게 출발했었지만, 보스턴에서 화이트 마운틴까지의 거리는 170 miles, 약 290km 정도의 거리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구 정도의 거리인데, 당일치기가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지만 가볍게 가기에는 꽤 거리가 있었다. 이런 사전 정보를 잘 모르고 덜컥 따라갔더니 분명 옆동네라고 했는데 가도 가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단풍이 예쁜 곳이라니 가보자! 는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박사님도 나도 정확하게 어디를 가야 할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이것은 마치 설악산의 단풍이 예쁘다던데 하고 출발해서 내비게이션에 설악산을 치니 100개가 넘는 설악산의 포인트가 나오는 것과 같은 상황!
스마트폰이 없을 때라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일단 보스턴에서 제일 가까운 Wood stock으로 출발했다. 그곳의 Visitor Center에 가서야 비로소 화이트 마운틴 국유림의 어마어마한 크기를 알게 되었다. 일단 Wood stock에 왔으니, 차로 가장자리를 따라 돌기로 했다. Visitor Center에서 받은 지도에는 국유림 곳곳의 뷰포인트가 표시되어있었는데, 중간중간 뷰포인트에 차를 세워 경치를 감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아날로그적인 여행이었다. Wood stock에서 Conway까지 크게 차로 도는 데만도 거의 5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화이트 마운틴 국유림 안에는 여러 개의 폭포가 있는데, Silver cascade의 경우에는 도로 바로 옆에 있어서 잠깐 들려서 구경하기 좋다. 국유림 곳곳에 다양한 산책길들을 통해 화이트 마운틴의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라는 소설이 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이 소설이 교과서에 실려있었다. 이 소설에는 멀리서 보면 꼭 사람처럼 보이는 큰 바위 얼굴이 등장한다. 나는 작가가 참 상상력이 좋구나 했었는데, 알고 보니 실제 모델이 된 바위가 이 안에 있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바위가 많이 유실됐다고 하지만...
시간이 있다면 이곳에서 일박 정도 하면서 트레일도 걷고, 안에서 기차도 타고 느긋하게 구경하면 참 좋을 거 같다. 당일치기로 구경 하기에는 볼거리가 많으니, 미리 어디를 방문할지 계획을 세워 방문하는 편이 좋겠다.
내가 방문했던 시점에는 큰 비가 지나간 다음이라 단풍이 많이 떨어져 약간은 아쉬웠다. 그런데 화이트 마운틴 국유림의 크기가 큰만큼, 그 안에서도 단풍의 상태가 약간씩 달랐다. 아래 사진은 Wood stock 근처의 Flume Gorege였는데, 화이트 마운틴 국유림에서도 상당히 아래쪽에 해당하는 곳이다. 처음 이곳에 도착해서 단풍을 보고 와 딱 시기를 맞췄구나 엄청 좋아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나뭇잎이 이미 떨어져서 아쉬웠다. 이럴 줄 알았다면 플럼 고지에서 트레일을 걸으며 단풍 구경을 하는 건데..!
화이트 마운틴의 외곽 지역인 93번 도로와 화이트 마운틴 안쪽을 가로지르는 302번 도로의 풍경이 제법 다르다. 우리는 93번 도로를 따라 뷰포인트도 많이 들리고, 짧은 트레일도 걸으며 다녀서 302번 도로 쪽의 풍경은 많이 감상하지 못했다. 302번 도로 쪽으로 가다 보면, 도로 바로 옆에 작은 연못이나 호수도 있고, 올드패션의 기차역도 있다. 그때마다, 잠시 차를 세우고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93번 도로 쪽 보다는 302번 도로 쪽의 풍경이 좀 더 광활하게 펼쳐져있는 느낌이 들고, 단풍도 좀 더 예쁘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넓게 퍼진 구릉 같은 느낌이 신선했다. 마치 발아래 단풍으로 물든 카펫이 펼쳐진 것만 같다.
93번 도로 쪽은 산과 평지의 경계가 이어지는 곳으로, 바위산도 많고 풍경이 수시로 바뀐다. 큰길을 따라 구경하는 것도 멋지지만, 메인 도로를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인적이 드문 숲길도 좋다. 성수기라 Visitor center는 발 디딜 틈이 없이 번잡스러웠지만, 이런 오솔길은 아무도 없어서 마치 전세 낸 듯 구경할 수 있었다.
국유림 안에는 전통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기차역들이 곳곳에 있다. 이 기차역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금도 기차가 다니고 있는데 화이트 마운틴 정상까지 가는 기차도 있다고 한다. 단풍이 절정일 때 정상에서 보는 풍경은 또 얼마나 멋질까 싶다.
중간에 드문 드문 있는 작은 마을들을 제외하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 샌드위치나 도시락을 준비하거나, 마을이 있을 때 요기를 하는 것을 추천한다. 음료는 꼭 필히 차에 구비해 놓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는 타이밍을 못 맞춰서 어쩌다 보니 거의 하루 종일 굶고 다녀야 했다. 멋진 풍경을 구경하느라 배고픈 줄도 모르고 다니긴 했지만...
요즘도 단풍철이 되면, 이 풍경이 한 번씩 눈 앞을 스친다. 울긋불긋한 단풍과는 다른 어딘지 황량하고도 고요한 풍경. 밝으면서도 어딘가 메마른 그 느낌이 자유롭고도 외로운 타국살이의 느낌과 비슷해서였을까.
자세한 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조할 것
https://www.visitwhitemountains.com/white-mountains-visitor-center
https://www.fs.usda.gov/detail/whitemountain/about-forest/offices/?cid=stelprdb5273992https://www.tripadvisor.com/Attraction_Review-g28950-d106625-Reviews-White_Mountain_National_Forest-New_Hampshir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