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다니다 보면 처음부터 나를 꾸준히, 지속적으로, 변함없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3년간 내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인사를 받지 않던 K부장이 그러했는데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입사 첫날부터 그러했기 때문에 어느 부분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예상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인사해도 받질 않는 모습에 덤덤하려 했지만 글러브 낀 주먹으로 내리치면 소리만 잘 안 날 뿐 더 깊은 피멍이 드는 법.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 피멍이 세포 사이사이로 퍼져나가며 자존감과 자신감은 점점 찌그러들고 자존심 씹다 뱉은 껌처럼 들러붙어갔다.
왜 그리 나를 미워하십니까라고 묻지 못하고 그냥 맞았다. 악 소리 한번 안 내고 묵묵히.
대체 왜 그리 나를 싫어하는지를 알 수 없어 더 많은 일을 찾아 하고 종종 거렸지만 그럴수록 혐오의 레이저는 더 강렬해졌다. 때로 척추가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버리는 듯한 모멸감을 느꼈다.
그러다 하도 맞아 피멍자리가 굳어 근육화 될 때쯤 다른 회사로부터 더 나은 대우의 제안이 왔다.
내가 퇴사하겠다고 한 날 숨길 수 없이 삐죽거리는 미소가 번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오래전 들었던 해외토픽이 떠올랐다. 캐나다 또는 미국이었던 것 같은데, 한 노부부에게 재규어가 달려들자 부인이 침착히 손에 든 볼펜으로 재규어 눈을 찔렀다고 했다. 그 민첩함을 발휘하지 못한 나의 맹렬하지 못한 응징이 아쉬웠다.
대체 왜?
왜 처음부터 나를 그리 미워했는가?
어느 날 만난 선배에게 이 의문을 풀어헤쳐보았다.
왜 나를 그리 처음부터 싫어했을까요?
정말 입사 첫날부터 나를 싫어했는데.
답은 너무나 심플.
너 같은 여자한테 차였나 보다.
내 어깨나 올 정도의 키, 스카이 대학 출신의 S자, L자 들어간 회사 출신의 스펙을 가진 그는 백화점에서 산 것이 분명한 새것 티 나는 옷과 준오헤어에서 다듬은 듯한 단정한 헤어스타일이었는데 그와 대조적으로 피부, 인상, 분위기는 대륙의 어느 나라로 농업 이민을 떠난 빈국의 소작농 같았다. 성정과 태도와 눈빛은 폭군을 따라하는 비열한 간신이었고.
이해안가는 싫음을 당한 시간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으나 이것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냥 나를 무턱대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야 회사였다.
그게 없으면 회사 아니다. 천국이지.
부패할 대로 부패해서 부글거리기까지 하던 감정의 악취가 시간이라는 필터를 거쳐 밍밍한 냄새로 퍼져간다.
나를 너무 싫어했던 K부장.
당신 같은 사람이 있는 게 당연한 곳이 회사라는 걸 몰랐다. 그러니 어쩌다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나 내가 멍들었었나를 기억하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당신보다 키 큰 여자에게 레이저 쏘며 혐오하고 무시하고 계시라. 능력에 비해 운 좋아 여기까지 왔다는 멸시의 언행도 멈추지 마시라. 학벌에 대한 비아냥도 계속 던지시라.
그것이 당신같은 사람이 빛내는 밥벌이의 전쟁터, 회사라는 곳의 진짜 정체성.
내게 사과한 적 없으니 용서할 일 없고, 아직 젊어 망각할 일 없으니 내 정신 건강을 위해 나는 끝까지 당신을 격렬하게 싫어하기로 했다.
나도 당신이 처음부터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