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용하기로 했습니다.
아침에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을 주문했습니다.
뭐 딱히 아침에 스타벅스 로망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딸이 이른 아침 수업을 받느라 이른 아침에 이 동네를 왔고 한 시간 반 정도면 수업이 끝나니 그 정도는 기다려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들른 카페입니다.
재즈 음악이 들려오고 이른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이 계속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받아갑니다.
회사 다닐 때 나도 종종 그랬으니 익숙한 풍경입니다.
퇴사 후 달라진 것은 시간 여유가 생겨 여기서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게 되었고 책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급하지 않고 여유가 있습니다.
아침에 딸한테 딸기바나나우유를 갈아주고 필요한 운전을 해 주면서 내 시간을 아낌없이 내줄 수 있었다는 점이 나 자신을 고용한 것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행복은 자유에 있다는 말을 실감해 봅니다.
아침에 ‘오늘은 어떤 기사를 써야 할까’ 인터넷 서핑과 뉴스를 검색하며 오늘의 기사거리를 찾아내는 일이나 전날 처리하지 못한 보도자료를 처리하느라 바쁘고 괜히 내 시간이 더 중요한 듯 조금이라도 늦으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과는 달리 여유 있는 아침이 좋습니다.
오늘 새벽에는 눈 뜨기 전에 ‘오늘은 늦잠을 자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꿈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고 있었습니다. 8시까지 학원이든 독서실이든 가야 하는 시험이 5일 남은 딸을 생각하니 ‘일주일은 딸애한테 올인하기로 했었지’라는 결심이 떠올라 과감하게 눈을 뜨고 이불정리를 마쳤습니다. 그래도 화장을 하거나 출근준비를 하지 않아도 돼 아침을 차려줄 시간여유도 생겼습니다.
내 시간이 없다가 생기니 새삼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노고에 대해서도 새삼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저 친구들은 이 시간부터 나와서 일하기 위해 얼마나 이른 아침에 나와 매장 청소와 영업준비를 했을까요.
나에게 딱 알맞은(게다가 오늘은 별쿠폰과 통신카드 업그레이드로 한 푼도 지불하지 않은) 아메리카노 한 잔을 뽑아 주기 위해 이렇게 쾌적하고 청결한 매장을 만들어주고 뜨거운 커피를 뽑아준 세 명의, 직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사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능력이라는데 그래도 여유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앞에 4잔씩 8잔씩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주문한 사람들에게 짜증이 나면서 고작 아메리카노 한 잔에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라는 투덜거림이 있었을 테니까요)
문득 노트북을 보니 아직 전 회사의 명함이 붙어있네요.
떼 버릴까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아무래도 내 노트북인 표시가 금방 나니 다른 대체제가 생길 때까지 붙여놔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퇴사하니 알던 분들이 간혹 전화를 줍니다.
나쁜 일은 아니냐고 걱정해 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냥 기사 말고 제 글을 쓰고 싶어서요"라고 말하지만 아직 제 글을 쓰고 있다는 실감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산책을 하고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야 제 글을 쓸 수 있게 될까요.
아니면 글을 쓰는 습관을 아주 잃어버릴까요.
브런치에 퇴사일기를 쓰면서 그럭저럭 글 쓰기를 붙들고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