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월-일회용품
취침 전 먹을 약을 하루종일 기대했다.
우울한 감정은 굳이 비유하자면 독가스나 매연 같다.
장기를 빼낸 텅 빈 몸 안에 유독 가스를 빵빵하게 넣어둔 기분.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걷는 모든 걸음은 진창길 같다. 나는 나쁘고 안 좋은 생각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다가 결국 울어버리는 기계가 된다.
병원을 다녀온 날 본가에 들렀다. 네댓 개의 반찬에 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요즘 일은 어때? 아직도 힘들어?"라고 물었다.
그 순간 다시 울었다. 폭풍같이.
엄마 나 힘들어. 사실은 병원에 갔어. 말하지 않으려 했던 말이 술술 나왔다.
엄마는 놀랐고, 아빠는 타박했다. 뭐 그런 걸로 병원까지 가고 그래, 의지의 문제 아냐?
아니다. 정말 아니다. 겪어보지 못 하면 모른다는 수많은 우울증 경험자들의 말이 이제서야 이해가 갔다.
생각보다 괜찮게 시작한 출근길, 좋은 주차 자리에 수월하게 차를 대고 난 뒤 안도감 끄트머리에도 불안감이 싹트고 결국 마음을 잠식한다는 게 어떤 건지.
시작은 일터였다. 팀을 옮긴 직후부터 하루에 네뎃 번의 크고작은 지적을 당했다.
당일자 기사를 쓰는 필자 4명 중 혼자만 칭찬 혹은 격려를 듣지 못했다. 나는 정말 기사를 열심히 쓴 터였다.
많이 고쳐질 게 없다고 생각한 기사는 인정사정없이 해체됐고, 나의 필체는 남아있지 않는 날이 계속됐다.
이건 나에게 익숙한 상황이 아니었다.
지난 N년 동안 글쓰기는 나의 자존감이었다. 쏟아지는 일은 즐거웠고 난 언제나 그 일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동기 중 가장 잘 하는 아이, 에이스, 믿고 맡길 만한 사람, 기획을 주도하던 사람, 새로운 형식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외부의 평가들은 나의 힘의 원천이었다, 분명 그랬는데.
앞뒤로 일상이 꼬이기 시작했다. 보고서를 올릴 때 오타가 늘었고 팀원들의 공개 카톡방에서 타박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갔다.
일터에서 가장 일을 못 하는 사람, 보고서를 보기 전에 한숨부터 쉬어야 하는 사람, 실제 그렇지 않다 해도 '내 안의 내'가 끊임 없이 나를 이런 사람으로 만들고 재생산했다.
뭐든 제대로 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엇을 해도 저 사람들은 날 싫어할 거란 두려움. 난 이 열몇명 남짓한 팀에서 가장 나쁜 평가를 받고 있다는 데서 오는 자괴감.
일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마찬가였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남성인 팀 안에서 팀장은 남자인 후배에게 더 친근하게 대하고, 함께 담배를 피러 가자고 하고, 어깨동무를 했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내 뒷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지, 너무 두렵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행동에 제약이 걸리기 시작했다. 자율적으로 하던 취재도 열성적으로 올리던 보고도 어느새 주저하고 고민했다. 내가 이걸 올리는 것 자체가 이 사람들을 그냥 귀찮게 하는 것만 같았다.
내 이름이 팀방에 뜨는 것조차 사실은 별로 안 반기지 않을까. 내가 기사를 쓰면 손 많이 간다고 싫어하진 않을까. 차라리 후배가 올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들의 글은 그래도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집안일을 하는 것도 힘이 들기 시작했다. 무감정 혹은 돌덩이같은 생각만 가지고 운전해 집으로 돌아온 뒤 그대로 누워서 1시간을 있었다.
간신히 밥을 챙겨먹고, 평소엔 바로 하던 설거지가 너무 하기 싫어 다시 누웠다.
이런 일상이 돌고 돌아 생각과 사고마저 정체됐을 때, 나는 정말 큰 용기를 내 병원을 갔다.
이제 생각해보면 이 정도의 상황에서 긴가민가했던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극복 방법은, 어이없을 만큼 쉬웠다.
-계속-
난 내가 일회용품이면 좋겠어
넌 내가 점점 더 늙었다 말하는 걸
굉장히 행복하거나
굉장히 슬플 것도 없는 건
죽은 거나 다름없지
기쁨이란 잠깐
기쁨이란 잠깐
기쁨이란 잠깐
기쁨이란 잠깐
기쁨이란 잠깐
기쁨이란 잠깐
나를 스쳐 가네